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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일 저녁. 서울 동대문 패션아트 홀 5층에서 올해로 3회째를 맞는 2008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무대에 출품하는 의상을 만든 봉제기술자들이 직접 모델이 되어 런웨이를 걷는다는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 정말 '쭉쭉빵빵'한 팔등신의 모델이 아니라도 패션쇼가 가능한 것일까? 화려하게만 보이는 패션쇼의 무대 뒤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패션쇼 당일 '참신나다'의 무대 뒤를 찾아가 보았다.

화려한 런웨이와는 달리 무대 뒤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간신히 사람의 모습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조명 아래서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는 사람, 화장을 고치는 사람, 워킹연습을 하고 있는 사람,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표정에 긴장감이 감돈다.

팔등신 모델이 아니라도 패션쇼가 가능하다?

전문 패션모델이 아닌 일반인이 모델로 선다더니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 모델들의 면면이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시장통에서, 버스 안에서, 그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아줌마들이 거기에 있었다.     

생전처음 걸어보게 될 런웨이가 떨리는지 의자에 앉아 불안한 듯 두 손을 비비고 있는 장금숙(59)씨는 수다공방 졸업생이며 미싱만 35년 해온 미싱 베테랑이라고 한다.

"미싱은 눈감고도 할 수 있지만 모델은 처음이라 긴장되고 떨리네요. 미싱 기술 배우려고 수다공방에 왔는데 모델이 되는 기회까지 왔어요. 생전 처음 고운 옷 차려 입고 화장까지 곱게 해서 그런지 남편도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일을 배우는 게 힘들긴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의 격려가 큰 힘이 됐어요."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 조성민씨의 친권 부활 반대 운동으로 한창 바쁘다는 오한숙희씨의 모습도 보인다. 자신과 함께 런웨이를 걷게 될 수다공방 수강생과 걸음걸이를 맞추느라 분주하다.

 참여성노동복지터 주최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가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봉제기술인과 정치인,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와 소비자가 직접 모델로 참여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참여성노동복지터 주최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가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봉제기술인과 정치인,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와 소비자가 직접 모델로 참여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1회 때부터 매번 참여하는데 할 때마다 굉장히 긴장되고 떨리네요. 힘들게 살아온 여성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행사라 정말 신이 납니다. 옷이 너무 예쁘고 감촉도 참 좋아서 기분이 좋아요."

오한숙희씨와 커플로 런웨이에 서게 될 수다공방 졸업생 백선영(53)씨도 생애 첫 모델이 너무나 긴장된단다.

"이 옷은 지난 10월 중분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평택에 사는데 매주 한 번씩 수다공방에 나와 일을 배웠죠. 저도 미싱을 한 30년 했어요. 지금은 평택에서 작은 의류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다공방에서 고급기술을 배워 제 브랜드를 단 옷을 만들고 싶은 것이 소망이지요."

여신처럼 하늘거리는 롱 드레스차림의 정덕희 원장 역시 멋진 무대매너를 보여주기 위해 연습이 한창이다.

"뭐든 새로운 도전은 가슴을 뛰게 하는 것 같아요. 지방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올라오느라 조금 늦어서 연습을 제대로 못해서 걱정이에요. 이렇게 의미 있는 여성들의 행사에 참가하게 된 것이 영광이지요. 제가 좋은 행사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게 된다면 큰 기쁨이구요. 오늘 밤이 저에겐 참 신선한 밤이 될 것 같네요."

이웃처럼 평범한 아줌마 모델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을 내는 여성들이 눈에 띤다. 한복을 세련되게 현대화한 항공사 승무원복을 입고 워킹연습이 한창인 그들. 언뜻 보아도 전문 모델 못지않은 몸매와 미모를 가진 그녀들이 궁금했다.

"저희는 신생 저가 항공사인 이스타 항공의 승무원들입니다. 저희 승무원복을 디자인하신 분이 수다공방에 관계하고 계시구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승무원복도 수다공방의 공동작업장인 '참신나는 일터'에서 직접 만들어 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오늘 저희 회사 사장님도 런웨이에 오르시거든요. 떨리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장미란 선수의 깜짝 등장... "별로 떨리지는 않는데요"
 
그녀들 중 누군가가 배포된 순서지에는 없지만 이번 무대에 역도 영웅인 장미란 선수가 깜짝 등장하는 순서가 있을 것이란다. 믿을 수 없었지만 패션쇼가 시작되기 바로 전 무대 뒤에 비행기 기장 유니폼을 입은 장미란 선수가 나타났다. 이스타 항공사의 홍보대사를 맡게된 계기로 패션쇼에 깜짝 출연을 하게 되었다고.

 신생항공사 이스타항공 홍보대사인 역도선수 장미란씨가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참여성노동복지터 주최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에서 수다공방이 제작한 유니폼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신생항공사 이스타항공 홍보대사인 역도선수 장미란씨가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참여성노동복지터 주최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에서 수다공방이 제작한 유니폼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 권우성

장미란 선수의 등장에 놀란 참가자들이 휴대폰 카메라로 그녀를 찍자 살짝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지만 긴장되느냐는 질문에는 세계를 들어올린 그녀답게 "아니요. 별로 떨리지는 않는데요"라고 대답한다.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무대 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요정 같은 꼬마아가씨들이 우르르 들어온 것이다. 창신초등학교1학년 이유진, 정다빈, 이소연, 2학년 최유진 등 10명의 어린이는 이번 패션쇼무대를 축하하는 개막공연을 담당했다.

"우린 참신나는학교에 다녀요. 예쁜 옷 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무대에 나가서 율동을 할 건데 떨리고 재미있어요."

'참신나는학교'는 창신동인근 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와 욕구조사를 거쳐 만들어진 방과 후 학교이며 '참신나는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자녀는 물론 인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엄마를 둔 아이들을 위해 만든 방과 후 교실이다. 

우리 시대의 희망인 아줌마들

패션쇼를 마치고 사회를 맡은 권해효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첫 회부터 이 행사에 참여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순옥씨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어요. 전태일 열사와 관련된 행사나 노동행사나 이런저런 행사에서 잠깐씩 뵌 것이 전부였거든요. 패션쇼에 참가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알게 되었는데 참 좋은 취지의 일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초대해 주실 때마다 의미있는 일에 참여하게 해주셔서 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사의 사회를 맡는 것이 '수다공방'이나 봉재노동자 그리고 전순옥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권해효씨는 3회째 맞는 수다공방 패션쇼를 보면서, 축하할 일이고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고 한다.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에서 참여성노동복지터 전순옥 대표, 디자이너, 출연진이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에서 참여성노동복지터 전순옥 대표, 디자이너, 출연진이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동대문, 남대문등 거대의류 시장 속에서 '수다공방'이라는 브랜드가 빛을 발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술이나 디자인은 청담동이나 압구정의 고급 의상실과 못지않지만 인지도면에서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지요.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시는 정계나 재계, 각 사회단체 등이 나서서 이 브랜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황이 계속되며 의류노동자의 작업환경과 생활형편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저가 중국산 의류 덤핑으로 인해 소규모 의류생산공장은 하루에도 몇 개씩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난하고,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살아온 우리의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햇볕 한 줌 들지 않은 작은 공장에서 졸음과 먼지와 씨름하며 하루에 열 시간도 넘게 미싱을 돌리던 그녀들이 작업장에서 나와 당당하게 런웨이를 걷는다. 미싱에 날개를 달고, 바람이 나더니 바야흐로 참신나게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그녀들에게서 진한 삶의 향기를 맡는다. 그녀들이 바로 이 시대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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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공방#참신나다#전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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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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