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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가 '죽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민중가요를 추억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이들의 '현재' 모습을 통해 민중가요의 미래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지난 여름, 광화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 집회에서 노래하는 꽃다지. 늦은 밤, 꽃다지의 노래는 하루 종일 집회로 지친 시민들을 흥겨운 분위기로 이끌었다.
 지난 여름, 광화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 집회에서 노래하는 꽃다지. 늦은 밤, 꽃다지의 노래는 하루 종일 집회로 지친 시민들을 흥겨운 분위기로 이끌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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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대 클럽에 가본 적이 별로 없다. 직장 동료들이랑 술마시러 몇번 가본 게 전부인 듯. 그래서인가, 클럽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나 기대치 같은 것도 없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럽이 민중가요와 연결될 때만큼은 유독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못된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이 시작된 건 2005년 즈음인가 보다. 대학 시절 '중앙노래패'라 부르는 동아리에서 활동을 한 나는, 졸업한 뒤에도 후배들 공연을 꼭꼭 챙겨봤다. 어떤 땐 회사 휴가를 내서 먹을거리 잔뜩 싸들고 일찍 공연장에 가기도 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후배들 공연을 응원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2005년 딱 이맘때 즈음, 후배들이 홍대 어느 클럽에서 가을 정기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다.

노래패 후배들 공연에 발길 뚝 끊다

까닭은 그럴 만했다. 내가 다닐 때만 해도 동아리들끼리 날짜 잡기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학교 공연장은 돈을 벌기 위해 학생 공연이 아닌, 바깥 행사들에 먼저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분명 학교 시설임에도 학생들이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후배들도 무대와 음향을 갖춘, 그러면서도 아주 큰 돈 안 드는 클럽으로 자연스레 발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렇듯 그 까닭에 수긍이 감에도 후배들 공연을 두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은 녹지 않았다. 자본주의 방식에 반대하고 상업성을 거부하는 민중가요가, 자본이든 상업성이든 그런 것과 결코 멀어보이지 않는 클럽이란 곳에서 흘러나온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때부터다. 해마다 홍대 클럽에서 여는 동아리 후배들 공연에 가지 않게 된 것은. 클럽에서 공연한다는 다른 민중가수들까지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도. 그렇게 '클럽'과 '민중가요'의 연결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던 내가 올 가을 들어 세 번이나 민중가수들이 여는 클럽 공연에 다녀왔다.

왜? 굳게 닫힌 내 마음이 나부터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나 혼자 모른 척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민중가수들이 클럽에서 공연을 치르고 있었다. 이젠 동아리 후배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중가요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한테 민중가요를 생산하고, 부르고 있는 민중가수들의 클럽 공연은 외면할 수 없는 내 삶의 문제가 돼버렸다. 클럽에서 노래하는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더는 자신있게 "민중가요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박함이 밀려왔다.

민중가수들의 클럽 공연, 생각과 다르네?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레드 사이렌' 공연에서 연영석씨가 노래하는 모습. 집회 현장에서 불렀던 그의 노래들은 클럽 롤링홀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레드 사이렌' 공연에서 연영석씨가 노래하는 모습. 집회 현장에서 불렀던 그의 노래들은 클럽 롤링홀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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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말, 거리 집회에서 많이 보던 문화노동자 연영석씨가 '클럽 빵'에서 연 단독 공연을 가장 먼저 보았다. 클럽 빵 분위기가 주는 소박한 아늑함과 거리에서 자주 듣던 노래가 주는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큰 맘 먹고 본, 첫 클럽 공연치고는 기분이 괜찮았다. 이런 느낌이라면 더 시도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순풍에 돛 단 듯 다음 차례가 빨리 왔다. 10월 중순 '클럽 프리버드'에서 열린, 역시나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희망의 노래 꽃다지> 공연이었다.

화려한 홍대 거리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클럽 빵과는 달리 클럽 프리버드는 홍대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실내나 조명도 조금 넓고 화려한 분위기.

굳이 장소 이야기를 하는 건, 꽃다지 공연에서 좋은 느낌보다는 아쉬움을 더 많이 안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거리에서 듣던 노래와는 조금 달랐던 그들의 새로운 노래 때문인지, 장소가 준 불편함 때문인지 조금 헷갈렸던 까닭이다. 

