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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날이 차갑다. 옷깃을 단단히 여밀 만큼 바람도 세차다. 오전에 김장을 담그느라 바빴다. 그래서 휴일마다 서둘러 나서는 산행도 미뤘다. 대신에 오후 늦게 아내랑 화왕산 자락을 훑었다. 청화사를 출발해서 송현리 고분, 도성암을 지나 약수터와 체육공원, 그리고 전망대를 거쳐 오는 거리, 대략 두 시간 정도 소요됐다.

 

때늦은 시간, 이미 산정에 올랐던 사람들은 하산한 뒤라 겨울 산은 초입부터 적막했다. 낙엽 밟는 소리 유난히 컸다. 올 가뭄이 심했다지만 겨울가뭄도 만만치 않다. 닿은 발자국마다 하얀 흙먼지가 북북댔다. 한달음으로 도성암자 들머리까지 올랐다.

 

  "어머, 개나리가 활짝 피었네요?"

  "어디? 개나리가 피었다고?"

  "저기 보세요. 노랗게 무더기로 폈네요."

 

 

 

 

 

 

 

 

 

 

 

 

 

 

 

 

 

 

 

 

 

 

 

 

 

 

 

앞서가던 아내가 가리키는 데를 보니까 정말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가픈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못 내 눈을 의심했다. 언뜻 보아 한 무더기로 피었다. 물론 눈 속에 피는 설중매도 있다만, 한겨울로 치닫고 있는 이때, 만난 노오란 개나리, 반갑기도 했지만 애처로웠다. 아무리 계절감각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 자연의 섭리는 일정 궤도를 순항할 때 아름다운 것이다.   

 

겨울 한가운데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재작년에도 우리 지역에서 배꽃이 철모르게 피어 과수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 까닭이 이상기온 탓이라고 밝혀졌지만, 실상은 자연훼손에 의한 환경오염으로 배나무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섭리와 밀접하다. 그런데도 이 계절에 화들짝 꽃을 피우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찬연한 봄을 향해 질박하게 기다려야함에도 성급했던 탓일까. 개나리는 봄의 전령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침은 오히려 아니함만 못하다. 그런데 서둘러 꽃을 피워낸 개나리, 긴긴 겨울나기에 얼마나 힘겨울까. 얼핏 생각하면 수많은 나무 등속 중에 개나리 하나가 발버둥친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수냐고 치부해버린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차가운 겨울 한가운데서 때를 맞춤하지 못하고 피어 있는 개나리,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란 꽃잎이 죄다 얼어 있었다. 채 향취를 시샘해 보지도 못하고 지레 마감 지우고 마는 가련함이 안타까웠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오히려 아니함만 못하다

 

우리 사는 이치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마냥 바쁘다. 그저 빨리빨리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허우적거린다. 오직 계절감각은 현재라는 시간에만 의존할 뿐 주위와 동참할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 환경변이에 얼마나 못된 행위를 하고 있는지 느끼지 못한다. 투발루에 이어 몰디브가 해저에 잠기고 있다고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자연의 보복은 ‘부메랑’으로 되돌려진지 오래다. 단지 철모르게 개나리 하나 피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 아니다. 그 파급효과는 이미 ‘나비효과’ 이상으로 겪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겨울에 개나리가 피었다. 조금은 이상하고 신기하게 느껴질 거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려는 조그만 변화 하나가 종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자연재해에 잇달아 있다. 지구상에서 유독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무분별하고, 무절제하며, 무가치한 일들에 너무 천착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하지만, 그저 막무가내로 자연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행위는 지양해야겠다. 혹한 속에 뜻 모르게 핀 개나리를 보면서 섣부른 애상에 겨웠다.

 

 

근데 자투리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야 지인으로부터 도성암자에 개나리가 핀 연유를 들었다. 허, 그것 참!

 

  "이상할 거 없어요. 그곳 개나리는 해마다 그런 어설픈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그 위치는 남향에다 양지바른 곳이어서 아무리 드센 추위이라도 닿지 않고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요. 때문에 사시사철 기온의 변화가 크지 않지요. 그래서 개나리뿐만 아니라 상사초도 뜬금없이 피었다가 자지러지지요."


태그:#개나리, #도성암, #자연훼손,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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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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