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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운동회 날 점심시간에 함께 점심을 나누고 있다.
▲ 부곡초 가을운동회 점심시간 가을운동회 날 점심시간에 함께 점심을 나누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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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을 하다보면 유독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점심시간이다. 바쁜 시간에 쫓겨 아침을 설친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넷째시간쯤이면 배가 출출해진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이쯤이면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다. 더구나 몸집이 큰 6학년 아이들은 그저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엉덩이를 더럭 댄다. 4교시 수업을 마쳐도 급식 차례를 맞추려면 십분 여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뱃속이 허한 아이들은 연방 발을 동동 구른다.

“선생님, 빨리 가요. 오늘만 우리가 먼저 먹으면 안돼요.”
  “우린 매일 꽁지로 밥 먹어요. 뭐 6학년이 된 게 죄에요?”
  “밥 먹고 싶어요. 정말.”

애가 달아 안달이 났다. 요즘 들어 우리 반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그런지 먹는 것을 밝힌다. 그만큼 군입거리도 많이 하는 편이다. 교실 쓰레기통에는 언제나 과자봉지로 넘친다. 중국산 멜라민 파동으로 몸서리를 쳤던 때가 바로 엊그젠데 벌써 깡그리 잊었다. 그 사실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는 비단 어린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확실히 아이들은 날씨가 추워진 요즘 군것질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지 말라고 뜯어말리지만 내 지청구는 안중에 없다는 표정이다. 몸에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 그저 어느 것이라도 입맛에 좋은 것이라면 따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낱개로 일이백 원하는 먹을거리들이 맛은 고사하고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과자들이 다 불량식품은 아니겠지만, 개중에는 제조업체나 유통기한 표시가 안 돼 있는 게 많아 걱정이 된다.

요즘 들어 군것질이 많은 아이들

급식소에 어서 가자고 다그치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줄을 서서 졸졸 따라갔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과 교직원을 다 합치면 2백 명 남짓 식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인수 과밀학교에 비하여 점심시간이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하지만 사정이 그러한데도 배가 출출한 아이들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앞자리에서서, 먼저 먹으려고 매일처럼 줄서기에 바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 역시 아이답다는 생각에 피씩 웃음이 난다. 고작 빨라봐야 일이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을 두고 저렇게 기를 쓰다니.

꽃게탕에 든 왕새우 한 마리를 배어물었다.
▲ 우리 반 대현이 꽃게탕에 든 왕새우 한 마리를 배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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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이는 밥을 골고루 먹으나 그 양이 언제나 적다.
▲ 우리 반 현정이 현정이는 밥을 골고루 먹으나 그 양이 언제나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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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소까지 백여 미터, 줄을 서서 기다린 지 십여 분, 배식을 받자마자 냉큼 먹어대는 아이들, 그러나 채 삼분 정도면 거의 다 먹고 만다. 그야말로 초스피드다. 매번 식사지도를 하는데도 밥만 앞에 두면 그게 잘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들, 이유는 딴 데 있다. 한 숟가락이라도 먼저 먹고 운동장에서 놀고 싶은 거다. 그게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가장 큰 바람이다. 아무리 급식지도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만큼은 애써 말릴 재간이 없다. 그냥 못 이기는 척 눈감아 준다. 아이들 연방 얼굴이 환해진다.

밥 먹는 게 너무 빠른 아이들

학교급식을 시작한 지 어언 이십년 째다. 그동안 우여곡절이야 숱하게 많았지만, 대부분 학교단위에서 나름대로 잘 정착되고 있는 편이다. 조리나 주방시설도 좋아졌고, 급식 위생상태도 많이 나아졌다.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만큼 식단도 다채로워졌다. 아무리 수입농산물이 판을 치는 요즘 형국이지만, 아직 학교급식만큼은 우리 농산물, 제철식품, 산지먹을거리가 제때 공급되고 있어 아이들 건강에 크게 염려 삼을 것은 없다. 안전먹을거리체제가 정착되고 있는 셈이다.

사진을 찍는 데 우리 반 혜진이가 포즈를 취했다.
▲ 급식소 풍경 사진을 찍는 데 우리 반 혜진이가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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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을 먹으며 서로 장난하고 있는 유치원 아이들
▲ 다정한 유치원 아이들 급식을 먹으며 서로 장난하고 있는 유치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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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교가 일제 급식을 실시함으로 해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매일처럼 아이들의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난 학부모들이 무슨 일이냐고 반문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도시락을 싸서 먹던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 적어도 요즘 아이들은 도시락 하나에 담겨 있는 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맛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도시락 하나에 담긴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맛보지 못하는 아이들

도시락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이고, 기대감이며, 충만감이다. 비록 사는 형편이 여의치 못해서 꽁보리밥에다 반찬이라고는 장아찌 몇 조각 김치가 담 겼어도 꿀맛이었다. 게다가 아무런 기대도 않고 있는데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계란프라이가 하나쯤 턱하니 덮여 있을 때는 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더없는 엄마의 사랑을 그것 하나로 따사롭게 느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경우 엄마가 그 어떤 음식을 챙겨주더라도 예전의 도시락을 대했을 때의 감흥과 비견할 수 있을까.

