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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 선 베르너 삿세 교수.
 고택에 선 베르너 삿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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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살면서 한국의 정취에 흠뻑 젖어 사는 파란 눈의 독일인이 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의 한 고택에서 살고 있는 베르너 삿세(Werner Sasse·67)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가 그 주인공.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으로 반백의 구레나룻을 지닌 삿세 교수가 살고 있는 고택은 1929년에 지어졌다. <동아일보> 주필과 사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고재욱(1903∼76) 가옥으로 그의 손자인 고영진(49) 광주대 교수가 세를 내준 것이다.

"한옥이야말로 자연 소재로 지은 천연주택"

베르너 삿세 교수가 살고 있는 고택. 1929년에 지어진 집이다.
 베르너 삿세 교수가 살고 있는 고택. 1929년에 지어진 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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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고을의 이름난 고씨 집안에서 누대를 이어온 집답게 터가 넓다. 면적이 2000㎡나 된다. 앞뜰엔 80년 된 큰 소나무 두 그루를 비롯, 크고 작은 나무와 꽃이 가득하다. 건물은 본채(162㎡)와 사랑채, 아래채 3동으로 이뤄져 있다.

삿세 교수는 대청마루가 있는 본채를 서재와 화실로 쓰고 있다. 추우면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 기름보일러를 설치한 사랑채에는 온돌방과 입식 주방을 만들고 거기에서 먹고 잔다. 창고로 쓰던 아래채의 일부를 개조해 욕실 겸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옥은 정말 아름다운 집입니다. 문이나 지붕을 보면 예술이에요. 재료도 나무와 흙과 종이를 사용해 습도와 온도가 사람 몸에 적정한 상태를 유지해 주잖아요. 자연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유창한 우리말로 한옥 예찬을 하는 삿세 교수는 "한옥이야말로 자연의 소재로 지은 천연주택"이라고 강조한다.

"불편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뭐가 불편해요? 운동도 되고 좋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안에서 한 발자국도 걷지 않으려고 하고 승용차나 승강기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헬스클럽을 찾아 부지런히 운동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게 그의 얘기다.

"한옥생활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밖으로 열려 있어서 좋아요"라고 한다. 아파트는 사람을 안으로 가두는데, 한옥은 밖으로 열려 있다는 것. "(한옥의 재료가 나무요, 흙이요, 종이여서) 건물 자체가 자연"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자연을 적절하게 활용한 한옥의 구조가 이국인인 그를 한옥에 푹 빠지게 한 것이다.

"재주는 무슨... 재미 있어서 수묵화 그린다"

베르너 삿세 교수의 수묵화 '밤바다'
 베르너 삿세 교수의 수묵화 '밤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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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삿세 교수의 수묵화 '균형3'
 베르너 삿세 교수의 수묵화 '균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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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세 교수는 이 집에서 한지에 수묵담채의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 "재주는 무슨…. 재미가 있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지난달 16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 서초동 정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 5월엔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제자였던 귀화독일인 빈도림(디르크 퓐들링·55)씨와 함께 담양 달뫼미술관에서 2인전도 열었다.

까만 먹물을 주로 쓰고 거기에 약간의 수채물감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 그는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과 색채를 구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베르너 삿세 교수의 서재. 고택의 본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베르너 삿세 교수의 서재. 고택의 본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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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보쿰대학교와 함부르크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가 한국으로 건너온 건 지난 2006년 9월.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한 직후다. 하지만 삿세 교수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훨씬 오래 전이다.

1966년 나주에 호남 최초의 비료공장이 들어섰는데 설립자가 독일인 호만, 그의 장인이었다. 장인은 공장에 근무할 기술자를 육성하기 위해 나주기술학교를 세웠는데, 그곳에서 삿세가 교사로 일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2년 뒤 독일로 돌아가 보쿰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공부한 삿세는 1975년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 방언'으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 학교에서 교수가 됐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하기도 했다. 1992년엔 함부르크대학교로 옮겨 그곳에 한국학과를 개설, 독일학생들에게 시조를 가르치고 세종대왕을 소개했다. 유럽한국학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시멘트 박스 속에 들어가기 싫어요"

베르너 삿세 교수가 고택을 찾아 온 귀화독일인 디르크 퓐들링(빈도림)씨와 얘기를 나누며 노송을 바라보고 있다. 디르크 퓐들링씨는 삿세 교수가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재직할 때 제자였다.
 베르너 삿세 교수가 고택을 찾아 온 귀화독일인 디르크 퓐들링(빈도림)씨와 얘기를 나누며 노송을 바라보고 있다. 디르크 퓐들링씨는 삿세 교수가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재직할 때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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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에 둥지를 틀게 된 데는 담양군 대덕면에 살고 있던 제자 빈도림씨와 맺은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한국에서, 그것도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더니 빈도림씨의 이웃이 소개해줬다고.

"이웃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더니 "잘 지내고 있어요. 마을사람들도 정말 친절해요"라고 대답한다. 마을에 서양사람이 사는 게 어색하고 또 호기심이 드는지 가끔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관심이고 친절이어서 싫지만은 않다는 게 그의 얘기다.

"마을이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된 후 안길 담장을 옛날식으로 고치고 빈터에 정자도 세우는 등 전통의 모습과 가치를 되찾아가는 것이 다행입니다."

마을이 더 한국적으로 변해가는 데 대해 다행이라고 말하는 삿세 교수는 "사계절의 변화가 아름다운 한국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했다.

한양대 출강을 위해 매주 목·금요일이면 서울에 가지만 "시멘트 박스 속에 들어가기 싫어서" 서울에서도 한옥마을을 찾아간다는 삿세 교수. 국밥과 설렁탕, 국수를 특히 좋아하며, 집 마당에서 수확한 무화과로 잼을 만들고 산수유 열매를 따서 술을 담갔다는 그는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아니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전라도 사람'이다.

베르너 삿세 교수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베르너 삿세 교수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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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삿세 집 앞에서 바라본 석양.
 베르너 삿세 집 앞에서 바라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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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르너 삿세, #창평, #고재욱 가옥, #빈도림, #독일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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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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