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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범한 군의문사위원회가 올 12월 31일로 문을 닫게 된다. 모두 600건의 사건이 접수됐으나 10월 말 현재까지 278건의 사건이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사위 통폐합' 방침에 따라 군의문사위도 폐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이에 반발하며 '군대 안 보내기 운동'을 벌여서라도 끝까지 군 의문사 사건의 진실규명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오마이뉴스>는 '폐지' 기로에 선 군의문사위의 진로와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말]
군의문사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지만 국방부가 '전공사상자 처리규정'에 따라 자살자는 순직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해 처리 보류된 사건들이 있다. 사진은 이승원 이병의 어머니 고정순씨.
 군의문사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지만 국방부가 '전공사상자 처리규정'에 따라 자살자는 순직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해 처리 보류된 사건들이 있다. 사진은 이승원 이병의 어머니 고정순씨.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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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결혼하셨나요? 자녀는? 그럼 내 맘 좀 이해하시겠네. 우리 승원이, 외동아들이에요. 억울하게 죽은 내 아들, 그 죽음의 진실을 알려고 제가 10년간 국방부와 싸웠습니다. 그 결과 군 의문사위는 지난 3월 아들이 죽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와 성추행이었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지만, 국방부는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습니다."

국방부는 '복무부적응에 의한 자살'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믿을 수 없었다. 1998년 6월 군에 입대한 뒤 소총수로 복무하다 같은 해 9월 GOP(비무장지대)로 옮겨간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5사단 27연대 3대대 11중대 소속 이병 이승원(당시 나이 20세). 그는 1998년 12월 1일 제101초소 인근 공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사단 헌병대는 사망 원인을 복무부적응에 의한 자살로 매듭짓고 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그러나 어머니 고정순(57)씨는 10년간 아들 죽음의 원인과 진실규명을 위해 싸웠다. 그 노력으로 아들이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 등 견디기 힘든 근무환경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주요우울장애가 발생해 자살하게 됐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군 의문사위는 억울하게 죽은 승원이의 사망 구분을 재심의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벌써 8개월째인 걸요. 이제나 저제나 좋은 소식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무심한 전화벨은 울리지 않네요."

고정순씨는 "상식을 가진 어른이라면 충분히 인정할만한 사건인데 유독 국방부만 전공사상자 처리규정을 들어 아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며 "구타당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았을 아들의 저승길이 이제라도 편안해지도록 사망 구분을 재심의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 유가족 협의회가 국방부 앞에서 전공사상 처리규정을 개정하라고 집회를 열고 있다.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 유가족 협의회가 국방부 앞에서 전공사상 처리규정을 개정하라고 집회를 열고 있다.
ⓒ 군의문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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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원인이 뭐든 개인 탓"이라는 국방부

국방부는 1950년대부터 전몰군경에 대한 보훈혜택을 부과했다. 그 뒤 전공사상자 처리규정을 두어 사망 구분을 분류하고 이에 따라 보훈혜택을 차등 부과했다. 국방부 훈령인 전공사상자 처리규정에 따르면 군대 내 사망은 전사·순직·일반사망·병사·자살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군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의 경우에는 그 경위가 어찌 됐든 무조건 자살로 분류하고 있다.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 중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성추행 등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았어도 결과론적으로 자살했으면 끝이라는 태도다.

실제 자살한 군인은 국가유공자로 등록될 수 없고, 군인연금법상 사망보상금을 받지 못하며, 국립묘지 안장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다만, 지난 2001년부터 국방부 복지기금 출연예산으로 사망위로금 500만원을 지급할 뿐이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3년간 활동을 통해 자살의 복무연관성이 인정되는 사건들에 대해 '사망구분 재심의'를 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전달했지만, 국방부는 지금까지 단 한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18일 <오마이뉴스>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 "군복무 중 사망자에 대한 순직 등의 결정은 각 군의 고유권한"이라며 "엄정한 기강확립과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야 하는 군 조직의 특성상 순직자와 자살자는 구분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경찰청(4건) 소속인 전경과 의경, 법무부(1건) 소속인 경비교도대의 경우에는 구타나 가혹행위에 의한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게 된 사건의 경우에도 순직을 인정했다.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주요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유독 국방부만 이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는 "행정안전부나 법무부가 전의경·경비교도대의 자살자를 순직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국방부도 형평을 맞추기 위해 자살자를 순직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결정"이라며 "각 군은 전·공상 심의위원회를 열어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순직분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국방부의 태도와 달리 지난 10월 14일에는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행정심판위)도 군 복무 중 구타나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덕분에 아들 죽음에 억울한 사연이 있다고 믿어온 한 아버지가 12년 만에 명예회복 결정 소식을 전해듣게 됐다.

