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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판매 법안, 국무회의 통과

 

지난 10월 14일 환경부는 수돗물을 페트병과 같은 용기에 담아 판매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11월 11일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수돗물 판매 계획은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추진해 온 과제였고, 서울시는 올해 1월 '아리수' 판매를 위한 수도법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작년 10월과 올해 2월에는 전경련의 요구도 있었다. 한술 더 떠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아리수'에 대해 중국에서 상표권 등록을 출원했다고 한다.

 

수돗물 판매사업에 정부, 주요 지자체, 민간기업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 개정법안이 국민들의 삶을 질적으로 후퇴시키는 무서운 개악안임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환경부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부는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에 대해 "병에 담겨 판매되는 수돗물은 관망과 옥내 급수관을 거치지 않아 노후관으로 인해 수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없는 덕분에 시민들이 안전하게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실제 우리나라 수도관 중 16년 이상 된 노후관이 35%(2006년) 가량이다.

 

그러나 2004년과 2005년 노후관 개량이 이루어진 것은 각 10% 남짓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수질저하 우려가 있다면 노후관 교체 등으로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이를 책임진 환경부가 오히려 뻔뻔하게도 수돗물이 더러울 수 있으니 깨끗하게 별도로 정제한 수돗물을 사먹으라고 개정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이는 환경부가 수질 저하 문제를 알면서도 책임을 다 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부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용기에 담은 수돗물 판매가 이루어지면 일반 수돗물의 수질은 매우 급격하게 저화될 가능성이 높다.

 

깨끗한 수돗물 사먹으라고? 이게 환경부가 할 소린가

 

 물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게 공급되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필수 공공재이다.
물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게 공급되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필수 공공재이다. ⓒ 윤태

'아리수'의 경우, 일반 수돗물과는 다른 정수처리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생산원가만 일반 수돗물의 82배나 높다. 물을 팔아 수익을 얻으려는 여러 지자체들과 수자원공사는 '아리수' 같은 명품 수돗물 생산을 위해 시설 건설과 유지, 광고에 경쟁적으로 막대한 투자를 할 것이고, 반면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반 수돗물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더욱 축소될 것이다. 결국 일반 수돗물의 수질 저하라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다수 언론 보도와 연구에 따르면 판매용 수돗물은 일반 수돗물에 비해 수백배 비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서민들이 안전한 물을 먹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용기에 담긴 수돗물을 식용으로만 사용했을 경우 4인 가족이 한달에 무려 60만원 이상 지출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는 서민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이다.

 

결국 수돗물을 끓여 식생활에 사용해 왔던 대다수 서민들은 명품 수돗물과 더욱 의심스러워진 일반 수돗물을 겸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물이 시장원리에 맡겨지면 수도요금이 1천배가 오를 것이라는 소위 '인터넷 괴담'은 괴담 뺨치는 진담이 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천배 요금설'에 가장 극렬히 반발했던 환경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수도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수도시설을 사기업의 이윤추구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수도법 개정안에는 판매대상에 대한 별다른 제한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일반 국민에게 직접 판매할 수도 있지만, 기업들에 판매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업들은 국민들에게 재판매할 수도 있다.

 

수도시설, 사기업 돈벌이 도구로 전락할 수도

 

즉, 민간기업들은 시설비용을 들이지 않고, 단지 국민세금으로 만든 수돗물을 싼 값에 구입해 시중에 판매하며 유통 마진을 챙길 수 있다. 이렇게 국민세금은 고스란히 기업들의 이윤을 위한 시설투자비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경련이 수도법 개정을 주장한 이유라고 할 것이다. 현재 지방상수도 관리운영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 있는 코오롱의 이웅렬 회장이 전경련의 부회장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사기업들이 수돗물 판매시장에 뛰어들게 되면 바로 이 과정이 상수도 민영화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상수도를 민영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미 13개 지자체가 수자원공사와 민간위탁 계약을 하며 민영화를 추진해왔고 현 정부도 추진 중에 있다. 민영화라고 표현만 하지 않은 채 민영화 작업이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기업까지 수돗물 판매경쟁에 나서면 판매용 수돗물 중심으로 상수도 시설이 재편될 것이고, 상수도의 공공성은 심각하게 후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돗물은 결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은 모두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이다. 따라서 물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게 공급되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필수 공공재이다. 구입 능력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공급되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믿고 있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자 인권 가치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물을 수익사업의 재료로 만들며, 수돗물에도 빈부에 따른 차별을 두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법 개악안과 함께 모든 물 시장화 계획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수도법#물#민영화#환경부#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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