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은 시간, 주위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고 낮동안 북적이던건물안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 적막한데 컴퓨터 앞에 앉은 교육생 20여명의 눈빛은 갈수록 초롱해진다.
매주 화요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다섯시간동안 예산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되는 e-비지니스 농업리더 양성 심화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얘기다.
지난 3월에 시작했으니 9개월째 계속되는데, 출석률이 좋다. 교육 방식도 강사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교육생들이 지난주 내준 숙제를 해와 발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강사는 “이렇게 자꾸 발표하는 것 자체가 마케팅이다. 어디서든 나를 표현하고 알릴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낮동안 내내 일했을텐데 교육생들은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사뭇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블로그와 농산물들을 소개한다. 간간이 웃음이 터지고, 질문도 나온다.
삽다리 한과 남진우 대표가 “이 교육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며 활기차게 발표를 마친다. 다른 이들도 이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큰 변화로 “자신감이 생기고 미래를 꿈꾸게 됐다. 기록을 생활화하고 인맥을 쌓은 것도 큰 성과다”고 꼽는다.
밤이 깊을 수록 높아지는 이 열의는 미래에의 기대와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맞춤형 눈높이 교육은 이런 것
예산군농업기술센터 컴퓨터 교육은 철저히 수요자 중심으로 진행된다. 농사일로 낮시간을 낼 수 없는 농업인들을 위해 강좌는 저녁시간에 이뤄진다. 저녁식사 때문에 지각생이 늘자, 아예 기술센터 식당에서 교육생 모두가 저녁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강사진도 교육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조정한다. 이날 강사로 나선 윤선(와이비즈마케팅 연구소장) 박사는 지난 봄에 두차례 강의를 했는데, 교육생들이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 오게 된 것이다.
오는 20일 종강예정이었던 이 교육과정의 일정도 교육생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3주 더 늦춰져 12월에 마무리한다.
교육생들의 요구는 언제나 담당 공무원의 애로, 강사섭외의 어려움 등의 문제보다 앞선다. 눈높이 맞춤형 교육이다.
이 신선한 교육현장의 분위기에 감동하는 것은 기자만이 아니었다. 이날 강의한 윤 박사는 지난 봄 강의를 마치고 예산에서의 사건을 농촌진흥청 <칭찬합시다>에 올렸다.
‘왜 일까? 그 늦은 밤에’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예산에서 강의를 하면서 감동했다. 하루내 하느라 고단한 이들이 다섯시간을 꿈쩍하지 않고 앉아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만약 필요하지 않다면, 절박하지 않다면 그렇게 앉아 계실 수 있을까? 아니 변화해야 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절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할 것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뭔가 해내겠다는 마음들을 느끼게 해준 예산의 농업인분들과 함께 하면서 느낀 행복한 시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문난 예산군농업기술센터 컴퓨터 교육
예산군농업기술센터가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시작한 것은 2001년도부터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서 농가에 보급했다. 그리고 좀 더 발전된 사업이 홈페이지 무료제작 보급이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전자상거래 실용화 과정이 시작됐다. 농민들이 정보화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전수만 해서는 안되고,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뒤 예산군농업기술센터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교육 농림부 평가에서 4년 연속 우수기관상을 받았다. 각종 교육과정 공모에도 참여해 더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올해 예산군농업기술센터가 농업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컴퓨터교육은 △컴퓨터 인터넷 활용과정 △e-비지니스 과정 △전자상거래마스터과정 △웹농가경영장부활용과정 △농산물생산이력관리과정 △사진으로 쓰는 농업일기 1기 △사진으로 쓰는 농업일기 2기 △디지털카메라 활용과정 8개에 이른다. 특히 올해 2년차로 진행되는 e-비지니스 과정은 좋은 평가를 받아 내년에도 3년차 연속사업으로 하게 됐다. 충남도내에서 예산군만 선정됐다. 교육을 충실히 한 결과다.
내년 3년차에서는 실제 경영분석과 농가별 대안을 제시해 주는 개별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실제로 마케팅에 적용하도록 하고 참여학습, 멘토링도 실시할 예정이다.
교육생들은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예산군농업기술센터 경영정보담당에 근무하면서 농업인컴퓨터 교육업무를 맡고 있는 농촌지도사 김기예(49)씨. 그는 1년 중 절반은 밤 11시가 넘어서 귀가한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강좌 하나 끝나면 이제 일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공모 신청을 하고 있으니…”
그래도 이렇게 주경야독하는 농업인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한다. 힘들게 농사 지어도 제값 받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전망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농업인들의 곁에서 그는 힘이 되고 싶단다.
“우리 교육에 참여하는 농업인들이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제게는 그분들이 선생님입니다. 농업인 대상으로 교육한다고 그분들을 가르치려 하면 안됩니다. 그분들도 연륜이 있고, 철학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교육을 통해서 제가 받은 가장 큰 교훈입니다”
김씨는 앞으로 이 팀들과 사이버농업인연구회를 만드는게 꿈이다. 자신의 능력밖의 일이지만 노력하는 농업인들에게는 작은 인센티브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놓는다.교육생들을 보면서 가장 힘을 얻는다는 그를 가장 상심하게 하는 것도 역시 교육생들이다.
“결석생이 많으면 힘이 빠져요. 좋은 강사 어렵게 모셨는데 강의 안들으면 속상하잖아요”
그래서 그는 교육생들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낸다.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사정한다.
‘오늘 00시에 교육있습니다. 못오면 못 온다고 반드시 연락주세요’ ‘정말 어렵네~. 답장주세요’‘왜 안오세욧!’
교육생들은 “우리 선생님 독해유. 문자도 일하는 시간 피해서 귀신같이 보내지. 이젠 글씨만으로도 얼마나 뿔났는지 안다니까”라고 말한다.
사과수확을 하느라 이날 저녁 8시가 되서야 도착한 복경춘(오가면 내량리)씨는 “지각하더라도 와야지, 안오면 후환이 두려워유”라고 껄껄 웃고는 “우리 선생님한테 너무 고맙쥬. 농민들 컴맹탈출 시켜주고, 업어주고 싶을정도유” 라고 말한다.
사명감이 강한 한사람의 공무원 덕분에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혜택을 받고 행복해지는가.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말한다.
“우리 선생님 일 잘하는거 신문에 나면 중앙으로 뺏기는거 아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