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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색다른 풍경과의 만남이다. 늘 고정돼 변하지 않는 자연이라면 여행의 묘미는 그만큼 반감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계절 따라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시간에 따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랑 찾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시쳇말로 어제와 오늘의 풍경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 풍경이 다르다.

 

하여 여행은 늘 새롭기 마련이다. 연간 수백 만 명이 찾는 지리산도 마찬가지다. 봄에는 신록으로, 여름에는 녹음과 야생화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반겨준다. 겨울엔 흰 옷 입은 자태로 발길을 맞는다.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이 하얗게 덮여있다. 10여일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다. 식생 복원을 위해 다듬어 놓은 길섶에도 눈이 쌓여있다. 관람객들의 발길을 막으려고 만들어놓은 테두리에도 눈이 덮였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눈이 내려앉아 있다.

 

 

생각지 못한 눈을 본 등산객들이 화들짝 반긴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면서도 얼굴에는 웃음 가득이다. 단체여행을 온 대학생들은 눈싸움을 하고 손으로 잡아끌며 미끄럼을 태우기도 한다. 눈을 한 움큼씩 쥐어 하늘로 뿌려보며 옛 시절을 떠올리는 젊은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비명을 지르는 이도 눈에 띈다. 가벼운 차림으로 드라이브 왔다가 하얀 눈을 보고 내친 김에 등산로에 선 젊은 연인들은 손을 꼭 잡고 추위를 견디고 있다. 예상 밖의 눈이 만들어낸 모습들이다. 여행을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풍경들이다.

 

 

지리산 자락 ‘운조루(雲鳥樓)’로 발길을 옮긴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는 정말 아름다운 집이다. 건물의 건축학적 특징이나 한옥이 가지고 있는 멋이 그렇다. 이 운조루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이 집을 지은 류이주(1726∼1797년)와 지금 그곳에 사는 자손들의 마음 씀씀이다.

 

옛날 우리 삶에서 쌀을 담아두는 뒤주는 집안 깊숙이 놓아두는 게 상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운조루의 뒤주는 사랑채 옆 부엌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뿐만 아니다. 뒤주의 여닫이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씌어 있다. 누구든지 필요하면 쌀을 마음대로 가지고 가라는 뜻이다. 주인이 직접 쌀을 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가져가는 이의 자존심까지도 생각한 것이다. 운조루 대문에 문턱이 없는 것도 필요하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배려다.

 

 

집에 굴뚝이 없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굴뚝을 설치하는 대신 연기는 건물 아래 기단에 구멍을 내어 그곳에서 연기가 나오도록 했다. 연기 때문에 집 안 사람들이 고생을 했겠지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양반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 주민들이 더 힘들어 할 것이란 생각이다.

 

그 마음 씀씀이에서 넉넉함이 엿보인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다. 머지않아 이웃돕기 성금모금 운동이 시작되고 구세군 자선냄비도 등장할 게다. 올 겨울만큼은 너와 나 구분 없이 모두가 노고단처럼 포근하게, 운조루처럼 넉넉하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나날 만들어 가면 좋겠다.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태그:#타인능해, #운조루, #노고단, #지리산,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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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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