지난 10월 14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행정심판위)는 군 복무 중 구타나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96년 10월 22일 선임대원들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하게 된 박정훈 이교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있다.
 지난 10월 14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행정심판위)는 군 복무 중 구타나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96년 10월 22일 선임대원들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하게 된 박정훈 이교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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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아들 죽음의 원인 찾아낸 한 아버지의 명예회복기

1996년 8월 13일 군에 입대한 박정훈(당시 나이 20세) 이교. 박 이교는 강원도의 한 교도소 경비교도대에 배치됐다. 당시 법무부는 박 이교가 내성적인 성격과 얼굴 피부병 때문에 우울증을 앓다가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하고 이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교도소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며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끈질긴 아버지의 노력으로 12년 만에 당시 교도소가 구타 의혹을 밝히는 데 소홀했으며 경비교도대 내부의 일상적 가혹행위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진실을 이끌어냈다.

군의문사위는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선임대원들은 날마다 내무반에서 술판을 벌이고 후임병들에게 '원산폭격', '관물대 위에 발 올리고 깍지 끼고 엎드려 뻗쳐', 가슴 구타 등의 폭력을 행사했으며 암기사항을 강요하며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교도소 보안과장과 소대장, 해당 선임대원들은 박 이교의 동기대원들에게 구타나 가혹행위 등에 대해 진술하지 말라고 강요한 일까지 벌어진 점을 확인했다. 특히 당시 일부 선임대원들은 후임대원들에게 성추행까지 벌였으며, 이를 거부하면 해당 후임대원은 물론 다른 후임대원들까지도 깨워 무자비하게 구타를 휘둘렀던 사실도 밝혀냈다.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12년간 싸워온 박 이교의 아버지 박노상(71)씨는 "경비교도대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첫 번째 사례"라며 "우리 아들은 진상규명을 통해 명예회복이라도 이뤘지만 아직도 묻혀있는 억울한 사건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박씨는 "멀쩡한 아들이 군에 갔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부모들이 아직도 주변에 많다"면서 "우리 아들처럼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 진실규명을 해주고 순직 결정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국가가 억울한 죽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누가 국가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냐고 한탄했다. 건강하고 멀쩡하던 아이가 군대에 가서 사고든 자살이든 죽게 된다면 그 책임은 무조건 국가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대책을 정부가 세워야 한다고 일갈했다.

"자해행위 사망이라도 복무연관성 있다면 순직 처리해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3월 국방부에 낸 '전공사상자처리규정 개정안' 의견서를 통해 "국가는 자기필요에 의해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혹독한 환경에 병사들을 24시간 격리수용하면서 상당한 자살 위험 유발 환경을 제공했음에도 그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 돌린다면 그것은 국가의 책무를 부정하는 것임은 물론 국민의 법 감정에도 위반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국가는 군대를 관리하면서 안보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군대로부터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비용 또한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안보이익을 얻기 위해 기본권을 제한하면서 그 신병을 배타적으로 관리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망이라면 당연히 국가는 설사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이라도 공무연관성이 있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순직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자살할 합리적 증거가 적극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한 자살은 비정상적 정신상태에서 야기된 것으로 보고, 업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대만도 군인무휼조례 제8조에 따라 자살한 군인은 질병으로 병사한 것과 똑같이 인정해 보상한다.

프랑스는 자살이라도 업무와 연관된 경우라면 군인연금 가족지급액 외에 보험금 명목의 수당을 지급하며, 군 업무와 관련 없는 자살도 퇴직연금에 해당하는 연금을 지급한다. 러시아 또한 군인의 자살을 질병으로 처리한다. 

이해동 군 의문사위 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위원회 진정사건 가운데 60% 가량이 군 당국에서 자살로 처리된 사건"이라며 "대부분 자살 원인을 사망자 개인 책임으로 떠넘긴 채 국가의 책임을 피하려고 한다"며 전공사상자 처리 규정 개정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한 바 있다.

군 의문사위는 지난 8월까지 국방부 법제팀, 보건정책과 등과 협의를 통해 전공사상자 처리규정의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8월 이후 논의는 중단됐다. 국방부는 "군 의문사위와 규정개정 필요성 등을 검토한 바는 있으나 현재로서는 전·공사상 분류기준을 변경해야 할 여건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자세다. 군 의문사위는 12월 31일 군의문사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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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의문사, #군대 자살,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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