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쉬궁쥐였어요!>,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냐 싶겠지만 이 책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필립 풀먼이 동화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의 마차를 끌던 시궁쥐를 현대의 대중문화와 조화시키며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이 엉뚱한 상상은 긴장감 있는 모험담으로 펼쳐져 사건의 빠른 전개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아주 가볍게 읽힌다.

 

그러나 이 책은 '신데렐라'를 패러디한 작품이기는 하나, 주인공은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바로 신데렐라가 마법의 힘으로 무도회장에 갈 때 시종으로 변했던 시궁쥐다. 언뜻 생각하기에 스쳐지나가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단역 배우 같은 존재다. 때문에 이야기 전반에 걸쳐 시궁쥐였던 아이가 사람 세상에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단정하게 한다.    

 

'신데렐라'를 패러디한 긴장감 넘치는 모험담

 

나이 든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 부부는 아들도 딸도 없다. 밥 아저씨는 구두 수선공이고, 조앤 아주머니는 세탁부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시장 옆의 집에 산다. 크게 내세울만한 게 없는 궁핍한 환경이다. 시궁쥐가 시종이 되어 신데렐라를 무도회장까지 안내했지만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존재감이 없는 것과 비슷한 처지다.

 

어느 날 저녁 다 찢어진 제복을 입은 꾀죄죄한 남자 아이가 문을 두드리며 "나는 시궁쥐였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언뜻 보기에 아이가 조금 이상해 보였지만, 부부는 아이를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비슷한 처지와 아이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부는 아이에게 '로저'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다음 날, 부부는 로저가 온 곳을 찾아 나선다. 맨 처음 간 시청에서는 "여기는 미아를 찾는 사무실이기 때문에 발견된 아이는 담당 소관이 아니다"고 발뺌한다. 다음으로 간 고아원, 그곳에서는 이상한 냄새와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 때문에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만다.

 

그 다음 경찰서에서는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얼버무리고, 병원에서는 "학교에 보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무서운 교장선생님이 매를 때려 되려 로저를 도망치게 만든다.

 

시궁쥐 로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볼 때, 책을 읽으면서 줄곧 시궁쥐였던 아이가 처음으로 만났던 사람이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였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독자들도 사건전개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또한 왕립 철학자가 찾아와 연구를 하겠다고 로저를 궁으로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로저가 의심할 여지없는 인간이라는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쥐를 먹는 동물에까지 생각이 미친 철학자는 고양이를 데려 오고, 이에 겁을 먹은 로저는 반사적으로 줄행랑을 쳐버린다. 이후 로저는 박람회에서 볼거리를 공연하는 탭스크루라는 사람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된다.

 

재판장은 조용히 하라고 망치를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 아이를 어떻게 했소?"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에도 가고 병원에도 가고 시청에도 가 봤지만 아무도 아이를 맡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학교에 보냈더니 학교에서는 아이에게 매질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중 왕립 철학자라고 하는 신사분이 방문하여 조사를 좀 하겠다고 아이를 데려가서는 아이에게 겁을 주었고 아이는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우리는 쭉 아이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거의 다 찾았다 싶을 때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 아이는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리곤 했습니다. 그 아이는 아주 착하고 다정한 아이지만 꼬임에 빠지기 쉬운 어린애입니다. 괴물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듣고, 우리는 혹시나 실수로 그 아이를 처형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판이 열리는 법정. '지하 하수구에서 발견한 생명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재판이다. 어린아이와 똑같이 생긴 생명체. 그 생물체를 발견한 것은 지하 하수도에 유령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맨홀을 연 <회초리일보>의 야심만만한 젊은 기자다. <회초리일보>는 즉각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이 지하에 수백 마리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불안을 조장한다.

 

온 나라 사람들에게 괴물에 대한 기사는 화젯거리가 된다. 정부 최고 과학자는 우리에 갇힌 생명체를 조사한다. <회초리일보>는 주말 특별 증보판을 내, 25만 부를 더 파는 성과를 올린다. 오래지 않아 괴물은 주요한 대화거리가 되었고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지하 하수구에서 발견한 생명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마침내 정부 각료 회의에서 괴물에 대한 처리를 대법원 특별 재판에서 결정하기로 한다. 정부 최고의 과학자, 왕립 철학자 같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괴물의 처형을 주장한다. 오직 밥과 조앤 두 사람만이 생명체는 괴물이 아니라 어린애라고 주장할 뿐이다.

 

밥과 조앤 부부가 시궁쥐 로저를 향해 쏟는 애정, 그 따뜻한 인간애를 생각하면 마음이 찹찹해진다. 누구 하나 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 이른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관공서, 철학자, 과학자, 언론, 법관들, 소위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 조금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

 

이 책은 동화의 한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와 너무나 닮아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세상을 비틀고 뒤집으며 세세하게 어두운 이면을 들춰낸다. 그 속에는 정치, 교육, 언론, 공권력을 비롯한 이해집단들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작태들이 뒤섞여 있다. 외국 동화인데도 꼭 우리의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도 지금의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 같아 놀랍다.

 

더구나 사람들의 흥미를 끌 이야기 취재에 열을 올리던 <회초리일보>는 하수도의 괴물 기사를 쓴다. 온 나라 사람들이 기사 내용에 몸서리를 치며, 괴물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괴물을 박멸해야 한다는 여론이 96%에 이르고, 신문들은 몸서리쳐지는 괴물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학부모 단체들은 지옥에서 나온 괴물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선동한다. 각료들은 괴물의 운명을 재판에서 결정하기로 한다. 어린아이와 똑같이 생긴 것을 무조건 박멸할 수는 없기에 최대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다.

