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 인기프로그램 <1박2일> 소개 페이지.
 KBS 인기프로그램 <1박2일> 소개 페이지.
ⓒ KBS

관련사진보기


1년 넘게 일요일 저녁 KBS 예능을 책임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민MC 강호동을 필두로 허당 이승기, 초딩 은지원, 막일 이수근, 야생 MC몽, 야인 김C까지… 여섯 남자가 벌이는 유쾌한 여행 버라이어티 <1박2일>이 바로 그것이다.

방영 초창기, 6명이라는 집단 MC체제와 각본없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의 아류로 평가받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이 쏙 들어갔을 정도로 <1박2일>은 ‘리얼’에 ‘야생’을 더한, 자신만의 색깔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주말(16일)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TV 앞에 자리를 잡고 <1박2일>을 시청했다. 그런데 평소처럼 웃음이 찾아들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10분 더 편성하여 총 70분에 이르는 시간동안 방영한 <1박2일>을 보는 내내 드는 기분은 예능 프로를 볼 때의 '즐거움'이 아닌, 안 좋은 뉴스를 접했을 때의 '불편함'이었다.

이번 <1박2일>의 주제는 ‘혹한기 대비 동계훈련’, 이름 그대로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하여 훈련하는 여행이었다. 문제는, 그 내용이 ‘훈련’의 차원을 넘어 ‘가혹행위’로 보일만큼 심한 수준이라는데 있었다.

강원도 인제의 한 외딴 흉가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1박2일> 멤버들, 저녁밥을 먹기 위해 밥을 지었다. 저녁 메뉴는 카레라이스. 그런데 카레, 당근, 양파, 감자와 같은 재료를 제작진으로부터 얻기 위해 멤버들은 게임을 해야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에서 MC들과 게스트가 식재료를 자연으로부터 직접 구한다는 수고로움을 컨셉으로 잡아 영상으로 내보내는 만큼, <1박2일>도 편하게 앉아서 식재료를 받기엔 모양새가 영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게임에서 은지원이 패해 가장 중요한 카레가루를 얻지 못했다. 결국 MC들은 수저를 포기하는 대신 카레가루를 얻는 조건으로 음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흙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카레라이스를 먹는 멤버들, 그들의 처량한 몰골에 카메라 뒤 제작진은 ‘큭큭’거리며 웃어댄다.

거기에 더해 제작진은 ‘진정한 빈곤’, ‘인도? …도 아니고 그냥 거지들’, ‘걸인도 기가 안 차는 저녁밥’과 같은 자막을 깔아준다. 마지막 자막이 압권이었다. ‘아무튼 한 번은 유쾌한 체험’이란다.

 '훈련' 차원을 넘어 '가혹행위'로 보일 만큼 심한 수준

불행히도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련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저녁을 먹은 뒤 제작진은 호떡을 준비했다. 역시 거저 주진 않는단다.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해 이기는 팀에게만 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게임의 내용, 상상 이상이다. 첫 번째 게임은 팥빙수 빨리 먹고 휘파람 불기, 겨울이 다가오는 강원도 산속 그 추운 날씨에 팥빙수를 ‘빨리’ 먹고 휘파람을 불라니… 추운 날 찬 음식 빨리 먹는 게 ‘혹한기 훈련’이란 말인가? 

카메라에 불은 들어오고 방송은 해야겠고, MC들은 허겁지겁 팥빙수를 먹기 시작한다. 몇 숟갈 뜨지도 않아 이내 얼굴이 일그러진다. 한여름에 먹어도 뒷골이 당기고 몸이 서늘해질 양의 빙수를 그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빠르게 먹으려니, 이건 차라리 고문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누구 하나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그릇을 비웠다. 마지막에 속도를 내어 거의 들이붓다시피 한 이수근은 게임이 끝난 이후에도 고통스러운지 고개를 떨구고 인상을 찌푸리며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날 <1박2일> 혹한기 훈련의 절정은 ‘옷 벗기 게임’이었다. 제작진이 낸 퀴즈를 두 팀이 푸는데, 틀린 쪽의 멤버가 옷을 하나씩 벗어야 한단다. ‘왜 옷을 벗어야 하냐?’, ‘방송에서 옷을 벗어도 되냐?’는 MC들의 질문에 제작진의 대답은 점입가경이다. ‘여기 박스나 그 밖에 가릴 게 많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동절기에 대한 대비책을 기를 수 있다’는 제작진, 그런데 뭐가 훈련이고 뭐가 대비책인가?

누군가 문제를 맞출 때마다 누군가는 옷을 벗어야 한다. 옷을 벗는 한 사람으로 선택된 김C, 같은 팀인 이승기가 답을 모를 때마다 몸에 걸친 옷가지를 하나씩 벗는다. 어느새 윗도리를 모두 벗은 김C, 추위에 벌벌 떠는 그에게 같은 팀 강호동은 바지와 속옷까지 벗을 것을 강요한다. 제작진은 얄밉게도 한 발 뒤에 서서 MC들이 ‘포기’하면 거기서 그만두겠다고 한다. 그런데 김C가 정말 포기하면 나중에 제작진은 이러지 않을까? ‘방송에 쓸 만한 게 없다’고.

김C는 평소에도 ‘웃길 줄 모르는 자신은 몸으로 때우는 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박스를 건네는 제작진, 그리고 ‘이게 웃기는 거’라며 그 박스를 김C 몸에 씌우는 강호동, 옆에서 한 번만 더 믿어보라는 이승기, 아우성치는 다른 멤버들까지… 그 상황에서 김C는 프로그램을 위해, 주저하다 정말 마지못해 남은 옷을 벗는다.

평소 <1박2일>이 자랑하는 80여 명의 대규모 스태프들, 그리고 그 날 특별히 동행한 여러 명의 기자들 앞에서 거의 알몸에 종이박스 하나만을 걸치고 김C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서서 말하는 강호동. ‘체감온도가 영하 4~5도 수준’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추위 속 옷벗기 게임, 시청자에 부담주는 장면

반복되는 패턴에 대한 식상함, 몸으로 움직이는 대신 입으로 떠드는 토크 위주의 진행, ‘백두산’편에서 절정에 달한 억지감동 코드, 그리고 흡연 장면 노출 논란, 야구장 점거 논란과 같은 구설수 등… 잘 나가던 <1박2일>은 대중과 언론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고, 그 결과는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에 제작진과 출연진은 입을 모아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래서 1주년 여행으로 최초 여행지였던 충북 영동에 다시 들러 ‘초심을 되찾자,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혹한기 대비 동계훈련’편에서 <1박2일>팀은 확실히 열심히 하긴 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제작진도 출연진도 몸을 안 사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그 ‘열심히 한다’는 것이, ‘좀 더 빡세게, 좀 더 가혹하게’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다. 밥을 손으로 떠먹고, 추운 겨울 날씨에 팥빙수를 먹고, 게임에 질 때마다 옷을 벗는 그런 ‘열심’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이 아닌 부담과 불편함을 줄 뿐이며, 더구나 ‘초심’도 아니다.

방송 말미에 멤버들이 인근 내린천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이 짧게 지나갔다. 물 맑은 내린천에 들어가서 월척을 낚는 재미에 빠진 멤버들, 그리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싫어 엉뚱한 핑계거리를 늘어놓는 은지원, 그런 그와 티격태격하는 MC몽…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숨겨진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아 소개하고, 그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여섯 남자들을 그린 <1박2일>의 진정한 초심이 빛난 짧은 순간이었다. 시청자가 <1박2일>에 바라는 것 역시 그런 게 아닐까? 


태그:#1박2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