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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아내 생일을 아홉 번 차려 주었지만 아이들 생일은 한 번도 차려주지 못했다. 아이들 생일에 햄버거와 피자, 치킨 집에서 또래 동무들을 초청하여 사먹는 일들이 많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동무들 5명을 집에 초청하였지만 생선구이와 나물, 미역국을 차려주었지만 잘 먹지 않았다. 아이들은 치킨과 피자를 원했지만 아내와 나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일이 되면 미역국에 나물, 생선 한 마리, 그리고 아내가 직접 만든 치킨으로 우리 집에는 생일잔치가 벌어진다. 오늘(27일)은 막둥이 생일이다. 한 달 전부터 막둥이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 25일에는 달력을 보면서 말했다.

"아빠 내 생일 언제지 알아?"
"알지 우리 막둥이 생일을 아빠가 모를까봐! 두 밤만 자면 막둥이 생일이지."
"아빠! 내 생일 때 치킨 먹고 싶어요?"
"치킨? 엄마가 만들어 주시잖아."
"…!"

무언가 냄새가 났다.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사 달라고는 할 수 없는 눈치였다. 지난 누나 생일(11월 1일)에 책 한 권을 선물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선물받고 싶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이미 약속한 것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물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감동을 시켜주려는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생일상을 아내가 아니라 내가 차려주기로 했다.

어제는 학교를 다녀와서부터 생일 장보려 언제 갈 것인지 물었다. 옆에 대형마트가 있는데 밤 8시 이후에는 30-50% 할인을 하기 때문에 장보기는 8시 이후에 대부분 한다. 할인된 먹을거리도 며칠은 더 먹을 수 있어 먹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밤 8시 이후에 가면 된다.

"아빠 내 생일장 보러 안가?"
“막둥이 오늘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
“수요일은 무슨 날이지?"
"예배 드리는 날, 아빠 그럼 예배드리고 가요."
"막둥이 착하구나. 그리고 아직 형과 누나도 오지 않았잖아."


생닭 두 마리에 생선 한 마리, 나물거리, 한우 국거리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려는 순간 막둥이가 자꾸만 빵 가게 앞에 서성거리면서 케이크를 보고 있었다. 케이크 사달라는 무언의 시위지만 케이크는 우리 집에 그리 익숙한 음식이 아니다. 결혼 후 10년 동안 가족 생일에 한 번도 케이크를 사 먹어보지 않았다. 비싸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케이크 자체를 그리 즐기지 않는 집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생일에 먹고 싶은 마음을 보면서 결국 사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나서 생닭을 조릴 양념부터 했다. 우리 집에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생일이다. 가족이 다섯 사람이니 일년에 다섯 번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먹을 때마다 4-5만원 들어가는 치킨값이 만만치 않았다.

치킨을 만들기 위하여 양념으로 닭을 저리고 있다.
 치킨을 만들기 위하여 양념으로 닭을 저리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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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양념에 저린 후 닭 다리를 들고 있는 막둥이
 닭은 양념에 저린 후 닭 다리를 들고 있는 막둥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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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집에서 직접 치킨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사먹을 때는 5만원 정도 들었지만 우리가 해 먹으면 1만원치만 사면 충분했다. 치킨 양념은 간단하다. 간장, 마늘, 설탕, 엿, 참기름, 후춧가루만 있으면 된다. 양념을 저린 후 3시간 정도만 있으면 깊이 배여 들기 때문에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기름에 튀기지 않으므로 건강에도 좋다. 

"막둥이 오늘은 아빠가 치킨 만들어준다. 다른 때는 엄마가 만들어 주었지."
"아빠가 만들면 더 맛있어?"
"그래 아빠가 엄마보다 반찬도 맛있게 하지."
"엄마가 만든 반찬 맛있어요!"
"엄마도 맛있지. 오늘 아빠가 만든 치킨 얼마나 맛있는지 기대하시라."
"아빠 나도 닭에 양념 넣고 주물러 보고 싶어?"
"막둥이가 자기 생일상 준비도 하고. 앞으로는 막둥이가 아빠 생일상 차려주면 좋겠다."
"알았어요."

▲ 막둥이 생일상 막둥이 생일을 위하여 아빠가 치킨을 만들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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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에 양념을 하고서 고추전을 부쳤다. 생일상에 고추전을 차리는 것이 이상했지만 오늘 따라 비오는 날씨라 고추전이 어울릴 것같아 고추전을 부치기로 했다. 고추전에 들어가는 재료는 소풀(부추의 경상도 탯말), 홍합, 당근과 고추다.

고추가 생각보다 매웠지만 고추 맵지 않으면 고추전이 아니다. 막둥이 생일상이지만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당근은 채를 썰어야 하고, 홍합은 칼로 다져야 한다. 홍합을 다지는 데 '다다다다' 소리가 난다. 딸 아이가 신이 나서 아빠가 제일이라는 말을 한다.

"아빠가 엄마보다 잘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예쁜이도 아빠가 잘하는 것 같아?" 
"나는 고추가 들어가면 매워서 싫어요."
"고추가 없는 것만 먹으면 되잖아."

▲ 막둥이 생일상 준비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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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을 다 준비하고 생일잔치를 했다. 치킨을 먹어보니 조금 짜다. 짜다는 말에 아이들은 맛있다고 했다. 아빠가 만들어 준 생일상이 치킨을 짜고, 고추전은 매웠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 주니 고마웠다.

막둥이가 생일상을 받았으니 자기들도 받겠단다. 내년에 첫째와 둘째 녀석까지 생일상을 차려야 된다. 아내 생일상까지 차려야 하니 앞으로 우리집 생일상은 내 차지가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막둥이를 끝으로 올해 우리집 생일은 끝났다. 한 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남은 시간도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

'막둥이 생일 축하한다.'


태그:#막둥이, #생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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