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칠순 어머이를 모시고 그 혹독하고도 긴 강원도의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큰 걱정입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별도로 보관하기 위해 몇 개월 전 외장하드까지 일부러 샀었는데, 그마저 몽땅 불에 타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딱 하나 건진 거라곤 불에 타다 남은 옛날 원고 한 뭉치뿐입니다."

 

지난 11월10일(새벽1시~6시) 전기누전에 의한 화마로 강원도 정선집이 깡그리 불에 타버린 작가 강기희(44). 그가 거듭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워낙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데다 강추위까지 몰아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 탄 집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생담배만 줄줄이 태우고 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불 탄 집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는 그와 칠순 노모 이춘옥(76)씨를 위로하는 것은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강아지 '낑낑이'뿐이다. 하마터면 그 낑낑이마저도 불에 잃을 뻔했다. 그는 "그날 다행히도 낑낑이를 풀어놓고 나갔기 때문에 화를 피했다"며 낑낑이를 다시 한번 쓰다듬는다.

 

그는 지금 이도현씨의 도움을 얻어 도현공방(봉양6리 470-1)을 임시 거처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하루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안절부절 강원도의 길고도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다. 그의 어머니 이춘옥(76)씨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산나물과 더덕 등까지 모두 불에 타버려 장사도 하지 못하고 비좁은 큰형 댁에 머물고 있다.

 

 

칠순 노모, 입던 옷 그대로 몸만 급히 빠져나와

 

"처음 불이 났을 때는 연기만 조금씩 피어오르면서 무언가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마을 할머니께서 밤늦게 군불을 떼는가 싶어 그냥 지나치려 했다가 이상하다 싶어 다시 밖에 나가 보니 이미 집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더군요. 그 때문에 어머이는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하고 할머니 도움을 얻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몸만 빠져나왔다고 그래요."

 

지난 16일(일) 오후 3시. 길라잡이는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김영현),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일남) 소속 회원들과 함께 강 작가 강원도 정선집(정선읍 용탄1리 789-1)을 찾았다. 강원도 산과 들은 이미 갈빛과 잿빛으로 변해 땡겨울에 접어들어 있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골짜기를 훑으며 불어오는 바람도 몹시 차거웠다.

 

차가 정선읍 용탄1리로 접어들자 저만치 가리왕산(1561m) 자락 아래 불에 시커멓게 그을려 기둥만 을씨년스럽게 남은 그의 집이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불에 모조리 타 버린 그의 정선집은 한 마디로 전쟁 때 줄줄이 쏟아진 포탄에 맞아 다 부서지고 불에 모조리 타버린 참혹한 모습 그대로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집 들머리에 놓인 판자로 엮은 개집 지붕 위에 "정리 중입니다.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집 마당 한 귀퉁이에는 강 작가와 칠순 노모가 우두커니 서서 잿더미로 변해버린 집을 넋 나간 채 바라보고 서 있다. 낑낑이도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꼬리를 흔들며 강 작가 주변만 맴돌고 있다.      

 

 

"표지석 세워 영원히 그 이름을 기억하겠다"

 

"칠순 노모가 지난 봄부터 산나물을 뜯고 더덕을 캐 정선 오일장 난전에서 장사를 하며 어렵게 모은 7백만 원 남짓한 돈까지 모조리 불에 타버려 그야말로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워낙 깊은 산골인데다 은행이 너무 멀어 이 곳 사람들 대부분은 통장을 사용하지 않고 장롱이나 이불 속에 돈을 보관하거든요."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 곳곳에는 불에 까맣게 타버린 호박과 나무토막, 종이조각, 이리저리 깨지고 찌그러진 그릇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아직까지 군데군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잿더미 위에 서서 "옷가지조차 챙기지 못해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재산의 전부"라고 말하는 강 작가와 노모의 얼굴에는 짙은 수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할 말이 없다. 이 상황에서 어떤 위로가 섞인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어. 문학예술인들이 모금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라는 말을 전하는 것뿐. 기댈 곳이라고는 가까운 문학예술인 밖에 없는 강작가.

 

강 작가는 "문학예술인들이 도와주면 집을 복구할 때 집 앞에 표지석을 세워 그 이름을 영원히 새겨놓겠다"고 말한다. 길라잡이가 "강원도 겨울은 무척 길고 엄청나게 춥다던데, 올 겨울을 어떻게 날 생각이냐?"라고 묻자 "어떻게 되겠지요, 뭐. 화마가 모든 장애물을 불태워버렸으니 이제 불처럼 일어서는 일만 남지 않았겠어요"라고 답하는 강 작가.  

 

 

<한국문학평화포럼> <한국작가회의> 지금까지 5백여만 원 모금

 

"원고와 자료도 아깝지만 얼마 전에 유승도 시인에게서 받은 토종꿀이 불타버린 게 너무 아까워요. 어머이가 그 꿀을 아끼느라 하나도 먹지 못했거든요. 호박도 이웃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창고 가득 채워놓았었는데… 그나저나 노트북마저 불에 몽땅 타버려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강 작가에게 지금 가장 급한 것은 글을 쓰기 위한 노트북이다. 토종꿀은 다행히도 유승도 시인이 "지금까지 한 사람에게 두 병을 준 적이 없지만 한 병 더 드려야죠"라며 갖다 주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강 작가에게 노트북을 주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옷과 살림도구, 책도 당장 필요하지만 어디 둘 곳이 없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승철(시인) 사무총장은 "지금 한국문학평화포럼과 한국작가회의에서 작가 강기희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총장은 "모금 실적이 몹시 저조하다"며 "지금까지 한국문학평화포럼이 250여만 원, 한국작가회의가 250여만 원 정도 모금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재웅(소설가)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50여 명의 회원들이 작가 강기희 돕기 모금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며 "요즈음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모금이 쉽지 않다. 다시 한번 1500여 회원들에게 호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최대한 모금을 해서 작가 강기희에게 명단과 함께 전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땡겨울 맞은 강 작가와 칠순 노모에게 불씨 한 점을

 

"여기저기에서 격려전화가 많이 걸려와요.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한 가지 얄미운 것은 소방서에서 재산 피해액을 2500여만 원 정도라고 밝힌 거예요. 이는 그냥 눈으로 드러난 것만 따진 거지요. 제가 쓰던 원고와 자료, 5천 권에 가까운 책을 어찌 물질적인 가치로만 따질 수 있겠어요."

 

작가 강기희는 "건축업자에게 알아본 결과 내년 봄 정선집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살림도구 등을 빼고도 최소한 2500여만 원 정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집터가 강 작가 소유가 아니어서 지상권만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 강 작가와 칠순 노모가 올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조그만 경비라도 있어야 한다.

 

강 작가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해 준 도현공방 이도현씨는 "지금 땡겨울을 맞고 있는 작가 강기희에게는 여러 분들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다들 어려우시겠지만 작가 강기희와 칠순 노모가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저마다 불씨 한 점을 보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 문학예술을 하며 살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문학예술인들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료들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똘똘 잘 뭉친다. 하루 아침에 화마로 살던 집과 살림도구, 원고와 자료, 책 등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채 춥고 긴 겨울을 맞고 있는 작가 강기희. 그를 위해 문학예술인들이 다시 한번 쌈짓돈을 탈탈 털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작가 돕기 성금 계좌/농협 170325- 56-150002(예금주 김영현), 우리 1005-001-049-802(예금주 한국작가회의)


태그:#작가 강기희, #칠순노모, #낑낑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