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디자인서울' 사업 중 하나인 '간판개선사업'이 최근 경기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 상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아름다운 간판개선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송파대로 지역 상인들의 불만은 심각하다. 기존 간판을 새로운 옥외광고물 규정에 따라 교체하는 과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구청이 새로 교체해야 하는 간판을 판류형(형광등) 간판보다 값 비싼 LED 간판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는 지난 4월부터 올림픽로(종합운동장사거리~몽촌토성역, 2.8km)와 송파대로(석촌호수남단~가락역사거리, 2km) 상인들과 건물주를 대상으로 불법간판 자진정비를 통보하는 한편, 국비와 구비 총 12억 7400여만원을 확보해 올 연말을 목표로 간판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월세도 못 내는 상황에서 거리 미화라니..."
지난 14일 만난 송파대로변의 상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송파구청이 상인들의 고통은 생각 않고 무작정 간판개선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송파대로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고민수(29)씨는 "구청이 LED 간판으로 교체할 것을 강요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현재 서울시의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가로형 간판의 경우, 건물 정면 2~3층은 LED 간판을 달 것을 의무화했지만 건물의 1층의 경우 판류형 간판도 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송파구청은 1층에 입주해 있는 고씨의 철물점 간판도 LED 간판으로 바꾸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고씨는 이에 대해 구청에 몇 번씩 문의했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구청 직원은 고씨에게 "LED 간판이 형광등을 사용하는 판류형 간판에 비해 전기값이 적게 들고 송파대로가 특별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고 했다.
고씨는 "구청에서 지정해 준 업체가 뽑아 온 견적서를 보면 상호명, 전화번호를 넣는 기본형만으로도 241만원 정도가 든다"며 "구청에서 150만원을 지원해주지만 90만원이 넘는 돈을 부담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고씨의 철물점과 멀지 않은 곳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아무개(57)씨의 불만도 고씨와 비슷했다. 정씨는 "거리미화도 좋지만 경기가 다 죽어서 월세도 못 내는 지금 간판을 바꾸라는 것은 굶고 있는 사람에게 '명품' 입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언제 폐업을 할지 모르는데 LED 간판의 수명이 긴 지 아닌지가 무슨 상관 있냐"고 말했다.
정씨는 또, "구청에서 지정한 LED 간판의 글씨 크기도 작아 간판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며 "구청의 간판개선사업은 대로변의 상권만 죽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탁·수선점을 하고 있는 정찬흥(52)씨는 "새로 간판을 달 사람이나 간판허가가 만료된 사람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되지 왜 멀쩡한 것도 다 떼버리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씨는 "구청이 간판 연장도 다 중지시키고 반강제적으로 여기 있는 상점들의 간판을 다 획일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게 꼭 공산주의 국가 같다"며 "힘 없는 우리는 행정기관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지만 장사도 안 되는데 돈을 이중으로 들여야 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구청 "지원금까지 받아낸 사업, 중단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인들의 불만은 송파구청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방침은 확고했다.
지부근 송파구청 광고물관리팀장은 "경기가 어려워 상인들의 불만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올해 말까지 사업을 완료하기로 계획돼 있어 중단할 수 없다"며 "사업을 중지시킬 경우 선정 업체들에게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는 등 지금까지 든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인들의 반발이 심한 LED 간판 교체 문제에 대해서는 "지식경제부로부터 LED 간판 교체 명목으로 1억여원의 지원금을 받은 상황"이라며 "LED 간판 교체를 통해 기존 판류형 간판에 비해 최대 67% 정도 전기값이 덜 든다는 연구결과까지 있어 '에너지 절약'이라는 정부시책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지 팀장은 또 "주민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사전에 불만을 가라앉히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 경우 타 구청의 경우를 살펴볼 때 사업 진척이 느리고, 송파구의 사업구역이 너무 넓어 불가능했다"며 "상인들을 최대한 설득하면서 사업을 계속 진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송파동의 경우 옥외광고물의 70%가 이미 불법옥외광고물이었지만 구에서도 주민들의 불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법과 불법 가리지 않고 간판개선사업의 지원금을 주는 상황"이라며 "구청 역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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