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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제중학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게 이런 걸까요. 7월 30일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선출 이후 겨우 4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국제중학교 허가가 나오고, 전형요강이 발표되고, 학생을 선발하네요. 

서울시교육위원회가 학교설립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며 부결시켰음에도 보름 만에 재상정하여 통과시키고, 학생 선발 원칙 하나 가지고도 일선학교와 혼선을 빚는 걸 보면 졸속도 이런 졸속이 없습니다. 시작부터 어설픈 국제중학교에서 교육도 졸속으로 이뤄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국제중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할 건지 찾아봤습니다. 다른 학교와 가장 다른 점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 방식입니다. <한국인 교사와 원어민 교사가 협력하는 수업(Co-Teaching)>, <한국인 교사와 원어민 교사가 45분씩 진행하는 수업(Team-Teaching)>, <한국인 교사가 이중언어로 진행하는 수업(Dual Language-Teaching)> 등이 소개되어 있네요. 

'사회, 수학, 과학, 영어' 등의 과목이 대상이라고 하니 국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부터 영어로 수업한다는 건 대부분의 초등학교 6학년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수업만 충실하게 받은 중학교 1학년생이 영어로 진행되는 (영어과목이 아닌) 수업을 따라갈 수 없을 테니까요. 

국제중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특별과외를 받고, 영어 학원에 다니고, 해외유학을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다 수업이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그럼 영어로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준비가 어느 정도 필요할까요?

영어로 수업 받는 데 준비 과정에만 1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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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 싱가포르에 살고 있고, 아이들 둘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이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국제중학교에 자녀를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의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단 다른 부분은 빼고 영어에 대한 부분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호주계 국제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캠퍼스 안에 다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는 2년 전에 국제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저의 직장 문제 때문에 갑자기 이민을 온 터라 아이들은 영어에 대해 준비가 별로 없었는데, 수업 전체가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에 보내게 되었으니 걱정이 많았지요. 

학교에서는 제 아이처럼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의 입학도 허가를 했습니다. 학비가 워낙 비싸서 학교로서는 학생 하나가 곧 수익이거든요. 대신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과정을 별도로 만들어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따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물론 비용은 추가로 청구를 하지요.

EAL 수업이 정규수업시간 중에 이루어지는 바람에 하루에 정규수업 두 시간을 빼먹게 됩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가 하루 두 시간의 수업으로 단시간 내에 영어를 잘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루 두 시간의 집중적인 영어 수업과 영어로 이뤄지는 수업에 종일 참여하고, 집에 와서는 개인과외를 따로 받았습니다.

여기에 텔레비전 프로도 영어로 나오고, 거리에서도 영어에 노출되고, 친구들과도 영어로 이야기하는 환경이 더해졌음에도 아이가 EAL 과정을 마치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EAL을 마쳤다는 건 영어로 된 수업을 받는 데 큰 장애는 없다는 뜻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기까지가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받기 위한 준비 과정에만 1년이 걸린 셈입니다. 그것도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온 종일 영어에 노출된 상태에서 말입니다. 수업에 참여하면서도 수업에서 소외되었던 그 1년이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였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영어 까먹을라! 영어 못하는 애들과는 어울리지 마'

영어수업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해드릴게요. 지난 학기에 한국 학생 한 명이 새로 등록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한국에서 외국인 학교에 다녔답니다. 한국 국적이긴 하지만 에콰도르에서 일주일 체류하면서 받은 영주권으로 외국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답니다. 

막상 학교에 가 보니 이름만 외국인 학교지 실제로는 한국 학생이 훨씬 더 많았다는군요. 그런데 같은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조기유학을 다녀와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과 영주권만 있지 해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기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이 외국인과는 어울려도 영어 못하는 학생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는답니다. 한국말을 많이 하면 영어를 까먹게 될까봐 부모들이 그렇게 시키기도 한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데다 영어로만 이뤄지는 수업을 따라가는 게 힘이 든 그 학생은 자꾸만 유학을 보내달라고 보챘고, 결국 어렵게 들어 간 외국인 학교를 그만두고 이른바 기러기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싱가포르로 왔다고 합니다. 물론 정규수업 대신 EAL 수업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지요.  

아이가 학교 그만둘 수도...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의 입학 전형요강.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의 입학 전형요강.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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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와 주위 사람들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보통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육만 충실히 받은 것만으로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로 된 수업을 받는 건 불가능합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로 수업하고, 영어로 놀고, 영어 과외를 따로 받아도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립니다. 

국제중학교가 공교육을 강화하고 조기유학을 예방할 거라는 교육당국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국제중학교를 목표로 하는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조기유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항목이 될 것이며,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면 어마어마한 사교육을 오랜 기간 받아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업에 참여할 수도, 학교생활을 견딜 수도 없을 테니까요.

국제중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조기유학과 사교육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이에 반해 공교육은 허울만 남게 될 것입니다. 국제중학교 지원서를 손에 들고 고민하고 있는 학부모님께 권합니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자녀의 영어 수준이 원어민과 같지 않다면 영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학교에 보내지는 마세요(그게 단 몇 과목이라고 하더라도). 자녀가 많이 힘들어 하다가 학교 그만두고 조기유학을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영어로 수업을 받는 게 아니라 영어 수업만 받다가 졸업하는 게 그나마 나은 경우가 될 겁니다. 외국에서 살다 왔거나 조기유학을 통해 어느 정도 영어가 되는 경우에도 지원서를 넣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이미 자녀가 영어의 기초를 쌓은 상황에서 영어로 수업하는 것과 비싼 학비 외에 다른 차별점을 드러내지 못한 채, 졸속으로 개교만 서두르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판단해 보라는 겁니다. 

국제중학교는 사학재단과 유학원, 그리고 영어 사교육 시장을 위한 미끼 상품일 뿐입니다. 영어로 이뤄지는 수업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 검증된 게 없습니다. 학교는 6개월 만에 졸속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만큼은 졸속으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마루타가 아닙니다. 국제중학교,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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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제중,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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