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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의원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직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약 10년간 근무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휴직 중인 사람입니다.

언론 보도를 보니 의원님께서 지난 11일 진주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심화교육과 제8회 정기총회' 특강 자리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더군요.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붓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붓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붓감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고 논란이 되자 아래와 같이 해명하셨습니다.

"교사들을 비하한 게 아니라 교사들이 우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교사들이 우수한 사람들인데,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단초가 교원평가제 도입이라고 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야기처럼 교원 대우가 나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교사가 우수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한 것인데 비하라고 하니 당황스럽다."

하지만 의원님께서 하신 이 이야기가 여교사들에 대한 이해가 전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기대했던 여성 의원의 뜻밖의 발언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6정책조정위인 나경원 의원이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심화교육과 제8회 정기총회'에서 특강을 하면서 "1등 신부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부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부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부감은 애딸린 여자 선생님"이라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 1등 신부감은 예쁜 여선생, 2등 신부감은 못생긴 여선생, 3등? 4등?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6정책조정위인 나경원 의원이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심화교육과 제8회 정기총회'에서 특강을 하면서 "1등 신부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부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부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부감은 애딸린 여자 선생님"이라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 경남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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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의원님이 부지런히 국정 활동을 하면서 여성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장애아 딸을 키우면서 "장애아동의 의료 및 교육 혜택을 늘릴 수 있도록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안 마련에 힘쓰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신 것을 보면서,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 국회의원이라고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과연 '여성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는' 의원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우선 신붓감 등급은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7월 자신을 '관기(官妓)'에 비유한 정광용 박사모 회장을 고소까지 하셨던 의원님이 여성의 순위를  예쁘고 못생긴 것에 따라 매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야말로 여성을 외모 중심으로 평가하는 왜곡된 사회 풍토 조장에 앞장서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뿐 아닙니다. 이혼한 여성, 애 딸린 이혼 여성까지 폄하한 발언도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의 외모로 순위매김하는 미인대회도 이제 더 이상 공영방송에서 방영되지 않는 실정에서, 외모와 이혼 여부 등으로 여성의 순위를 매기시는 의원님의 시대착오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외모와 이혼 여부로 매긴 여성 순위, 기준이 뭔가요

발언이 문제가 되자, 의원님께서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야기처럼 교원 대우가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전하기 위해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는 얘깁니다.

제 친구 중에는 결혼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있고, 끊임 없는 야근에 아이 낳기를 미루다가 힘들게 아이를 가진 친구도 있습니다. 그들에 비해 여교사들은 상대적으로 근무 조건이 좋은 편이지요.

아이를 출산하면 3년이나 휴직이 가능하고, 출퇴근 시간이 타 직장에 비해 비교적 일정하다는 것은 여교사들이 누리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기서 제가 '혜택'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여성으로서는 참 비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의원님도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니 아시겠지만, 아이가 어릴 적에는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직장 구조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고 휴가 한 번 쓰려 해도 눈치가 보입니다.

모 교육방송에 다니던 한 친구는 9개월 간 육아휴직을 하고 직장으로 돌아가 보니 책상이 한쪽 귀퉁이에 밀려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는 결국 권고 사직을 당하고 집에 있다가 피나는 노력 끝에 다시 직장을 잡아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이번 직장에서만큼은 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 야근을 자주 하는 편이라 아이하고 함께할 시간이 없어서 항상 걱정이 많습니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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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지금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의 생활이 이렇습니다. 단순한 생각에서 '여교사, 휴직도 있고 복지도 잘 되어 참 좋은 직업이다'라고 말씀하지 마시고, 이런 좋은 혜택을 많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법령 제정 등에 힘을 쏟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또 하나 의원님께서 '좋은 신붓감' 이라고 극찬하신 여교사들도 그렇게 좋은 직업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열악한 교실 환경과 업무 환경'입니다.

제 경우 그 전에는 없었던 천식이 교사 생활을 오래하면서 발병해 매우 고생하였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니 교실 먼지가 복잡한 지하철 통로 먼지보다 몇 배나 더 많고 교실의 오염 수준이 호흡기 장애를 일으킬 만큼 심각하다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이뿐인가요? 오래 서 있으면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직업이어서 체력적인 소모도 무척 큽니다. 오래 서 있는 직업적 문제로 유산율과 조산율이 높은 직업군이 여교사라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 중에는 조산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의원님께서 이번 발언을 계기로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여교사, 그리 쉽고 만만한 직업만은 아닙니다.

교원 평가 도입을 위한 발언이었다고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의원님의 해명 부분에서 교원 평가제가 공교육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건 정말 교직 사회의 내부 구조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조직이 마찬가지겠지만, 교직사회의 경우 '능력보다는 경력, 연장자 우선주의'가 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원 평가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지금도 '근무 평가'라고 해서 학교의 교장, 교감, 부장들을 중심으로 한 평가단이 전체 교직원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의 풍토상 '연세 많으신 선생님, 부장직을 맡으신 선생님, 앞으로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선생님'께 좋은 점수를 몰아주는 것이 대부분 학교의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원 평가제를 적극 도입하고 그것을 교사의 평가 잣대로 적용한다면 '나이가 적지만 수업에 열의가 있는 평범한 선생님'은 제일 낮은 점수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평가가 지속되어 교사들을 상대로 줄 세우기 하는 것이 공교육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전에는 임용고사가 없었기 때문에 사범대학(교육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사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임용고사 제도가 있어서 적절한 평가를 거친 사람들이 교사직에 들어 오고 있습니다. 이미 한 번의 '평가'를 거친 것이지요.

그리고 중간중간에 직무 연수, 자격 연수, 기타 연수 등의 제도를 통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꾸준한 재교육을 받아 교사 자질 함양에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내부에서도 '동료 장학, 자율 장학' 등의 제도를 도입해서 스스로 능력 향상에 힘쓰고 있구요. 가장 큰 평가자들인 학생들 또한 선생님들에게는 늘 무서운 눈과 입입니다.

나 의원님 말씀대로 공교육이 신뢰 받기를 저도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공교육이 신뢰 받는 방법의 1순위가 교원평가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교사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겠지만  입시 위주 교육과 대학 서열화, 특목고 위주의 정책과 영어 중심 교육 등 공교육 불신은 교육의 핵심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나경원 의원님에게 이번 일이 대표적인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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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경원, #여교사 비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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