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 수능 비관 자살보도, 무심한 우리의 반응
# 2007년 또는 매년
- 2007년 12월 지난 22일 밤 8시30분께 수능 성적 비관한 고3 학생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옆에 이를 목격한 친구들에 의하면 가족과 수능성적에 불만을 토로하더니 갑자기 베란다로 달려가 뛰어내렸다고 한다. 중상위권 성적이었던 그 학생은 수시 모집에서 떨어지고 수능 성적도 평소보다 낮게 나와 고민해왔다고 한다. (뉴시스, 2007-12-24 )
- 같은 달 10일 오전 4시10분쯤에는 역시 성적을 비관한 쌍둥이 자매가 자살했다. 작은딸은 투신하기 직전인 새벽 3시 55분쯤 “엄마랑 동생이랑 행복하세요. 늘 못해 드려 죄송해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쌍둥이 자매가 다니는 학교의 관계자는 “두 자매의 수능성적은 평소 모의고사 성적과 비슷하게 나왔고 평소 성격도 명랑하고 활발했다”고 말했는데, 그는 아이들의 자살을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2007-12-10 )
- 17일 새벽 1시 반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 A(2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이 아파트 20층에서 술을 마시고 아래로 뛰어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지난 15일 대입 수능시험을 치른 삼수생으로 가채점 성적이 좋지 않아 고민했다는 유족들의 말을 토대로 일단 수능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노컷뉴스, 2007-11-17)
해마다 반복되는 수능 성적 비관 자살 사건은 우리들에게 강력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우리들은 무심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사건보도가 신문 1단짜리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제목에는 수능 비관 자살이 올해는 없기를 바란다고 썼지만, 솔직히 말하면 올해도 작년 못지 않게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들은 뉴스보도를 통해 이 사건을 단순히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들을 자살로 몰아낸 것은 수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재의 입시구조 때문이 아닌가. 수능을 못 보면 다른 대안이 있고, 수능 말고 잘하는 다른 것으로 평가받을 길이 있다면 그들이 자살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수능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명백히 각인하면서 아이들이 자살하는 사건 보도에 단 한 번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수능신 사회
입시학원 논술강사 생활을 3년 했다. 당시는 명문대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드러난 '학교 등급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었다. 학교 등급제는 명문대가 특목고 학생들을 많이 뽑기 위해 학교에 따라 등급을 정해서 이를 결과에 반영하는 것이다.
2004년~2005년 이 문제가 매우 시끄러웠던 것으로 안다. 내신과 수능은 평가의 척도가 다르다. 내신은 3년간 학교생활의 성실성을 존중하는 평가방식이라면, 수능은 단 한 순간의 결과로 3년의 성실성을 유추하는 평가 방식이다. 예컨대 학교를 중퇴하고 수능 전문학원에서 3년간 수능공부만 해서 성적이 잘 나왔다면 그 학생은 3년간 성실히 생활해왔다는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학교 자퇴 - 검정고시 - 입시전문학원 - 명문대 입학의 특별 코스는 이제 특별하지 않다.
올해는 고려대가 학교 등급제의 용의자로 주목받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대가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다. 고교 등급제 논란은 그야말로 활극을 연상케 한다. A 학원이 미는 학생들이 B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A학원은 학생들의 모든 입시자료와 명문대의 평가 자료를 분석해 학교등급제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고발한다. 2004년에는 국회의원이 가세해 논란이 커졌다. 결국 학원 간의 이권 다툼과 정치인의 한건주의, 명문대의 추악한 욕망이 결합된 대한민국만의 '탐욕 비빔밥'이다.
서울대에 합격한 특목고는 상위 1~6위를 싹쓸이했다. 명문대가 특목고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다만, 서울대가 최근 내신 비중을 높여 특목고생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명문대는 이른바 '좋은 학생'(=특목고 학생)을 많이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내신 비중을 줄여 왔고, 수능의 비중을 높여 왔다. 논술도 사실상 특목고 학생을 위한 성격이 다분하다. 논술에 영어가 들어가고 수학이 들어가고 일반 학생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던 추세를 살펴볼 때 이것이 얼마나 고급 시험이었는지 알 수 있다. 평소에 입시논술이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명문대는 특목고생을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명문대가 고교등급제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의 성적은 수학적으로 일정하기 때문에 특목고와 일반고의 내신 성적은 차별성이 없다. 이것이 상식적이지만, 특목고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일반고와 동일한 선에서 평가받는 데 대해서 불만이 상당히 많은 듯하다. 그래서 다른 평가방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명문대는 특목고 학생들을 많이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두 학교(명문대, 특목고)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시험이 엄청난 무게감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물신사회'의 친척인 '수능신'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가능성도 넓다. 단지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인간의 능력을 판단하기 어렵다. 때문에 입시라는 제도는 인간의 가능성을 매우 단순화시키거나 심지어 굉장히 왜곡하기 쉬운 것이다.
얼마 전 재판정에서 재판 과정을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검사의 신문과정이 수준 이하여서 실망한 적이 있다. 심지어 신문자료를 증인에게 미리 제출받아 신문을 하는 것까지 봤다. 고시원에서 평생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가 덜컥 붙어서 신분상승에 성공한 케이스다.
모든 법조인이 그렇지는 않지만, 과정이 생략돼 있는 이 사회의 평가시스템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고려시대까지는 친족 간의 결혼이 일반화되어 있었는데, 친족끼리의 결합은 유전자의 약화를 가져온다. 다양한 종이 결합을 해야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을 보면 가족끼리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괴물 같은 기형아가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실제로 가족끼리 결혼해 아이를 낳자 괴물 같은 아기가 태어났다. 우리 사회는 사실상 근친 교배 상태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오히려 퇴보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는 다양성이 죽은 사회이며 '비슷한 것'들끼리만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수능 비관 자살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자살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역동성이 상실한 데다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의 충고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내면화 된 '지적 인종주의'는 미성년자들에게 '너는 1등급'이고 '너는 9등급'이라고 등급을 매기는 행위도 마다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야만의 교육은 야만의 사회를 낳는다"(한겨레, 200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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