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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난 오렌지색만 보면 흥분했다. 가슴이 콩딱 뛰고, 입가엔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팬도 아니다. 그래도 난 오렌지색에 열광했다. 오렌지색은 나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시켜줄 것만 같았다.

 

1년이 지난 지금, 난 오렌지색만 보면 여전히 흥분한다. 가슴이 쿵쾅 뛰고, 입가엔 쓴 웃음이 번진다. 꿈꿔왔던 모든 일은 멀어져갔다.

 

1년 간 나를 웃기고 울렸던 오렌지색, '미래에셋' 덕분이다.

 

처음 받는 월급, 이걸 어디에 써야 하지?

 

 

2007년, 드디어 사회인이 됐다. 사회인이 되면서 가장 달라진 건, 대학 때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단 것이다. 그것도 꽤 많이….

 

대학 시절, 과외와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달에 꾸준히 80만원 정도씩 벌며, '난 부르주아 대학생'이라며 오만해 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갔다. 연봉이 그리 많지 않은, 아니 솔직히 말해 연봉이 적은 회사에 들어갔다. 근데 아무리 연봉이 적어도 대학생 때 꾸역꾸역 번 돈보다 훨씬 많았다.

 

사회인이 됐다고 해서 돈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밥값·술값은 대부분 선배들 몫이었다. 기껏해야 친구나 후배들 만났을 때, 술이라도 한 잔 사는 것이 나의 지출 생활의 대부분이었다.   

 

자연히 돈이 남았다. '이 돈을 어떻게 굴릴까' 고민하던 나에게 '오렌지색 전도사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렌지교', 이건 거의 종교네

 

2007년 사회 초년생들에게 '펀드 열풍'은 하나의 전염병 같이 퍼져나갔다. '재테크'의 'ㅈ' 자도 모르는 시기, 갑자기 매달 들어오는 이 월급을 어떻게 관리할까 고민하던 때에, 넣기만 하면 10~20%의 수익은 물론 50% 이상까지 불릴 수 있다는 유혹을 견딜 수 있는 사회 초년생은 별로 없었다.

 

사회에 먼저 진출한 선배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펀드 열풍에 동참하길 권했다. 은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적금을 들기 위해 은행을 찾았을 때 "요즘 누가 적금 들어요? 그건 부모님 세대나 드는 거예요"라며 펀드 투자를 권했다.

 

그리고 열에 아홉이 추천하는 펀드가 있었다. 이름 앞에 '미래에셋'이 붙은 펀드다. 무조건 믿으란다. "못해도 30%는 수익이 날 것이다"며, 미래에셋 펀드를 권했다.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 주변에 투자를 했다는 사람들은 거의 '미래에셋'을 들었고, 은행에서도 "미래에셋은 신화다"며 "지금 안 들어가면 정말 후회하실 것"이라며 직접 투자와 간접 투자의 개념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훈계했다.

 

드디어 동참했다. 처음 든 4개의 펀드 중 3개가 미래에셋이었다. 나도 '오렌지교'의 신자가 되고 말았다.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이뤄요... 미래에셋과 함께

 

펀드에 가입하면서 난 은행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불안하진 않죠? 원금을 까먹거나 하는 건 아니죠?"

"에이~ 요즘 뉴스 안 보세요? 내년엔 코스피가 3000도 넘는다잖아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네?"

"원금 보장되는 펀드는 없죠. 그래도 절대 걱정 마세요."

 

은행 직원의 마지막 말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줬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만큼 몰랐다. 사실 펀드가 원금 보장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월급의 상당 금액을 꼬박꼬박 펀드에 넣었다. 펀드는 마법이라도 부리듯 돈을 마구 불려줬다.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 주머니' 같았다. 미친 듯이 수익률이 올라갔고, 거의 모든 펀드가 30%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었다. '옥에 티'라면 안정성을 위해 넣었던 비(非) 미래에셋 펀드. 혼자서 10%대 수익률에 허덕이고 있었다.

 

꿈이 하나 생겼다. 회사 입사와 함께 햇빛 안 드는 반지하 전세방에 입주한 나에게 '지상 진출 욕구' 및 '광합성 욕구'가 생겼다. 이런 속도라면 내년쯤 펀드로만 2000만원 정도 될 것이고, 반지하 보증금에 합치면 햇빛 드는 방으로 이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꿈은 금방이라도 이뤄질 것 같았다. 미래에셋과 함께라면….

 

100년 만의 투자 기회... 100년 만의 환매 기회는 없나?

 

2008년이 왔다. 봄날은 길지 않았다. "원금 보장 안 된다"는 은행 직원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코스피 지수는 미친 듯이 떨어졌다. "3000까지 문제없다"던 경제 대통령은 이런저런 사고만 치더니, "나도 펀드 투자하겠다"는 망언으로 그나마 남았던 투자자들까지 떨어지게 했다.

 

항상 붉은 색으로 표시되던 수익률 표는 점점 파래졌다. 내 마음도 퍼렇게 멍들어 갔다. 올해 안에 지상으로 승천하겠다는 내 꿈은 멀어져갔다.

 

'팔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의 '환매 충동' 욕구를 막아준 것이 있으니 바로 미래에셋의 광고. '길게 보는 장기투자, 투자의 기본입니다'란 문구가 내 발목을 잡았다.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많은 돈을 투자했던 '인사이트 펀드'마저 붕괴하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의 통찰력(insight)을 믿었건만, 결국 중국에 '몰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내 돈도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글로벌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코스피 얘기만 들어도 코피가 날 지경이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오렌지교'의 박현주 교주께서 한 마디 하셨다.

 

"100년에 한번 있을 만한 절호의 투자기회다(10월 24일 전국 지점장 회의에서)."

 

이제 이런 말 듣고 흔들리진 않는다. 그만큼 나도 내성이 생긴 셈이다. 다만 교주님께 아쉬운 점 있다. "100년만의 투자 기회" "길게 보는 장기투자가 투자의 기본"이란 말도 좋지만, "100년 만의 환매 기회"·"손해 보더라고, 지금 환매하고 숨 고르기 해야"란 말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 때 '증권가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던 전문가라면, 적절한 환매 타이밍도 잘 알지 않을까? 투자자도 어떻게 보면 고객이다. 고객에게는 올바르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줄 의무가 있다. 무조건 투자만 하라고 부추길 것이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지금 환매 하시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해줬다면, 이렇게 미래에셋에 분노한 투자자들이 소송까지 거는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오렌지색', 어찌됐건 고맙다

 

-43%, 다행히 그 흔한 '반토막'은 아니다. 천덕꾸러기였던 '비 미래에셋 펀드'가 선방해준 덕분이다. 500만원 가까운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또한 지상으로 진출하겠다는 나의 꿈도 훗날로 미뤄야 했다.

 

그래도 난 펀드를 팔지 않았다. 앞으로도 웬만해선 팔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처음보단 적은 돈이지만 꾸준히 불입을 하고 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루하루 수익률을 체크하고 매달 운용보고서를 꼼꼼히 본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오렌지의 마법'을 믿었던 작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 이제야 뭔가 좀 보인다. 500만원이라는 좀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덕분에 공부 잘하고 있다. 이제 '묻지마 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다. '불로소득'을 바라기보단 술값·담뱃값 아껴 돈을 덜 쓰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란 것도 알았다.

 

1년 사이에 꿈과 희망·좌절과 허탈감을 동시에 맛보게 해줬던 오렌지색. 어찌됐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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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펀드, #미래에셋,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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