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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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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의 전쟁은 대를 이어 계속됩니다. 원폭의 후유증으로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는 원폭2세 환우들에게 전쟁의 끝은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 홍반, 고혈압, 불면증….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에게는 병명이 많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학교를 다녀오면 늘 다리가 아프고 뼛속이 저렸다. 그때마다 망치로 두들기는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주어서 통증을 가라앉히곤 했다. 결국 두 다리의 연골이 다 녹아내려 17년 전부터 두 다리에 인공관절을 심어 넣는 대수술을 네 차례나 받았다. 두 어깨와 이마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어 수술이 필요하지만,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자신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 환자이면서도 한 회장은 지금 생계비와 수술비 마련을 위해 어둠이 깔리는 저녁에 병원으로 출근을 한다. 그녀의 생업이 '간병인'이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을 하고, 주말까지 62시간 연장근무를 해야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한다.  

고 김형률씨로부터 시작된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특별법 제정운동  

얼마 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그 피해자 자녀의 실태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이 한나라당 조진래 의원 등 여야 103명 국회의원의 공동발의로 국회 의안과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에는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설립자이자 원폭2세 피해자였던 고 김형률씨의 피땀과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또 정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잊혔던 한국 원폭2세환우들의 눈물과 생명의 열망이 담겨 있다.

1950년대부터 이미 다양한 원폭피해자 관련법을 제정하여 자국민 피폭자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세계 최고로 원폭피해자에 대한 연구와 의료, 사회복지 체계가 발달한 일본 정부조차 '무책임' '모르쇠' 작전으로 일관하는 원폭2세 피해자에 대한 생명권과 생존권 보장을 한국에서 만든 법안이 담고 있는 것은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제정운동이 피해자로부터 출발했고, 그 피해자가 '원폭2세 환우'였기 때문이다.  

"김형률 회장을 생각하면 왜소한 체구에 이야기를 조금만 해도 기침이 나와서 고통스러워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아픈 몸으로 자기 생명을 나눠 세상을 누비고 다니면서 원폭2세 환우의 인권 현실을 알리려고 했던 그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열성적이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가 설립되고 특별법제정운동이 진행 중일 때만 해도 아직 일반 회원이었던 한 회장은 17대 국회 당시 피해자 증언대회,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 국회청사 앞 시위 등 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왕복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결국 법안은 국회 내에 계류되었고 대통령 선거 등으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그대로 끝이 나버렸다. 

"17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만 해도 당장 뭔가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많았습니다. 법안이 국회에 내내 계류하다가 폐기되었을 때는 실망이 컸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한국원폭2세환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건만, 국회가 야속했지요.

김형률씨가 돌아가시고 뒤이어 회장이 된 정숙희씨도 저와 같은 병을 가진 분으로 몸이 많이 아프고 정말 힘들었을 텐데,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특별법은 저 한 사람의 소망이 아니라 모든 원폭2세 환우의 바람이며 소원입니다. 저는 회장이기 전에 한 사람의 원폭2세환우로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아픈 사람들이라도 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포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참석하여 인사를 나누는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참석하여 인사를 나누는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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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는 병원비 걱정없이 치료받고 싶어"

한 회장은 한국인 원폭2세 환우들의 참혹한 아픔의 뿌리가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그리고 원자폭탄 피해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63년 동안 일본정부도, 한국정부도 한국인 원폭2세환우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사실 원폭피해자 1세들도 정부의 무관심과 무대책 때문에 개개인이 고스란히 모든 아픔을 떠안고 살다가 외롭게 죽어갔다. 현재 1세 피해자들이 얻어낸 결실이 있다면 그것도 전부 피해자들 자신의 목숨을 건 오랜 싸움의 결과일 뿐이다.

