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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이면 우리가 머무는 홈스테이 집으로 놀러오는 아이들. 사람을 사귄다는 것, 관계를 맺는다는 것.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저녁이면 우리가 머무는 홈스테이 집으로 놀러오는 아이들. 사람을 사귄다는 것, 관계를 맺는다는 것.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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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쏨싹 선생님. 저는 '씅(태국 전통악기, 기타와 비슷함)'을 아이들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요. 내가 '씅'을 잘 치는 아이 하나를 소개해 주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국기게양대 밑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걸어오는 아이가 어째 뒤뚱거린다. 9월에 잠깐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아이는 멀쩡하게 걷는 아이였다.

"아이가 왜 저렇게 걷지?"
"다리가 부러졌는데 깁스를 할 돈이 없어서 그래. 왕리앙 마을은 매우 가난한 곳이지.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자신들이 먹고, 아주 적은 양만 내다 팔 수 있어."

옆에서 설명해주는 '요' 스태프의 말. 하긴 이 마을에 들어와 일주일여 생활하면서 병원은커녕 구멍가게를 제외한 건물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깁스가 어느 정도 가격이게요?"

이번엔 학교의 영어선생님께 물어봤다.

"나도 정확한 가격은 알아봐야 해요. 분명한 것은 여기 생활 수준으론 감당하기 힘들다는 거에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매우 건강하고 함께 '씅'을 쳐보면 매우 똑똑했다. 그가 걷는 자세로 봤을 때 장애를 얻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요' 스태프는 치앙마이 YMCA '피페' 매니저에게 물어보자면서 단서를 덧붙인다.

"여기는 가난한 시골이야. 저런 사례는 빈번하다는거지. 어설프게 도와주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겨. 우리는 잠시 머무르다 떠나지만 그것이 이 마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해봐.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이 아니라구.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드디어 예상하던 난제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앞 뒤 안 보고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게 맞는데, 그게 진정으로 도와주는 게 아닌 상황.

"내가 동티모르에 의료진을 데리고 자원활동을 많이 했어. 그 사회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나름 자부심도 있었지. 그런 활동이 있은 지 몇 년 후에 동티모르 정부진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어. 그들과 많은 대화가 오가고 어느 정도 친해지니까 그들이 내게 말을 하더라고."

"뭐라고요?"

"'당신 몇 년 전에 실수한 것 알고 있느냐? 의료진을 데리고 오는 것은 실상 우리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예전에 동티모르 사람들 아프면 민간치료로 거뜬히 나았는데 지금은 병원 간다고 그런다. 우리에게 병원이 충분하냐, 사람들이 갈 돈이 있냐. 어쨌든 자생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가지고 있었는데 봉사단이 그것을 깬 거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지. 그리고 한 나라의 '교육'과 '의료' 같은 부분은 절대 함부로 건들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지."

이 말은 우리 봉사단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태국을 방문했던 한국 YMCA 송진호 국제협력 실장이 한 말이다. 아마 그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다면 벌써 지갑을 털어서 그 아이와 병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고민이 사라지진 않는다. 첫 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을 거듭해도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대신 다른 상황들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학교 뒤뜰에 식물체험장을 정비하는 시간. 집에서 농사일을 자주 거드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한 명도 없음에도 말끔하게 그 일을 끝내 놓았다.
 학교 뒤뜰에 식물체험장을 정비하는 시간. 집에서 농사일을 자주 거드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한 명도 없음에도 말끔하게 그 일을 끝내 놓았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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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이들과 수업을 하거나 활동을 하러 반에 들어가면 한 두명씩 다른 짓을 하거나, 다른 곳을 응시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더디가더라도 함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따로 챙기려 들었는데 영 신통치 않다.

"'고', 그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못 듣고, 못 읽고, 못 쓰지요."

충격적인 것은 들어가는 교실마다 한 두 명씩은 꼭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마을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제때 교육받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그저 단상을 되풀이 할 뿐이다.

그러다가 카렌족 '피텅' 이장님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에게 돈은 필요 없다. 우리는 그런 것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고 먹고 살 만하다. 다만 당신들이 우리 삶을 위해 도움을 준다면 기꺼이 받을 것이고, 우리도 당신들을 위해 대접하고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친구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집을 짓고, 물탱크를 놓는 것이 봉사활동인지 알았다. 그 다음에는 가르치고, 도와주는 게 봉사활동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봉사활동이라는 게 무엇인질 모르겠다.

이른바 잘사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해외봉사'를 나가는 것. 과연 그들을 위해서 고민하는 것일까? 이른바 자기만족을 위해 행하는 이기적 행위는 아닐까?

"당신은 이 곳에 왜 왔습니까?"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단순히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라는 대답으로 떼우기엔 너무 많은 것을 보고야 말았다. 아마도 난 아이가 장애를 가지지 않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진 몰라도 내 돈을 내서 손잡고 병원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생김새도, 말도, 행동도 다른 이가 친구가 되기 위해 이 곳에 왔다는 것. 그리고 오만한 편견으로 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이런 식의 글로나마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내가 말한 다리가 부러진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는 항상 나를 보면 더 없이 해맑게 웃는다. 그 아이들을 따라 굳어진 내 얼굴이 서서히 녹아들고 있다. 항상 머리를 치는 생각이지만,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러왔는지, 도움이란 단어 속에 숨은 제국주의 감성을 발견하곤 한다.

놀이를 하는 시간의 아이들의 모습.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를 따라서 다같이 열심히 참여한다.
 놀이를 하는 시간의 아이들의 모습.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를 따라서 다같이 열심히 참여한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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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어놀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와 함께 했던 놀이를 제법 혼자하기 시작한다. 학원이 있을 리 없는 왕리앙 마을, 치열한 학구열은커녕 대학교로 과연 1명은 갈 수 있을지 의문인 왕리앙 학교. 항상 학교와 학원에 둘러싸여서, 그 사이클을 벗어나면 상당수는 일탈의 길을 겪는 우리네 아이들.

중학교 3학년 '못'이라는 친구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주말에 놀러 못가요. 엄마 도와서 밭일 해야 해요."

그 표정을 보면 그 일이 즐겁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된다. '왕리앙' 마을에 필요한 것은 결코 돈이 아니었다. 세상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특히 가난할수록.

덧붙이는 글 |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태국 팀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태국 북부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태그:#라온아띠, #YMCA, #KB, #태국, #해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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