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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주민들이 방제작업을 재개했다.
▲ 방재작업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주민들이 방제작업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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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밥 먹고 방제현장으로 향하는 홍 할머니

새벽 5시. 아직 채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홍정옥(74) 할머니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 힘겨운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향한다. 오늘은 점심에 먹을 도시락과 보온통도 준비해야 한다. 방제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기름유출사고 1년을 맞은 충남 태안군. 방제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지난 6월말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종료됐던 방제작업은 11월초 국립공원에서 '생태계 복원사업'을 실시하면서 다시 재개됐다.

4일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 속에서 진행된 이날 방제작업에 참석한 인원은 60여 명. 거센 바닷바람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에 몸이 젖어 입술이 파랗게 변해갔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진 않는다. 이것이 유일한 돈벌이기 때문이다.

홍정옥 할머니도 이른 아침, 도시락과 보온통을 담은 가방을 메고 방제작업장인 의항리 태배지역을 찾았다. 다리가 불편한 홍 할머니는 방제작업이 재개된 이곳까지 오기 위해 30분 넘게 걸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더러 방제작업 현장으로 향하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지만 이날은 운이 없었다.

방제작업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데 홍 할머니가 제때 방제현장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같이 늙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걸어오려면 중간에 서너 번은 쉬었다가 와야 혀. 운 좋으면 차라도 얻어 탈 수 있는데 오늘은 그냥 걸어왔네."

6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할머니는 현재 홀로 생활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땐 조그만 굴 양식장도 운영했지만 홀로 되신 후부터는 남의 집에서 굴 까는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다.

허나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기름유출사고로 할머니는 더 이상 굴 까는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대신 방제작업에 동원됐다.

"방제작업 하는데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그래도 굴 까는 작업은 난로 옆에서 하기라도 하지. 근데 방제작업은 아녀,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겨우내 감기몸살로 고생했다니까."

홍 할머니가 방제작업 인건비로 받은 돈은 6만원(남자는 7만원). 비록 굴 까는 작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낮은 금액(하루 최대 10Kg 7~8만원)이지만 그래도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방제인건비도 한참 지나서 주데. 생계비라도 없었으면 진짜 굶어 죽을 판이었다니까."

4일 홍정옥 할머니는 차갑게 식은 밥을 먹으며 "그래도 나오야지 어떻게 혀, 돈 벌어야지 나도 먹고 살지"라며 입가로 젓가락을 옮겼다.
▲ 차가운 점심 4일 홍정옥 할머니는 차갑게 식은 밥을 먹으며 "그래도 나오야지 어떻게 혀, 돈 벌어야지 나도 먹고 살지"라며 입가로 젓가락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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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인 홍 할머니가 지급받은 1, 2차 긴급 생계지원금은 약 200만 원. 사고 발생 45일만이다. 그동안 홍 할머니는 방제작업에 참여할 때 지급받은 빵과 우유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했다.

"하루 종일 방제작업하고 나면 밥맛이 없어서 그냥 점심에 나눠준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웠지. 라면도 많이 먹었어.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파."

약 6개월 동안 방제작업에 참여했지만 홍 할머니는 아직까지 3~6월분 방제인건비를 지급받지 못했다. 태안군이 주민 방제인건비 대위지급을 위해 18개 방제업체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태안군이 방제업체들로부터 관련자료 및 동의서를 얻어내 이달 중 충남도 공동성금을 통해 조성된 21억 원과 지방채 53억3500만 원을 합친 총 74억3500만 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방제작업-> 공공근로-> 다시 방제작업, 내년엔? 

추운 날씨속에 진행된 방재작업에서 미처 손을 닦지 못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 이 지역 할아버지의 손
▲ 기름손으로 밥을 먹다. 추운 날씨속에 진행된 방재작업에서 미처 손을 닦지 못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 이 지역 할아버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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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개장에 맞춰 방제작업이 종료되자 또 다시 소득이 없어진 홍 할머니는 7월부터 9월까지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생계안정 특별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했다.

총 사업비 약 42억 원이 투여된 이 사업에서 홍 할머니는 해안가 정비 사업에 참여해 하루 일당 3만5천 원을 받으며 이웃주민들과 같이 바닷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다.

"방제작업보다 돈은 덜 줬지만 그거라도 벌어야지 어떻게 혀. 이거라도 해야지. 돈을 벌어야 나도 먹고살 거 아녀. 근데 기자양반 이거(공공근로사업) 하면 (기초생활) 수급자에서 빠진다는데 정말인가?"

현재 태안군은 보건복지부에 기초생활수급자가 공공근로에 참여했을 경우 수급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의한 상태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최저 생계비(1인 가구) 명목으로 46만347 원이 지급되고 있다.

태안군 관계자에 의하면 "기초생활수급자는 원칙적으로 소득이 없어야 지원이 가능하므로 이 문제에 대해 현재 보건복지부에 문의한 상태"라며 "주민들의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면 제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여 전에 다시 시작된 방제작업은 이제 곧 끝난다. 한 달여간의 작업이지만 사업비가 정해져 있어 한 사람이 방제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날은 최대 14일에 불과하다.

4일 오후 1시. 차갑게 식은 밥과 반찬으로 점심을 먹은 할머니는 다시 장갑을 끼고 방제작업을 하기 위해 바닷가로 발길을 옮겼다.

끝으로 할머니는 걱정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올해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내년에도 이런 거 또 할 수 있나? 알면 좀 알려줘. 이장도 잘 모른다고 해서 말여"라는 걱정이었다.

태안군 관계자는 "올해 모든 사업이 종료한다.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은 없다"며 "내년이 지금보다 문제다. 중앙정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지자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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