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잘 견뎌줘서 고맙다!
2년 전 이맘때, 네 오빠를 시험장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몇 번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눈에 이슬이 맺히고 말았단다.
지난해 12월 28일 첫눈 내리는 날, 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뒤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딸과 아들에게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눈물이 나려고 할 때 하늘을 보자. 그러나 자주는 보지 말자'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아빠도 힘들었는데 딸은 더 했겠지.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어도 늘 부족하게 받아들여지고 불평불만이 많은 게 고3인데, 슬픔까지 이겨내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3월 6일, 우리 가족 모두가 아직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네가 친구처럼 좋아하고 의지했던 오빠가 군 입대로 집을 떠났다.
입영 전날 밤 우리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케이크와 스물한 개 초, 샴페인을 준비하고 생일 축하노래에 가사를 바꿔 입영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눈물 대신 꼭 쥔 주먹을 비비며 "파이팅"을 외쳤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흔들림 없이 자기 역할을 다 하자는 다짐이었을 게다.
그런데 너는 얼마간 오빠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아빠는 안타까웠다. 아직 엄마의 빈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것도 있었겠지만 네 오빠가 유별나게 챙겨주고 예뻐해서 그랬을 것이다.
학교 갔다 와서 습관적으로 오빠 방문을 열어 보는 것을 할머니가 보셨단다.
외롭고 허전한 마을을 달래며 시험 준비를 하는 그런 네가 걱정도 됐지만 믿음직스러웠다.
가끔 아침 일찍 아침밥을 챙겨주는 할머니께 가벼운 투정을 부렸지만 그래도 잘 넘어갔다.
내년이면 칠순인 할머니, 고3을 두 번씩이나 아니 아빠까지 세 번 수험생 뒷바라지한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었다.
수능 100일 전, 가슴 뭉클한 일도 있었다. 할머니가 매일 성당에 나가서 100일 기도를 시작하신 것이다. 아빠가 말렸지만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일 기도를 하셨다. 며칠 전에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다치셔 불편하신데도 어김없이 성당을 찾으셨단다.
딸, 예진아.
너에게 2008년은 시리고 아릿한, 참 견디기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도 비켜서지 않고 받아들이며 이겨낸 딸이 대단하다. 아빠는 그래서 너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 가족에게 매섭게 불어왔던 바람도 훈풍으로 바뀌는 날이 있을 게다.
딸,
네 오빠가 정기휴가 오면 우리 가족 여행 가자.
울긋불긋 화려한 색의 잔치를 끝내고 나뒹구는 낙엽도 밟아보고, 수많은 새들이 겨울을 나며 하늘로 비상하는 순천만에도 가고, 노랑부리저어새와 쇠기러기 등 겨울의 진객이 있는 경남 창녕의 우포늪에도 빠져보자.
딸, 수능시험 준비하고 치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아빠가 꼭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