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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의 초등학생들에게 부평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공동체성과, 정체성을 확립시켜주기 위해 부평의제21추진협의회와 부평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 2회 부평역산문화탐장이 지난 22일 진행됐다.

 

이번 탐방은 부평역사박물관 견학을 시작으로, 부평향교, 부평도호부, 부천향토역사관,부천활박물관,부천전통공예체험관 방문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부평역사박물관을 비롯한 곳곳을 돌며 학예사와 역사문화해설가로부터 부평의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역사문화탐방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부곡초등학교 손승환(5학년) 학생은 "부평역사박물관은 전에도 많이 와봤었어요. 특별하게 기억 되는 것은 없지만…음 일제강점기 때 들여온 우체국과 우체통은 신기했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근데요. 왜 부평초등학교가 부평구에 없고, 계양구에 있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역사문화탐방 선생님으로 나선 임종우 부평의제21 문화복지분과위원장은 "부평초등학교가 들어설 때는 지금처럼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뉘어 있지 않고, 계양구가 부평군에 속하던 시절이라 그런 거예요. 그리고 그 때는 이 자리(부평초일대)가 부평보다 훨씬 번화가였어요"라고 설명했다.

 

사실 지금도 부평사람들은 외지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당신 어디서 왔소?'라고 물어보면 열의 여덥아홉은 인천이라 하지 않고, 부평이라고 한다. 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속하지만 지금의 행정구역이 역사성과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 한 채 그저 고속도로와 철길에 의해 나뉘어 있어 그렇지 엄밀히 말하면 부평과 인천은 다르다.

 

그래서 부평사람들은 지금도 인천에 간다고 하면 그곳이 대충 주안, 또는 석바위이거나 동인천, 하인천 등을 가리킨다. 원적산을 경계로 인천도호부(현 남구, 남동구, 중구 일대)와 부평도호부(현 서구, 계양구, 부평구, 부천시 일대)가 갈린다.

 

부평도호부는 계양산을 중심으로 현 인천 부평구와 계양구, 경기도 부천시를 비롯해 서울 온수동과 오류동 일대, 김포시의 통진읍 일대까지 아우르는 거대 행정구역이었다. 조선 세종 때 세종대왕이 몸을 치료하고자 온양까지 온천가는 길이 멀어 부평도호부에 일러 '온천을 찾아 지으라' 했으나 나오지 않아 잠시 군으로 강등된 적은 있으나, 부평은 한강과 인접한 부평평야를 낀 대도시였다.  

 

때문에 당시 행정과 사법, 치안의 기능을 담당한 부평도호부와 성균관의 중앙교육과 더불어 지역에서 인재 육성을 담당한 부평향교, 그리고 이 지역 초등학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부평초등학교는 현재 행정구역상 계양구에 위치해 있다. 

 

아이들은 또 부평도호부를 방문해 역사해설가 선생님으로부터 어사대에 관한 얘기를 듣고 관심을 나타냈다. 선생님이 "여러분 드라마 <이산> 봤어요?"라 묻자, 아이들이 일제히 "네"라고 답했다.

 

이윽고 선생님이 "어사대는 임금이 활을 쏘던 곳이에요. 부평도호부에 있는 어사대는 정조임금이 부평도호부를 방문해 활을 쐈던 자리를 표시한거에요"라고 설명하자, 아이들은 "그럼 뭐 잡았어요? 어딜 향해 쏜 거예요?"라며 관심을 나타냈다.

 

이후 아이들은 부천을 방문해 향토역사관과 선사 유적지를 방문했다. 특히, 부천활박물관 방문은 아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화살과 화살촉, 활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학생들은 신기해했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직접 만들기 체험을 못하자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한 부평의제21이진실 사무국장은 "아이들 뿐 만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이런 장이 필요하다. 부평만 보더라도 정주의식과 정체성이 상당히 빈약한 상황인데, 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내 고장 역사문화탐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평초등학교, #부평 역사문화 탐방, #부평의제21, #부평도호부, #부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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