도시락 하나에 담긴 의미는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나눔과 배려를 빼어놓을 수 없다. 설령 좋은 반찬을 싸왔거나 미처 도시락을 챙겨오지 않아도 함께 나눠먹었다. 한 둘 욕심꾸러기를 제외하고는 네 것 내 것을 따로 구분 짓지 않았다. 그게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그때 그 시절의 훈훈한 풍경이다. 한데, 지금은 식판에 담겨진 제 것만 먹으니까 그렇게 자잘한 마음 씀씀이를 찾아볼 수 없어 씁쓰레한 기분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도시락을 싸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화왕산 산행 가서 즐거운 점심시간을 맞은 아이들
▲ 화왕산에 오른 부곡초 6학년 화왕산 산행 가서 즐거운 점심시간을 맞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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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정상에 선 부곡초 6학년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잇다.
▲ 화왕산 정상에 선 아이들 화왕산 정상에 선 부곡초 6학년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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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반은 다같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어보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산행이다. 토요일 수업이 없는 날을 이용해서 아이들과 산에 오른다.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벌써 인근 높다란 산은 다 올랐을 정도로 빈번히 갔다.

팍팍한 산행에도 아이들은 좋아한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다들 뭘 싸왔을까. 한껏 기대를 해 본다. 나는 맨밥에다 평소 집에서 먹는 반찬을 챙겼다. 야채 쌈도 함께 싸간다. 힘든 산행 끝에 정상에 이르고 점심 먹자고 졸라대는 아이들이 많아졌을 때 암팡지게 너른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 자리를 편다.

아이들과 함께 먹어보는 점심 도시락

도란도란 모여 앉은 아이들, 역시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 각자 싸온 음식들을 다 펼쳐놓으니 각양각색의 음식들,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순간, 땀범벅이 된 아이들, 누구라 할 것 없이 표정이 환하다. 어디 먹을 것 앞에서 얼굴 찌푸리는 사람 있나. 애써 말하지 않아도 내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친구들의 도시락을 함께 맛보는 아이들, 그동안 지독한 편식으로 밥 먹는 것을 꺼렸던 아이들도 먼저 젓가락을 내민다. 나눠먹는 인심이 후해진다. 그러니 자연 평소보다 배는 더 먹는다. 모두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산 교육이 따로 없다. 이렇게 둘러앉아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다 먹어보는 것이야말로 골고루 먹는 식습관을 형성해주는 길이다. 이러고 나면 아이들 간의 친교도 유다르게 좋아진다. 나눔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다. 무조건 편한 게 좋고, 위생적인 것이 좋다고들 하지만 흙 묻고 벌레 먹은 것을 나눠먹고 자란 예전의 아이들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일전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외국인 친구가 넌지시 물었다.

“박 선생님, 난 한국 사람들이 된장국이나 매운탕을 여럿이 숟가락으로 함께 먹는 것이 이해 안 돼요.”

그랬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 친구는 처음에 대경실색한다는 표정이었다. 따로 국밥을 먹듯 제 그릇에 담긴 음식에만 익숙했으니 그 친구, 얼마나 뜨악했을까.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 지금 파란 눈의 그 친구는 어떤가. 음식을 마주 대하면 제 숟가락이 먼저 매운탕에 가 닿는다. 이 또한 우리 음식문화에 담겨진 정겨운 아름다움이 아닐까.

아이들이 하루 먹는 점심이 담긴 식판. 오늘 메뉴는 야채비빔밥이었다.
▲ 학교급식 아이들이 하루 먹는 점심이 담긴 식판. 오늘 메뉴는 야채비빔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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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도시락 하나로 많은 생각을 떠올려봤다. 다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자꾸만 파편화되고 각박해지는 세상에 커 가는 우리 아이들만큼은 좀더 내놓고 튼튼하게 키웠으면 좋겠다. 한 자녀 세대가 많고, 어울려 사는 경험이 적어지는 이때일수록 더욱 더 함께 나누는 여력을 맛보아야겠다. 단지 한 달에 한번 정도의 도시락 나눔의 자리를 마련해서라도. 지금의 아이들에게 도시락 하나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맛보게 하고 싶다.     
               
부곡초 가을운동회 때는 학구내 노인분들의 점심은 급식소에서 따로 마련해 드리고 있다.
▲ 운동회날 점심 부곡초 가을운동회 때는 학구내 노인분들의 점심은 급식소에서 따로 마련해 드리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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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점심, #학교급식, #추억, #우리농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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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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