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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걸 축하해" 로뎀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마련해준 첫 생리 축하 잔치.
"어른이 된 걸 축하해"로뎀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마련해준 첫 생리 축하 잔치. ⓒ 김진이

"정원아, 정말 축하해. 이제 네가 진짜 여자가 되었다는 거야."

로뎀지역아동센터의 신현경 대표교사는 장미꽃 13송이와 예쁜 포장지로 꼼꼼히 싼 선물을 공부방의 수미, 미경이(가명·초등학교 6학년) 손에 전해주었다. 포장지 안에는 생리대가 들어있었다. 교사들의 깜짝 축하 이벤트에 아이들은 볼이 발개졌다. 방금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원해서 산처럼 쌓인 설거지까지 말끔히 끝낸 아이들이다.

이날의 이벤트는 첫 생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어머니 없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와 살고 있는 수미는 전날 전화로 다급하게 공부방 교사를 찾았다. 갑자기 피가 보이자 놀랐지만 딱히 도움을 요청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사전 준비도 없이 겪게 된 '첫 경험'에 당황한 수미에게 신씨는 자상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조금 먼저 경험을 한 미경이와 함께 생리 축하 이벤트를 열어준 것이다.

인천광역시 간석3동사무소 바로 옆에 자리한 로뎀지역아동센터는 29명의 아이들과 3명의 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3년전 풍성교회(예장)에서 보증금 2000만원과 월세 40만원,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기로 하고 시작한 지역아동센터이다.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이 벌집처럼 모여 있는 간석동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만 모아도 정원을 넘었다. 전임 시설장이 3년 동안 헌신적으로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을 즈음 풍성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바뀌게 됐다. 달라진 목회방침 때문에 공부방 지원이 끊기게 됐고 전임 시설장이 병까지 얻게 되면서 공부방은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온새미로교회(담임 이용일 전도사)에서 로뎀지역아동센터를 인수하기로 해 지난 10월부터 공부방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됐다.

지역이 어렵다 보니 로뎀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의 사연들도 가지각색. 8개월에 엄마가 집을 나간 8살 정원이는 큰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산다. 그러나 어른들이 가정과 아이를 돌보지 않고 PC방을 전전해 정원이는 한겨울에도 여름 샌들을 신고 지역아동센터에 온다. 가정 방문을 나가보니 수도가 끊겨 썩은 물을 받아먹고 밥상에는 곰팡이 난 밥에 상한 콩나물이 올라와 있었다. 치료를 받지 못해 정원이는 치아가 뿌리까지 상해 버렸지만 의료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할머니가 낙원상가에 가게를 갖고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 살림도 빠듯하기만 하다. 시에서 운영비와 급식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워낙 지원 조건이 까다롭고 액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인건비를 포함해 월 220만원에 급식비는 1인당 3000원을 출석일수 만큼 곱해 지원해준다. 급식비를 3개월씩 묶어 후불제 형태로 지원하는 바람에 신현경 대표교사는 요즘 자신의 신용카드까지 동원해 식자재 구입을 하고 있다.

"다들 힘들겠지만 지역과 여건에 따라 지역아동센터들도 편차가 큰 거 같아요. 우리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직접 부딪히는 시간이 많아 새로운 정보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요. 그러다 보니 공동모금회나 기업에서 공모하는 사업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인터넷 서핑도 하고 협회나 사람들도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즐거운 식사시간 재개발이 어려울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에 자리잡은 로뎀지역아동센터. 점심과 5시의 이른 저녁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는 이곳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이다. 무슨 반찬이든 싹싹 먹어 치워주는 아이들이 교사들은 고맙고도 안쓰럽기만 하다.
즐거운 식사시간재개발이 어려울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빌라촌에 자리잡은 로뎀지역아동센터. 점심과 5시의 이른 저녁 시간에 제공되는 식사는 이곳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이다. 무슨 반찬이든 싹싹 먹어 치워주는 아이들이 교사들은 고맙고도 안쓰럽기만 하다. ⓒ 김진이

로뎀지역아동센터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와 남부지역아동센터협의회에 함께 가입돼있다. 그나마 협회를 통해 소식을 듣고 정보를 교환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공부방을 대상으로 바닥난방공사 경비를 지원했는데 그 소식을 나중에서야 알게 돼 너무 속상했다고. 정보를 공유하고 협조하면 좋겠지만 가까운 지역의 공부방의 경우 오히려 지원이나 사업에서 경쟁 대상이 되기가 쉽다. 

빈민, 농어촌 지역의 어려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돌보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공부방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지역아동센터는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 계층의 도우미로 제 역할을 다해왔다.

2004년 정부가 지역아동센터로 법제화해 지원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지역아동센터가 폭넓게 확산됐다. 2004년 895곳이 2만3000여 명의 아들을 돌봤으나, 2008년 현재 2810곳이 8만2000여 명을 보살피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국비 50%, 지방비 50%로 인건비· 프로그램비 등 운영 예산을 지원받고, 지방자치단체의 결식 아동 지원 예산으로 급식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지원 액수도 적고 기준도 까다로워 현장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최근 전지협 발표에 따르면 센터에 종사하는 교사와 생활복지사의 평균 임금이 월 68만1144원으로 최저임금 78만6480원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반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2006년부터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고 있지만 지역아동센터는 인건비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운영비에 포함시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들이 열악한 운영 때문에 인건비를 가장 먼저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지협 교사와 학부모 등 2200여 명은 지난 10월 "100만여 빈곤 아동을 위해 지역아동센터 예산을 현실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청원서에서 전지협은 "올해 공부방 한 곳당 평균 월 220만원을 지원받다가 내년부터는 월 230만원을 지원받는데, 이는 4.5% 인상으로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며 "보건복지가족부가 맡긴 연구에서도 월 6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온 만큼 현실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지역아동센터들의 입장이 반영돼 최근 국회에는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증액 안건이 상정돼있다. 11월 21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본회의에서는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지원예산 총 756억을 의결하고 예산결산위원회와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예산이 확정되면 2788개소 지역아동센터에 현재 월 220만원에서 465만원으로 증액된 운영비가 지원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복지 예산이 확실히 많이 줄었다"는 것이 대다수 복지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다. 정부가 돌아보지 못하는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이미 전국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제대로 된 운영비를 지원하는 일은 적은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복지정책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로뎀지역아동센터 032-422-9634



#공부방#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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