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로 세상살이가 더 팍팍해지는 요즘, 사람과의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 신경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이 오히려 좀 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모아봤습니다. 우리 시대의 진상들. 도서관과 지하철 그리고 극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편집자말] |
"어떤 영화보시겠습니까?"
"OOO로 줘봐. 근데 얼마야?""7000원이십니다.""자리는……. 좋은 데 없어?"세상에. 아무리 내가 어리고, 아르바이트생이고, 이렇고 저렇고를 다 따진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반말을 하는 어른들이 너무 싫다. 왠지 내 자신이 초라해지면서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괜히 기분 나쁘단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보다 어른이기도 하고, 손님이기도 하고 이렇고 저렇고 다 따져도 내가 '기어오를 군번'이 아닌 거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주말에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란 게 용돈을 벌자는 것이 1차 목표지만, 이번 일은 '영화를 공짜로,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시작했다. 만날만날 영화보고, 재미있는 건 한 번 더 봐야지? 하며 부푼 꿈을 안고 알바를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 생각보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볼 수가 없다는 게 첫 번째요. 두 번째는 지극히 사소한(?) 일인데 앞에서 살짝 언급한 '진상 고객'들 때문이었다.
어딜 가도 꼭 이런 사람 있다?
생각해 보니 어딜 가나 '진상' 고객은 있었다. 내가 몇년 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의 일인데, 서빙하는 아이가 실수로 손님 와이셔츠에 소스를 조금 엎지른 적이 있었다.
나보다 더 어리버리했던 그 알바생이 울먹울먹 사과를 하는데도, 손님은 들은 체 만 체 하며 목청을 높일 뿐이었다. 결국은 명품 셔츠 운운하면서 자기가 먹은 십몇만원치의 식사를 공짜로 퉁 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면 곱게 볼 수만은 없는 법이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닐 때, 일을 하면서 가장 속상한 순간은 생떼를 쓸 때다.
안 된다고 하는데도 부득부득 "왜 안 되냐?"고 따지고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개 아르바이트생인 나에게 너무 과도한 걸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저기요. 이거 할인 되나요?(천원 할인되는 카드를 들고 왔다)""네. 그런데 인터넷으로 이미 예약을 하셔서 환불을 하고 다시 결제해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네, 해주세요. 지금 바로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해주세요."해달라고 해서 해줬다. 일단 환불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 카드는 현장 할인 카드였는데 실적이 없는지 천원 할인이 안 된다는 창이 열렸다. 안 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어떡할 거냐고 한다.
"다시 끊어드릴게요" 하니까 캐시백으로 500원 할인 받았는데 그 500원은 어떻게 되냔다. 환불하면 자동으로 포인트도 되돌아간다고 말씀드리니, 그럼 지금은 캐시백 500원을 쓸 수 없으니(현장에선 5000원 이상만 사용 가능하다) 돈 다 주고 영화를 봐야하는 거냐며 버럭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이미 영화는 시작한 지 1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야 하는 판에 그 500원 가지고 부득부득 화를 내고 있는 그 사람.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는데도 계속 다그치며 뭔가를 요구하는 그 사람. 아! 진짜 진~상이다.
이랬다 저랬다, 팝콘 흩뿌리기는 기본
뭐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도 있다. 자꾸 이랬다저랬다 마음을 바꾸는 손님이 등장한 거다. "이 영화로 끊어주세요" 하다가 "죄송한데요, 이 영화로 변경해도 될까요?" 하곤 다시 또 서너 번 바꾸기를 반복하면서 계산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주범이다. 그리곤 이렇게 대꾸한다.
"근데요.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이 사람부터 해주세요?"상영관 내에서도 종종 '진상 고객'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 중 으뜸은 단연 '팝콘 흩뿌리기 권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소림에서 다년간 연마한 그 기술을 사방팔방에 전수하는 통에, 영화 상영이 끝나고 상영관 청소를 하러 갈 때면 팝콘 대참사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꼭 음료컵도 팝콘 컵도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쟁터를 방불시키는 그 현장에서 가끔 넋을 잃는다.
앞의 경우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살짝 귀엽기도 하고, 살짝 부럽기도 한 케이스도 있다. 이름을 붙이자면 '니 애욕전선 문제있다' 유형! 이 커플은 처음부터 강한 포스를 발휘하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표 끊을 때부터 이들의 관심사는 이 한 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좌석은요. 맨 뒷줄, 맨 구석에 주세요."자리가 널찍한데도 굳이 꼭 집어서 거기에 앉고 싶다고 하는 커플! 이는 영화는 조금 덜 보겠다는 속셈인데 음……. 세계평화와 인류역사에 대해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하는 건 아닐 테고, 뭘까? 도대체 뭘까? 라고 말하고 있는 난 사실 부러워서 그러는 게 맞다.
아무튼 진상 고객들을 열거하다 보니 그 수도 종류도 다양한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순순히 당하고만 있느냐고? 천만의 말씀! 소심 복수 대마왕인 나는 가끔 '진상' 고객을 만나면 팝콘을 조금 덜 준다든지, 가장 맛없어 보이는 핫도그를 준다든지, 하다 못해 돌아서는 뒷모습을 한 번 째려봐 준다든지 소심한 복수를 한다.
그거 해보면 은근히 통쾌하다. 돌아서서 혼자 킥킥대는 정도라면 딱 좋은 표현일 것 같다.
나도 우체국에서 제대로 진상 한 번 떨어봤다그렇데 이렇게 '진상' 고객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자니,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나라고 마냥 알바생의 입장만은 아니다. 종종 소비자나 손님의 입장이 될 때가 있다. 아니, 훨씬 많겠지. 아무튼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진상'이 될 때도 있다.
그러니까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나의 어제를 떠올리자면, 나 우체국에서 제대로 진상 한 번 떨어봤다.
마감을 30분 남긴 우체국에 가서는 등기를 무려 89개나 붙여버린 거다. 거기에다 우편 번호를 하나도 적지 않는 센스(?)를 발휘해서 처리 시간을 순식간에 배로 불려버렸다. 나는 우체국의 한 편에 꿔다놓은 보리 자루처럼 붙어 서서, 참을성 있고 상냥한 우체국 직원에게 두 번씩이나(!) 감정이 꾹꾹 눌러 담긴 이 말을 들어야 했다.
"다음부터는 꼭 우편번호를 적어오세요." 뒤늦게 책자를 뒤적이며 열심히 우편 번호를 찾느라 부산을 떨며, 우체국 직원에게 미비한 도움이 되고자 했으나, 이미 내 뒤에는 십여명이 줄을 늘어서 있었다. 자꾸만 뒤통수가 따끔따끔해졌다.
그러니 나도 이런 글을 쓸 입장은 아닌 셈이다. 그러고 보면 그 사람의 입장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게 된다. 내가 영화를 볼 땐, 엔딩 크레디트를 볼 여유를 빼앗는 극장 직원의 목소리가 싫을 때도 있는데, 일하는 입장이 되면 시간 내 해결해야 할 극장 청소 때문에 끝까지 앉아 있는 관객들이 얄미울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더더욱이나 간사해지는 느낌이다.
늘상 마무리는 훈훈하게, 나의 일련의 행위들을 반성해본다. 그리고 나의 대책 없는 행동들 때문에 힘들었을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부턴 다른 사람에 대해서 투덜거리지만 말고, 나의 사소한 행동들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한다면, 서로의 '진상' 리스트에 오를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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