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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문턱의 군수골 들녘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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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골고개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마 다들 처음 들어보실 겁니다.

저희 동네(인천 서구 공촌동) 산골이자 고개 이름인데 포털사이트 검색에서 "군수골고개"라 검색하면, 정확히 표시되는 것은 파란 지도 정도입니다. 박달재처럼 유명한 고개는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다만 저희 집이나 제게는 아주 특별한 곳이 바로 군수골입니다. 군수골고개는 넘기 어렵지 않은 낮은 고개지만 지금처럼 도로가 나기 전에는 마을사람들이 시천동이나 김포를 오가는 주요 길목 중 하나였습니다. 그 고갯길 주변 골짜기에 계단식 논과 밭이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대부터 있어온 것 같습니다.

 인천 서구 공촌동의 군수골고개, 도로가 나기전에 시천동과 김포를 오가는 길목이었다.
인천 서구 공촌동의 군수골고개, 도로가 나기전에 시천동과 김포를 오가는 길목이었다. ⓒ 파란 지도

 뭉개구름 사이로 가을햇살이 들녘에 쏟아진다.
뭉개구름 사이로 가을햇살이 들녘에 쏟아진다. ⓒ 이장연

 우리 지역문화재 찾아보기 네번째로 정한 심즙신도비를 찾아가다가 둘러본 군수골
우리 지역문화재 찾아보기 네번째로 정한 심즙신도비를 찾아가다가 둘러본 군수골 ⓒ 이장연

 군수골 논은 주인이 바뀌면서 밭으로 변해버렸다.
군수골 논은 주인이 바뀌면서 밭으로 변해버렸다. ⓒ 이장연

그 산골논 맨 꼭대기에 몇 뙈기 되지 않지만 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몇 해전 나이를 먹어서도 철들지 못하는 자식들 빚 갚아주려고 팔아 남의 땅이 되어버렸지만,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옛부터 이 산골논에서 벼농사를 지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군수골 논에서 벼농사 짓는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물이 부족해 계단식 논의 맨 위와 곳곳에 물웅덩이를 파놓고 빗물과 논물을 가둬놓고 날이 가물 때는 물길을 열어 아랫논으로 흘려보내야 했고, 비가 많이 오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물고랑도 잘 열어둬야 했습니다. 산에 비가 내리면 흘러드는 물힘이 대단해서 논두렁을 휩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을걷이를 모두 끝낸 들녘
가을걷이를 모두 끝낸 들녘 ⓒ 이장연

 군수골은 물대기도 어렵지만 콤바인도 논에 쉽게 빠질만큼 질퍽거린다.
군수골은 물대기도 어렵지만 콤바인도 논에 쉽게 빠질만큼 질퍽거린다. ⓒ 이장연

뿐만 아니라 군수골과 집 거리가 있어 논과 밭(고구마, 참깨를 심었다.)을 돌보러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소달구지가 있을 때는 간혹 할아버지가 달구지를 끌고 꼴을 베거나 고구마 같은 농작물을 수확해 집으로 내려오곤 했었는데, 그 때 달구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경운기가 달구지를 대신하기 시작하면서는 모내기나 벼베기를 할 때 털털털 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오갔고요. 이앙기가 없던 시절에는 가족 모두가 달라붙어 못줄을 튕겨가며 손모를 내야 했고, 콤바인이 없던 시절에는 가족 모두가 달라붙어 낫질을 하며 벼를 베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나 동생은 모를 나르거나 볏짚으로 둘러맨 벼뭉치를 논두렁에서 길가로 옮겨놓는 일을 도왔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새참이나 점심을 내오기 위해 머리에 대야를 이고 군수골까지 먼길을 오가기도 했습니다. 그 때 어린 저나 동생은 물주전자나 막걸리, 다른 것들을 들고 군수골을 오가며 이런저런 심부름을 했었습니다. 예전에는 요즘처럼 휴대폰 같은게 없어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누군가 급하게 찾을 때는 군수골뿐만 아니라 밭과 논을 뛰어다니며 찾아다녀야 했었습니다. 파발꾼처럼 말입니다.

아참 요즘처럼 가을걷이가 끝난 뒤 그러니까 추수를 위해 논에 물을 빼놓은 뒤, 날이 쌀쌀해졌는데도 동네 아이들과 뭉쳐 물고랑에 갇힌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잡으러 산골을 쏘다니기도 했습니다.

심즙신도비를 찾아가는 길에 간만에 둘러본 군수골. 옛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산골논은 이제 주인이 바뀌어 하우스가 들어선 밭으로 변해 버려습니다.

다시 그 산골논에 물을 대고 손으로 모내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대로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린벨트와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하고, 수도권 규제완화해서 공장 짓겠다는 세상이라 언제 어느새 이 정든 골짜기마저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군수골을 둘러보고 대인고 방향으로 나아가다 만난 목장
군수골을 둘러보고 대인고 방향으로 나아가다 만난 목장 ⓒ 이장연

 축사 너머로 계양산 꼭대기가 보인다.
축사 너머로 계양산 꼭대기가 보인다. ⓒ 이장연

 도로가 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점점 변해가는 마을과 들녘
도로가 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점점 변해가는 마을과 들녘 ⓒ 이장연

 그런데 심즙신도비가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닌가 보다.
그런데 심즙신도비가 있는 곳은 여기가 아닌가 보다. ⓒ 이장연

 붉은 단풍으로 불타는 계양산
붉은 단풍으로 불타는 계양산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수골#산골#논#벼농사#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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