 

해부학 교수, 왕립 철학자, 탭스크루 등 증인들이 증언을 할수록 로저는 괴물로 각인된다. 그래서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아이일 뿐"이라는 밥과 조앤의 주장은 철저히 묵살 당한다. 결국 로저에게는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

 

우리 사회 부조리와 너무나 닮아있는 책

 

이에 절망한 밥과 조앤은 마지막으로 얼마 전에 신데렐라처럼 왕자와 결혼한 오릴리아 왕자비를 찾아가고, 왕자비는 깜짝 놀라 로저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면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한다. 다음 날, <회초리일보>에는 천사 같은 오릴리아 왕자비의 중재로 기적이 일어났다며 많은 사람이 의심했던 대로 애당초 괴물은 없었다는 기사가 실린다.

 

언론의 중차대한 역할은 무언가.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다. 하지만 <회초리일보>는 사실과는 상관없는 정보들을 유포하고 같은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전파하며, 어느새 하이에나 같은 언론은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수많은 기사와 논평을 통해 다만 쥐 같은 습성을 지닌 한 아이를 하수도의 사악한 괴물로, 폭력적인 괴물로 만든 것도 <회초리일보>다. 겉모습에 속지 말자고 사람들의 의견을 끌고 가는 것도 <회초리일보>이며, 마지막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완벽히 논조를 바꾸는 것도 같은 <회초리일보>이다.

 

이 점에서 언론이 항상 진실을 말하지는 않으며, 언론도 실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든 일은 그 이면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것은 비단 신문뿐만 아니다. 이 책을 통해서 볼 때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망라한 현대 사회의 대중 매체에 대한 나름의 혜안을 가지게 한다.

 

언론의 중차대한 역할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다

 

무책임한 것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잘못은 언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여론을 형성하고 유도했지만, 정치 역시 여론의 뒤를 좇아가기만 하면서 눈치를 보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판단을 내린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정치의 모습이 또 한번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에 다양한 욕구가 존재하는 그 만큼 어려운 정치는 당연히 사람들을 편안하게 살게 해 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변할 길이 없는 소수를 억압하는 것이 바른 정치일까? 균형이 무너지면 한쪽으로 치우쳐지고, 그 치우침은 권력이 대변하지 못하는 삶은 파괴된다. 바로 괴물로 저당 잡히는 로저의 삶처럼.

 

눈치를 보는 지식인들도 <회초리일보>의 보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지식인은 진실을 탐구하고 그것을 알리는 것이 사명이다. 하지만 왕립 철학자는 로저의 진실을 탐구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기자 세 치 혀로 빠져나가려고만 한다.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고자 오히려 입에 거품을 무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식인의 책무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모순으로 가득 찬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로저가 왜 소리를 지르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윽박지르고 무조건 매를 든다. 올바른 교육은 그런 게 아니다. 획일적인 통제 교육, 처벌에 의한 강압적인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이해와 따뜻한 마음을 공유하는 교육만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식과 인성 모두를 고양시키는 공교육의 역할에 관해서 함께 생각하게 한다.

 

책무를 망각한 지식인과 모순으로 가득 찬 학교 현장

 

결국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시궁쥐에서 사람이 된 한 아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편견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로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기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단정 짓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로저는 학교에서는 매질을 당하고, 왕립 철학자는 실험 대상으로 취급하고, 박람회장에서는 ‘세기의 볼거리’라며 구경거리로 만들고, 소년들은 도둑질에 이용당하게 된 것이다.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이에게 뭐든지 시키는 세상. 로저는 하수구로 도망쳤는데 신문기자에게 발견되어 괴물이 되었고, '박멸'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마침내 언론의 폭력과 무지한 대중에 의해서 처형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로저는 밥과 조앤 부부, 그리고 왕자비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다. 그때도 언론은 한몫을 한다.

 

<나는 시궁쥐였어요!>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 한 편의 동화가 현대 사회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대중 매체에 대한 객관성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로저가 처한 상황 정의를 통해 무책임한 정치, 눈치를 보며 사실을 숨기는 지식인, 모순으로 가득 찬 교육현실을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하여 이 엉뚱한 패러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탐욕스러운 이윤 추구와 끔찍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밥과 조앤과 함께 분노하고 치를 떤다. 정치, 교육, 언론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크게 다를 것 없는 우리들의 모습에 내심 깊숙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과연 내 모습은 어떨까? 부화뇌동하는 여론에서 지금의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로저를 쥐 소년이라고, 괴물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이야기의 장인이 기술 좋게 풀어내는 인간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

 

한 권의 동화책이지만 참으로 여러 갈래로 생각이 뻗어 나간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이런 무거운 주제를 초등학생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데 있다. 그래서 어린이 독자들은 로저의 인생 유전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인생의 어두운 부분이 주는 공포를 이겨낸다. 그 바탕은 뛰어난 이야기꾼이 잘 알려진 동화를 바탕으로 기술 좋게 풀어낸다. 완벽한 이야기다. 판타지이면서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얼리즘이다.

 

그러나 결론은,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 사랑과 가족의 따뜻함,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은 그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된다는 믿음 하나다. 감동적이다.


나는 시궁쥐였어요!

필립 풀먼 글, 피터 베일리 그림, 이지원 옮김, 논장(2008)


태그:#패러디, #신데렐라, #동화, #판타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