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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작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누렁 갱지에 빽빽하게 담긴 글자, 그리고 행간 사이를 넘나드는 그 여유와 능수능란한 필체는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런 이를 '작가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말에는 존경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은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과도 같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글을 쓰게 되면서 작가의 위치가 그만큼 떨어진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은 다수 블로거의 활발한 활동을 부추기고 도왔다. 그 중에는 실제로 전문가에 준하는 식견을 가진 뛰어난 작가도 많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경우였다. 하루에도 수백 건씩 TV 미디어(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평이나 서평이 쏟아져 나온다.

 

'블로거 뉴스'가 인기를 끄니 현직 기자나 출판사들도 이에 동참하며 대중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일반 시민기자들이 다양하게 글을 쓰면서 언론의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분명 희망에 찬 미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 긍정적인 면모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인터넷 서평꾼이나 블로거가 늘어났지만, 글의 질은 아직 양에 비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직원 시절, 온라인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인터넷 서평꾼들이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카페 단위로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거대한 서평단체였다.

 

작은 출판사의 경우 책은 물론이거니와 회사 이름 자체를 알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래서 때마다 서평단을 모집해 수십 명의 회원에게 책을 보내고 서평을 받았다. 때마다 알랑거리며 무료로 책을 보내주었고, 입소문 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문제는 서평의 질이었다. 책을 받으면 대개 꼭 써야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책을 공짜로 받아보면 생각과는 달리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꼭 글을 써야하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무인 경우가 많아서 대개 그들은 글을 보내왔고, 그건 대개 기대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기계적인 글쓰기는 결코 좋은 문장과 내용을 뽑아낼 수 없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이다.

 

부담감으로 인해 억지로 쥐어짠 흔적이 역력한 단어와 문장들. 그리고 식상한 말과 들어본 것 같은 비유의 나열. 보도자료를 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수준의 서평이 너무나도 많았다. 물론 이것이 출판사 쪽에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다 준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섬세한 감성과 날카롭고 예리한 시각의 글을 기다렸다.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글에서는 열정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 열정이 과하게 터지지 않고,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글.

 

비평가 정여울의 <미디어 아라크네>는 바로 그런 은은한 향기를 품고 있는 책이다. 인터넷 서평꾼(혹은 미디어 글쟁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 목록 1호에 뽑고 싶다. 저자는 꽉 짜인 틀 없이 무형식의 형식을 창조적으로 마련하며 자유롭게 글을 풀어낸다. 책의 부제처럼 작가가 다루고 있는 것은 '방송, 드라마, 책 그리고 사람들(진중권·김연수·권여선·김형경)'이다.

 

때로는 따뜻하게, 그리고 때로는 따끔하면서도 위험한 해석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이는 제목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아라크네'. 아라크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간들 중 최고의 직녀로 올림포스의 신들이 저지른 악행과 부조리에 대한 풍자를 담아 아름다운 직물을 짰다.

 

"그녀가 짜낸 것은 단지 직물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었으며, 세계를 향해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아라크네는 아테네의 저주로 거미가 되었다. 하지만 몸 안에서 실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으니 결국 그는 신에게 패배하지 않은 셈이다. <미디어 아라크네>에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실을 뽑아내는 그 열정이 숨죽인 채 읽는 이를 기다린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생한 날것의 세계와 '맞짱 뜨는' 그만의 풍경 또한 경이롭게 담겨 있다. 

 

정교하게 직조된 정여울만의 풍경

 

그녀의 눈은 드라마로 시작해 삶과 문화에 대한 시선, 스토리, 책, 위대한 작가들로 차례차례 이동한다. 높낮이(계급)를 따지지 않는 지성과 감성은 보편적이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재탄생되고, 얼핏 보면 산만한 것 같은 구성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얼치기 서평꾼들은 내용 소개와 해설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책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향기를 충분히 뽑아내지 못한다. 읽어도 읽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무색무취의 글을 세상으로 떠내려 보낸다. 글의 낭비와 오염은 이미 인터넷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되지도 않는 억지 논리와 의견을 사실로 둔갑시키며 비평이 아닌 비난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고, 정반대로 주장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이한 글도 있다.

 

저자 정여울은 (나를 비롯한) 그런 얼치기들을 다정스럽게 혼내듯, 어깨 두드리며 예술에 대한 애정을 뛰어난 필체로 거침없이 드러낸다. 예컨대 전인권(고인이 된 정치학자), 수전 손택, 니체 등의 글을 소개하며 내뿜는 그 살가운 글에 주목하길 권한다. 고인이 된 작가에 대한 그리움, 존경심, 글을 음악처럼 느끼고 즐거워하며 저자는 책을 본다는 것이 기계적인 행동이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운 상태에서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디어 아라크네>에 담긴 글들은 상당히 보편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또한 지향점이 높고 까마득한데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서두르지 않는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면서도 명료하게 글을 풀어낸다. 비평집이라고 해서 긴장할 것 없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포근한 마음으로 보면 좋을 내용들이 가득하다.

 

마지막 책장까지 덮고 나서 글을,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글쓰기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그리고 버림받아 한기에 떨고 있는 미래의 얼굴 모르는 삶을 구원했다." - 본문 252쪽

 

작가가 벤야민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한기와 쓸쓸함, 그리고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에 따뜻함과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쓰고 있을까. 니체의 문장이 음표 없는 연주를 하고 있다며 경의를 표하는 이 놀라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텍스트에서 선율과 리듬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렇게 글을, 책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몸속에서 뽑아낸 이 살가운 글들을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디어 아라크네 - 정여울이 만난 방송, 드라마, 책, 사람들

정여울 지음, 휴머니스트(2008)


#정여울#미디어아라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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