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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해오던 대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겠다"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히는 조성용씨.
늘 해오던 대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겠다"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히는 조성용씨. ⓒ 이주빈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늙은 지식인은 "혁명적인 일이지만 원래 죄가 없었던 것을 확인받았을 뿐"이라며 "착잡하기 그지없다"고 쓸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성용(71)씨는 지난 1982년 전북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였던 이광웅(작고)씨 등 8명과 함께 이른 바 '오송회'라는 이적단체를 결성,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2년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물론 공안당국이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무죄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26년. 감옥에 들어갈 때 초등학생이었던 자식들은 이제 불혹을 앞두고 있다.

26일 오후 전주 KBS에서 만난 조씨(그는 지금 전주KBS 심의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어느 지식인이 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았던 슬픈 이야기 정도 될 것 같다"며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64년 당시 국영방송이던 KBS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1972년 박정희 유신통치가 시작되자 "이것은 아니다"며 사표를 냈다. 그만큼 결기 있는 지식인이었다. 사표를 내고 1년 남짓 군산제일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뒤 다시 친정 KBS로 돌아왔지만 얼마 후 경찰 고문에 의해 이적단체 구성원이 되고 말았다.

서툰 서설은 멈추고 이젠 백발이 성성한 한 지식인의 아픈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다음은 일문일답.

"원래 죄 없었던 것을 확인받았을 뿐"


-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어제(25일) 재심 판결은 혁명적인 일이다. 고문으로 조작한 이 사건으로 우리가 온갖 고행을 겪을 때만 하더라도 재판관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죄하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재심 재판관이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가장 따뜻하게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을 어루만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6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당초부터 우리는 죄가 없었으니까, 어제 선고는 그것을 확인해준 것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무죄상태로 살고 있는데 우리는 유죄상태에서 무죄가 된 것이다. 죄가 있었는데 없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죄가 없었는데 그것을 확인해주는 것이 뭐가 달라진 것인가. 주변에서는 잘됐다고 하지만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 그 긴 세월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2년 넘게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올 때, 내 나이 마흔아홉 살이었다. 마흔 여섯에 잡혀가는 순간부터 재판을 받고 형을 살 때까지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사람이라면 절대로 당하면 안될 일을 당해 버렸다. 정말 실제로 끝장나 버렸다. 직장에서는 파면 당하고 퇴직금도 못 받고 빨갱이라고 낙인 찍히고…. 사람이 힘들어하면 주변에서 동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우리처럼 국가보안법으로 역적이 돼 버린 사람들은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

잡혀갈 당시 나는 KBS 남원방송국 부장을 하고 있었는데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하루 아침에 아내는 간첩의 아내가 돼 버렸고, 아이들은 간첩 가족이 되었다. 소문이 나서 남원에서 살지 못하고 전주로 이사 왔지만 어떻게 동네사람은 다 알고 '간첩 자식이네' 이런 말을 하며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상처가 깊다. 우리 사회에서 '간첩 자식' '빨갱이 자식'이라고 낙인 찍히는 것은 벌이 아니라 저주다. 이것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겠는가. (눈시울이 붉어지며)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와 고통을 생각하면…."

- 자녀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무엇보다 컸겠다.
"감옥에서 나오니깐 우리 아들이 중3,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들을 고등학교 보내야하는데 재산이 없어 처가 걱정이 많았다. 나로 인해서 모든 고행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인문사회과학은 절대로 공부를 시키지 마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인문사회과학을 조금만 알게 되면 감옥 가기 딱 좋게 고문으로 맞춰 버린다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25일 오후 광주고등법원에서는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 조작사건 중 하나인 '오송회' 사건 관련자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문규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가 조성용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25일 오후 광주고등법원에서는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 조작사건 중 하나인 '오송회' 사건 관련자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문규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가 조성용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연합뉴스 장덕종

"아이들에게 인문사회과학은 공부 시키지 말라고 했다"

- 어떻게 살았나?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불행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어떻게든 잘못은 해결되고 불행은 개선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닌가. 가난한 사람은 돈벌 기회를 찾아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하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국가보안법에 걸리면 이 모든 기회를 박탈당해 버린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남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 하루도 못 산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 입어야지, 직장을 다녔으면 승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가족여행 한번 다녀와야지…. 보통 사람이 소박하게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국가보안법이 내게 가한 고통은 일종의 신분제였다. 국가보안법의 족쇄에 걸려버린 자는 아무리 억울하다고 발버둥쳐도 해결이 절대 안 된다. 모든 기회는 국가보안법에 걸린 순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나?

"감옥 나오니까 아무 길이 없더라. 궁리 끝에 중고 복사기 두 대를 사서 대학가에서 복사를 했다. 처는 공장에 나가기도 하고 행상을 하기도 했다. 1988년 <한겨레>가 창간되고 나서는 3년 남짓 신문보급소를 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호구지책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무슨 재산 증식 계획을 가지고 살 수 없었다.

몇 년 전 악전고투를 했다. 집사람이 척추장애를 겪게 됐다. 아파도 병원을 못 간다. 아프면 아픈 것이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인 83년에 어금니가 부서졌는데 그 부서진 어금니를 아직도 치료를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지금 나는 전주 KBS 계약직 사원을 하고 있다. 그나마 나는 운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일자리도 얻고 그랬으니까."

-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다 보면 피해자들끼리 말 못할 사연도 있는 것 같다.
"조작사건과 관련된 사람은 서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이 찬양고무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더라'라고 윽박지른다. 그것을 인정하면 그 사람 말이 내가 빨갱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고, 부인하면 고문을 당한다. 그러니까 서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내 경우 한 후배가 법정에서 '조성용이 북한을 찬양했느냐'라고 물음에 '네'하고 답하더라. 내가 법정 나와서 '너와 내가 지금 공범으로 돼있는데 그렇게 말을 하느냐'라고 꾸짖으니까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지요?'하고선 다음 재판 때에도 또 그러더라.

그 후배가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고문과 협박·회유를 받으면서 나중에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기도 그런 행동을 하고 상대방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사실인양 믿어버린 것이다. 고문에 의해 쓴 자술서를 마치 내가 직접 한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더라."

-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감옥을 다녀온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서 활동해 왔고 여태껏 쉼이 없었다. 민간정부도 들어서고 운동양식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면 그게 무슨 일이든지 계속할 생각이다. 이미 나이도 많이 들었지만 내 남은 삶도 변함없이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 가족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가족 앞에선 나는 염치없는 존재고 고개를 들 수 없는 존재다. 어떻게든 형편이 나아지면 애비로서 남편으로서 죄를 덜 짓는 존재가 되고 싶다."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빨갱이' 누명을 벗은 조성용씨.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빨갱이' 누명을 벗은 조성용씨.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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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회#조성용#조작간첩#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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