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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을 시작하면서부터 블로그에 목매어 한 달 반여를 보내게 되었고, 예전부터 있었으되 나는 몰랐던 이 사이버세상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역시 모든 일은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된다는 진리를 새삼 느꼈으며 그건 나의 책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활자중독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만한 의도, 성석제를 모르는 무식한 것들을 없애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 그런 처음의 생각과는 정말 다르게 난 블로그에 예상외의 리뷰를 쓰고 있었다.

 

평생 읽어볼 생각도 안했던 혹은 읽었어도 나의 자존심에 상처주는 일이라 여겨 어디다 티 낼 수 없었던, 경제서적, 지침서, 순수 문학 서적도 아닌 전문서적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이상한 책들을 손에 잡기 시작했고, 우습게도 직접 찾아나서기도 했으며 그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요즘 어느 순간 난  왜 우리 집에서 굴러다니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서 누가 가져다 논 것인지도 모르는 그런 책들을 읽고 있으며. 설득의 심리학, 그 또한 그 중 하나다.

 

작년과 올해, 쉽게 쓰인 심리학책 등에 대한 서평과 광고가 신문과 잡지의 지면을 채워갈 때도 심리학하면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심리학개론'이라는 대학교양과목에 대한 씁쓸한 기억뿐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젊고 젊은 여강사, 긴생머리가 답답해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비쩍 마른 여자 강사가 가르치는 심리학개론은 내게 아무런 목적의식없이 잘생긴 선배들 따라 나가는 집회나, 매주 반복되는 미팅과 소개팅을 이유로도 무조건 출석을 포기할 수 있는 과목이었다. 게다가 새파란 대학생들 4명이 성수역 공장단지 조그만 사무실 한 켠에서 '사회를 바꾸는 문화집단'을 꿈꿨던 것도 그 때였으므로 심리학개론의 수업에 출석하기란 무리였던 것도 같다.

 

결국, 다행이 '오픈북'으로 진행된 중간고사는 어찌 넘어갔지만, 기말고사 무렵 '출석을 안하는 이유가 학점을 포기하고 싶기 때문인지, 자기를 무시하기  때문인지를 밝히라는 요지의 강사의 메모'를 전해받고서 그녀를 찾아가게되었다. 그리고 주절 주절 내가 하고자 하는 문화기획과 바로 코앞으로 닥친 연극기획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설명했으며 동시에 당신의 강의가 얼마나 포기하기 쉬운 것인지를 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잘한 것도 없는 내가 자존심 들먹거리며 그녀에게 내건 연극 초대권은 대학로 작은 극단에서 하는 제목도 유치한 '교실 이데아'였고 그녀는 기말고사 대신 긴 장문의 글을 쓰게 했다. 내게 심리학개론수업보다 연극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른 학우들이 3시간내내 심리학에 대한 답안지 작성을 하는 동안 작성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 벌게질 만큼 창피한 일이고, 그 젊은 여자강사에게 그저 당신을 무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며 그저 내가 치기어린 20살이었기 때문이다란 말 꼭 전하고 싶지만, 그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줄 알았던 겁없는 녀석이었으므로 겨우 2번 들어본 그녀 수업에 대해 특유의 답답함과 지루함이 가득찼다는 말로 수업을 평가하며 답안지를 가득 채워나갔다. 그에 비해 내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의미깊고 이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곁들여서….

 

10년이 지난 지금, 어쨌든 난 내게 'C+'라는 애매한 학점을 남긴 심리학에 관심이 많다. 그때 이후로 거들떠보지 않던 심리학 책도 읽고 있다. 원서도 아니고 순수 심리학 전공서도 아닌 너무 쉽게 쓰고 그래서 논리의 틈에 반론 제기가 무수히 가능할 것 같은 '설득의 심리학'이란 베스트셀러를 거실에서 주웠고, 재미있게 읽었다. 덕분에 대학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나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도 여러번이다.

 

심리학개론 수업을 포기하고 진행했던 건 '교실이데아'라는 연극의 기획이었는데, 첫회 대학로 공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을 상징적으로 초대했었다. 문제가 되었던 건, 연극의 흐름상 서태지와 아이들의 포스터를 찢는 배우의 행동에 극도로 흥분해서 울부짖는 학생들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초대손님 덕에 연극은 힘들게 겨우 끝났고 그 때문에 첫회공연으로 의욕넘치던 대학생 4명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며, 연극은 전문가들에게 홍보와 마케팅이 맡겨져 계속되었던 걸로 기억난다. 그때 연극을 망치고 문화기획집단이라는 꿈을 망쳤다는 억울함, 슬픔보다 내게 컸던 감정은 '그 심리학 여강사'가 연극에 오지 않았다는 데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난 궁금하다, 그 때 그 심리학 강사는 왜 나를 설득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그녀는 내가 어떻게 설득해도 교실을 뛰어나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나? 그녀는 내 심리를 파악하고 있었나?

 

나는 연극을 선택했고 버릴 수 없었다. 이건 책에서 말하는 '일관성의 법칙'이다. 그녀도 학생에게 시험을 보게해야 했고, 문제에 대한 해답 대신 나의 잘난척으로 가득찬 답안지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C+는 후한 점수다. 그러니 그녀가 일관성의 법칙을 어겼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왜 내 초대권을 받고 오지 않았나. 적어도 연극을 봤다면 난 창피해서 4년 내내 그녀를 피해다녔을 수도 있다. 이건 책에서 말하는 '상호성의 법칙'이다. (적어도 오겠다 오지않겠다의 표현을 했다면 나는 그녀가 올까봐 그렇게 연극내내 덜덜 떨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녀는 역시 전문가였나?)

 

왜 심리학 강사인 그녀는 '호감의 법칙'을 적절히 이용하지 않았나? 그녀가 화장으로 떡칠한 건방진 여대생이 딱 무시하기 좋을 우중충하고 촌스런 외모를 고집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렇게 그녀를 대하지도 그녀의 수업을 매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녀는 강사로 교수의 권위를 이용할 수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녀의 수업은 희귀하지도 않은 4년내내 언제라도 강사 골라가며 들을 수 있었던 수업이었으니 내 젊음을 설득하려 시도도 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이라…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여섯가지 설득의 법칙을 대응해 봤어도 나의 경험은 심리학적으로 멋지게 해석되지 않는다. 포장을 하려고 해도 예의없었고 건방졌던 내 과거의 씁쓸한 추억만이 남는다.

 

그러나, 팔리기 위해 포장되고 다듬어졌을 심리학 소재 책의 '쳇'하고 무시해도 좋을 이런 카피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조금은 알게 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여섯가지를 책에서는 설득의 심리학적 불변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불변의 법칙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에게 물건을 사게 하는 불변의 마케팅 법칙이면 몰라도 말이다.


설득의 심리학 1~3 세트 - 전3권 (양장)

로버트 치알디니 & 스티브 마틴 & 노아 골드스타인 지음, 김은령 외 옮김, 21세기북스(2015)


태그:#설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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