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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된 지 13년만에, 그것도 이미 소멸되었던 법률로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창원을)은 "정치적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재판부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보여주었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재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최근 대법원 1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권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회법 등에서는 선거법 위반일 경우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아 확정되고, 다른 법률 위반일 때는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아 확정되어야 의원직을 상실한다. 권 의원은 벌금형 확정이라 의원직은 유지하게 됐다.

 

권 의원은 1994~1995년 민주노총 준비위원회(민노준) 공동대표로 있었다. 당시 철도·지하철 파업이 벌어지기도 했고, 1995년 11월 12일 노동자 등 1만여명이 집회를 연 뒤 연세대~여의도광장 구간에서 행진을 벌였다.

 

검찰은 권 의원에 대해 일반교통방해와 옛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 금지' 위반, 기부금품모집법 위반 등의 혐의를 들어 기소했다. 권 의원이 기소된 때는 1995년 12월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등에서는 '제3자 개입 금지'는 '반노동자' '반민주'라며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1996년 12월 31일 폐지되었다.

 

권 의원은 기부금품모집법 위반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하고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런 탓에 재판이 한때 정지되기도 했다. 검찰은 2000년 4월 1심 결심공판 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소멸된 법 규정을 갖고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법원은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권 의원에 대한 1심 선고는 2001년 1월에 내려졌는데, 재판부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해 권 의원은 항소했으며, 권 의원이 민노준 공동대표로 있을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 전 장관이 항소심 때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06년 1월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합법적인 노조연합체가 아니었던 민노준 등에서 집회를 주도한 것은 제3자개입행위에 해당하며 도로 완전 점거 등으로 공공질서를 해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이를 중단시키지 않은 피고인은 불법집회 공범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지난 14일 대법원은 "당시 민노준 공동대표인 피고인이 전국적 연대 파업, 다른 사업장 지원 등을 결정하고 전달한 것은 노사관계 당사자의 주체적인 의사 결정을 저해할 정도의 행위로 제3자 개입금지 조합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권영길 의원은 1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번 판결과 관련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법(제3자개입금지) 자체가 죽었는데, 죽은 법으로 산 사람을 판결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3자개입금지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고, 국제사회에서도 가장 지탄을 받았던 반노동자적, 반민주적인 법이었다"면서 "그 법이 있는 한 한국 사회는 민주사회라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3자개입금지는 민주노총 준비 시절부터 적용됐던 것인데, 상급단체 대표가 산하 노동조합에 대해 일하는 것을 모두 제3자 개입으로 묶어 놓았던 것"이라며 "형태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수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최근 한 언론사가 정치인과 관련된 '연기 재판'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거론했던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이번 재판은 선거법 위반 사건과 다르고, 소멸된 조항을 갖고 재판을 해야 하기에 재판부가 곤란하다고 판단해 회피했던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용식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대법원이 이미 소멸되었던 법을 갖고 재단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소멸된 법이라면 거기에 맞게 판결해야 하며, 그동안 재판 과정을 보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치에 대한 보수성 있는 판사들의 과도하고 협소한 판결이라 본다"고 말했다.

 

권 의원의 벌금은 민주노총이 낼 것으로 보인다. 이 사무총장은 "벌금은 내부 규정에 따라 처리할 생각이다"면서 "민주노총 전 간부들의 벌금 등은 통상적으로 부담해 왔다. 다만 하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내부 논의는 되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그:#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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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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