그렇게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홍대 거리를 뚫고 꽃다지를 만나러 가는 기분은, 만나고 나온 기분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칠 수만은 없는 건 자신들이 만든, 부르고 싶은 노래를 신나게 부르던 꽃다지의 모습만큼은 참 행복해 보였다는 사실. 나를 뺀 다른 사람들은 꽃다지의 공연을 즐기는 것 같았다.

장소에 상관없이 행복해 보이던 가수들

 홍대 클럽 프리버드에서 노래하는 꽃다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그들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홍대 클럽 프리버드에서 노래하는 꽃다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는 그들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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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과 '민중가요'의 연결은 역시 나에겐 무리인가. 다시금 걱정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한 번 더 모험을 하기로 했다. 10월 말, 홍대 롤링홀에서 연영석씨와 인디밴드(허클베리핀·윈디시티 등)가 같이 나온 공연 '레드 사이렌'이 그 세 번째.

'새로운 음악'으로 '새로운 진보'를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를 담은 공연이었다. 인디밴드에 대해선 잘 모르기에 여기선 연영석씨 이야기만 잠깐 하련다.

참 신기했다. 거리에서 투쟁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한테 팍팍 와닿던 그의 노래들이 적당히 몸과 마음을 놀릴 준비를 하고 꽉 막힌 공연장으로 찾아온 사람들한테도 충분히 다가오는 듯했다.

몸과 발을 서서히 움직이기에 적당한 리듬과 곡조 때문일까? 노랫말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부른 연영석의 '같은 노래'가 양쪽에서 모두 통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처럼 집회 현장에서 주로 보았던 가수들을 클럽에서 본다는 건, 나한테 그 자체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리고 몇 번 되지는 않지만 클럽에서 노래하는 민중가수들을 보면서 공통으로 느낀 게 있다.

거리에서 노동자들과 시민들과 호흡하며 노래하는 모습 못지않게, 아니 때론 그 이상으로 그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는 점이다.

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수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주로 부른다. 아니, 불러야 한다. 거기서 부르는 노래는, 노래 그 자체를 떠나 함께 한 사람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그들에게 어떤 비장함과 힘을 실어주기 위한 무기가 된다. 가수의 삶이 아닌, 현장의 삶이 노래의 주제이자 몫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클럽 공연에서는 민중가수도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자기 삶을 담은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가수의 '삶'과 '노래'가 온전히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거리'가 익숙한 민중가수들일지라도 클럽에서 공연하기를 고집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까닭 때문이 아닐는지. 

클럽에서 후배들 공연 볼 그 날을 꿈꾸며

 이랜드 투쟁 문화제에서 노래하는 연영석. 힘없고 소외된 노동자들한테 연영석의 노래는 늘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
 이랜드 투쟁 문화제에서 노래하는 연영석. 힘없고 소외된 노동자들한테 연영석의 노래는 늘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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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클럽에서 공연하는 민중가수들을 향해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놓친 공연들이 많다. 지난 5월 윤미진의 첫 콘서트도 그랬고, 얼마 전 노래패 우리나라 공연이나 손병휘 라이브 콘서트도 그렇다. 어디 그 뿐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공연들도 꽤 많았을 것이다. 각자 걸어가는 길들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민중가수'라는 이름 아래 같이 묶일 수 있는 공연에 하나하나 찾아가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시작'은 앞으로 해야 할 무엇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과 같은 거니까 아쉬움보다 '희망'을 가져보련다. 집회 현장이나 거리에서 만났던 민중가수들의 노래에 환호했던 것처럼, 클럽에서 만나는 그들의 노래에도 아낌없이 박수 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 시간들이 좀 더 있은 뒤에는, 긴 시간 외면했던 동아리 후배들 클럽 공연에도 용기 내어 찾아가 보고 싶다. 선배로서의 '의무감'이 아닌, 음악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는 한 관객으로서.

그 때가 되면, 후배들한테 조심스레 이런 말을 건네볼 수 있을까?

"너희들이 지금 정말 좋아서 하고있는 그 음악처럼, 나는 민중가요를 몹시 아끼고 사랑해. 민중가요가 어떤 노래인지 어떤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 너희들과 내가 부르는 노래가 조금 다를진 몰라도 음악과 세상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큼은 통할 수 있을 것도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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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클럽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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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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