"원폭2세 환우들은 원폭피해자입니다. 직접적인 피폭자는 아니지만 대를 이어 나타나는 원폭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병마와 싸워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피부병, 근육이완증, 무혈성 괴사증,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심근경색과 협심증, 갑상선 질환, 고혈압, 정신지체장애, 다운증후군, 우울증과 불면증 등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니 일상적인 사회생활도 힘들고,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다 보니 가난마저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원폭피해자로서 이런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아플 때는 당당하게 병원비 걱정 없이 우리의 아픔을 병원에서 자유롭게 치료받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특별법이 제정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폭2세환우들에게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픈 사람들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한 회장은 지금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원폭2세 환우들이 몸에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고 표현했다. 하루하루 병이 진행이 되어서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어 눕고 일어나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환우도 있다. 한 회장 본인도 이미 네 차례의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하루 속히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수술비도 걱정되고 수술을 하면 일 년 정도는 일상적인 움직임과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생계도 걱정이다.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는 내가 이 수술을 받고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까 두렵고, 수술을 마친 뒤에는 일반인들처럼 활동을 할 수가 없으니까 답답하고 살 길이 막막합니다."

지난 5월 고 김형률 추모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한정순 회장.
 지난 5월 고 김형률 추모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한정순 회장.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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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피폐해진 합천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그녀의 가족은 원폭투하 당시 히로시마에서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삼촌과 언니, 오빠 등 총 열세 식구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가족들은 심각한 화상을 입고 부상했으며 피폭 후유증이 심했던 부친은 심근경색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원래 한 회장의 형제는 3남 5녀였지만 현재는 2남 4녀만이 남았다.

오빠 둘도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고, 세 자매는 모두 홍반이라는 피부병을 앓았으며 두 사람은 무혈성 괴사증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한 사람은 어깨관절 수술을 받았다. 막내 남동생은 젊은 나이부터 이가 전부 빠져서 틀니를 하고 있고 형제들 모두 고혈압이다. 가족 모두가 피폭의 현장에 있었든 없었든 간에 원폭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회장의 가족사에는 원폭피해가 1세대, 2세대를 넘어 3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아들 이야기를 꺼낸 한 회장은 말끝을 흐리며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평생 내 가슴에 묻어야 할 큰 아들…. 큰 아들은 뇌성마비로 태어나서…."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 내미는 간병 일이 좋아

젊은 시절부터 아팠고, 아픈 것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나 결혼생활에서도 서러움을 많이 겪었던 한 회장이 간병 일을 하기로 결심한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다. 

"첫 수술을 받을 때는 관심이 없었는데 두 번째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내가 아플 때 간병인의 따뜻한 손길을 받는 것, 그것보다 따스한 일이 없더라구요. 내가 아파보니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고 싶어졌어요. 꼭 원폭2세 환우가 아니고 어떤 종류의 질병과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이든간에 아픈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제 행복이에요. 다만, 제 몸이 안 좋아서, 일반 간병인들만큼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그게 미안하고 가슴 아픕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절실히 이해하는가 보다. 마음이 따뜻한 그이기에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으로서 각오에도 아픔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묻어난다.

"원폭2세 환우의 아픔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폐기능의 70%를 잃은 상태에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김형률씨가 평생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병마를 넘어서 한국원폭2세환우의 권리를 외치다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저 역시 환우회 회장이 아닌 한 사람의 환우로서 용기를 얻습니다. 돌아가신 김형률 회장은 남은 이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기고 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숙제를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 회장은 며칠 전에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다시 출근을 했다면서, 마지막 각오를 덧붙인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특별법 제정은 한국원폭2세환우회 전 회원의 바람입니다. 저희 회원이 아니더라도 원폭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지금은 건강하지만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후유증 때문에 건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모든 원폭2세들도 간절히 특별법 제정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일본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정부가 원폭2세환우들을 피해자로서 인식하고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는 그날까지 싸울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해 싸울 겁니다."

이를 위해,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다음 주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캠페인과 '한국원폭2세환우 권리선언' 및 특별법제정을 위한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며, 앞으로 국회에서 조속히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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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원폭2세환우회, #특별법, #원폭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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