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암동 2공단의 직장에 다니는 최호진씨(40.쌍용동).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하다가 작년 10월부터 자출사(자전거로출퇴근하는사람들) 대열에 합류했다. 허리 수술 뒤 건강에 좋다는 지인의 권유로 시작했다. 자출사 경력 1년째. 자전거는 삶에 빼 놓을 수 없는 활력소가 됐다.
자동차에 떠 밀려 아이들의 탈 것으로 여겨지던 자전거가 일상 속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유가의 파고를 지나오며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뒤처진 것은 천안시 행정. 천안시 자전거 정책은 낙후성을 벗지 못해 자전거 이용 활성화는 커녕 시민들 불편을 야기한다.
자전거전용도로 없는 천안, 이용자 불편 가중
쾌적한 자전거도로는 자전거 이용을 촉진한다. 그래서 자전거도로 설치 수준은 자전거 이용 여건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이다. 법률상 자전거도로는 세 종류. 자전거만이 다닐 수 있는 자전거도로,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 자동차도 통행할 수 있는 자전거자동차겸용도로이다.
천안시에 따르면 11월 현재 천안시 자전거도로의 계획상 총 연장은 2백8㎞. 실제 자전거도로로 정비된 구간은 83㎞이다. 여기서 정비된 자전거도로란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를 뜻한다. 천안에 시설된 자전거도로는 모두 인도상 설치된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이다. 자전거전용도로는 한곳도 없다.
말은 자전거도로이지만 인도상에 보행자와 자전거가 함께 통행하며 서로 불편하다. 자전거도로의 주인은 보행자와 자전거 말고도 또 있다. 인도를 불법 점유하고 있는 자동차, 상점마다 내놓은 간판과 진열상품 등으로 자전거도로는 늘 혼잡하다.
지난 6월 시의원 보궐선거에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선거구를 누빈 진보신당 이윤상(43.백석동) 후보. 선거 뒤 이씨는 성정동 가구거리에 소재한 진보신당 충남도당 사무실과 백석동 집을 자전거로 오간다.
"분통이 터질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자동차 몇 대가 자전거도로를 버젓이 가로막아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간 적도 있습니다."
백석동 운동장 사거리와 번영로를 거쳐 집에서 직장까지 30분 가량 10㎞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최호진씨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 놨다.
"자전거도로가 갑자기 끊기거나 노면정비가 부실해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죠. 자전거도로를 차지한 자동차와 온갖 물건들은 이제 익숙한 지경입니다."
자전거도로의 불법 적치물은 쌍용대로, 천안대로, 서부대로 등 도심 자전거도로의 공통된 문제이다. 이렇게 자전거도로가 불편하다보니 일부 자전거 이용자는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동차 천국인 도로를 달린다. 천안에는 왜 자전거전용도로가 없을까. 천안시 도로지원팀 관계자는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만큼 천안은 도로와 인도 폭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안은 있다. 차선을 줄이거나 간격을 좁혀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드는 '도로 다이어트.' 서울시는 얼마전 도로 다이어트로 자전거전용도로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우수 천안YMCA 간사는 "도로를 자동차가 독점해서는 안된다"며 "천안시도 도로 다이어트를 도입해 자전거전용도로 개설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시 자전거 이용시설 정비계획 유명무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방편으로 천안시는 지난 2006년 '천안시 자전거 이용시설 정비계획'을 수립했다. 외부기관에 의뢰해 수립한 정비계획에는 용역비로만 5000여만원이 사용됐다.
정비계획에 따르면 2008년 천안시 자전거 보유대수는 7만6859대, 자전거 1대당 인구수가 7.49명으로 예측됐다. 이에 발맞춰 정비계획은 2006년 6억4000만원, 2007년 12억6900만원, 2008년 12억8700만원 등 2010년까지 총 57억원을 자전거도로 확충 등 자전거 이용시설에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3년이 흘렀지만 자전거 이용시설 정비계획에 따라 집행된 예산은 한 푼도 없다. 자전거도로 신설은 3년째 제자리 수준이다. 별도 예산 없이 인도 정비시 부분 보강만 이뤄져 천안시 자전거도로는 재질과 색깔이 천차만별이다.
정비계획은 또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전담부서 설치를 제안했다. 천안시는 올해 구청 개청에 따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자전거 전담부서는 설치되지 않았다. 자전거 관련 업무는 이용시설 정비계획 수립은 본청에, 자전거도로 시설 및 관리는 2개 구청으로 오히려 이원화됐다. 시행하지도 않을 정비계획 수립에만 결국 수천만원의 헛돈을 날렸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대한 천안시의 무관심은 교통정책에서도 확인된다.
천안시는 앞으로 5년간의 천안시 교통정책 청사진을 담은 '천안시 대중교통기본계획'을 올해 수립중이다. 기본계획안에는 시내버스와 택시 등 각 교통수단별 교통.수송 분담률의 현황과 목표치가 산정되어 있다. 자전거는 독립된 항목 없이 기타에 포함됐다. 시 교통과 관계자는 "자전거는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교통기본계획에 미반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첨단도로교통연구실 백남철 선임연구원은 대중교통기본계획에 자전거를 미반영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행태라고 지적했다.
백 연구원은 "대중교통 이용증대의 핵심은 자동차 억제"라며 "자동차 억제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가 동반돼야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현재 교통.수송 분담률에서 자전거의 비중이 낮다고 미래계획에서도 배제하는 것은 자동차 중심의 과거에 머무르겠다는 안일한 발상이라고 단언했다.
천안은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자전거 이용시설 정비계획과 더불어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 조례는 도병국 시의원의 대표발의로 2007년 11월 만들어졌다.
조례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을 나열하고 있다. 시민자율자전거 운영, 자전거 이용의 날 지정.운영, 자전거 교통안전 체험 교육장의 설치.운영, 시범지역 및 시범기관의 지정.운영 등이 조례에 명시된 사업들이다.
지금까지 실천된 것은 없다. 조례 제정을 주도한 도병국 의원은 "자전거 이용 활성화 업들의 추진을 시에 요구해도 반영이 되지 않는다"며 갑갑함을 토로했다.
공무원들도 고충은 있다. 천안시 도로지원팀 담당자는 "사업 예산을 제안해도 우선 순위에서 밀려 배정되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돈이 없으니 자전거도로 신설이나 편의시설 확충 등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
회원 수 3백여명인 '천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천안지역 자전거 이용 활성화 방안을 물었다. 여러 건의 답글과 의견이 올라왔다. 아이디가 '델타소년'인 회원이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다른 의견 필요 있나요? 출.퇴근 시간과 주야간 다양한 시간대에 공무원들이 직접 자전거를 이용해서 여기 저기 다녀보십시오. 그게 제일 좋을 겁니다."
이런 의견을 예견했을까. 천안시 지역경제과는 지난 8월 27개 읍.면사무소와 동주민센터에 적게는 2대, 많게는 6대의 자전거를 각각 배분했다. 새로 생긴 대형할인점 홈플러스가 천안시에 기증한 총 1백대의 자전거가 사용됐다. 공무원들은 공짜로 생긴 자전거를 잘 타고 있을까.
지난 6일 도심의 한 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이곳에 배정된 자전거는 3대. 2대는 저소득 가정에 전달되고 나머지 1대는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관내 출장시 간혹 이용하지만 활용도가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