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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꿈터'
 우리마을 '꿈터'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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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12월 3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성미산마을을 다녀왔다. 대전 민들레 의료생협 자원활동가 네 번째 교육프로그램에 맞춰 간 곳이지만, 이따금 공동체마을이 언론이나 방송에 소개될 때마다 귀를 솔깃하며 들었던 곳이다.

'성미산은 어디에 있을까?'

마포에 도착하니 한적한 느낌이 들 정도로 동네가 조용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게 딱히 눈에 띄진 않는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가 어설프게 모인  그곳이 아마도 성미산자락인 듯했다.

내게 마포는 생판 낯선 동네가 아니다. 결혼 전 내 본적은 서울 마포구였다. 어린 시절엔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초등학교도 다녔다. 그런 낯익은 기억으로 걷고 있자니 골목길을 꺾어 돌면 어릴 적 친구라도 만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턱없는밥집' 간판의 젖먹는 새끼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미개의 표정이 볼 수록 정겹다.
 '문턱없는밥집' 간판의 젖먹는 새끼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미개의 표정이 볼 수록 정겹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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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공동체를 돌아보기 전, 마침 점심 때가 되어 우리 일행은 '문턱 없는 밥집'에서 유기농 비빔밥을 먹었다. 작년 5월쯤에 문을 연 이곳은 '빈그릇 운동'을 펼치고 있다. 즉 자기가 먹을 만큼의 양을 남김없이 먹고 밥값은 형편에 따라 낼 수 있는 곳이다. 밥집 바로 옆 '기분 좋은 가게'를 둘러보니 마포라는 동네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읽다가 만 듯, <자발적 가난>이란 책이 놓여있다.
 누군가 읽다가 만 듯, <자발적 가난>이란 책이 놓여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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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가게'에서는 재활용 의류를 구입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공정무역을 통해서 들여온 커피도 팔고 재생공책이나 천연비누 따위도 살 수 있다. 바닥에 놓인 작은 항아리에는 양파껍데기가 들어 있었는데 아마도 염색할 때 쓰려고 모아놓는 것 같았다. 가게 앞에서 우리는 성미산 공동체마을을 안내해 줄, 별호가 '느리'라는 분을 만났다.

유기농반찬가게 '동네부엌'이에요. 안전하게 믿고 사먹을 수 있어요.
 유기농반찬가게 '동네부엌'이에요. 안전하게 믿고 사먹을 수 있어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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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부엌에서 만든 반찬들과 재료들.
 동네부엌에서 만든 반찬들과 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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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두레'에서는 재활용의류나 책, 면생리대, 생활용품 등을 살 수 있어요.
 '한땀두레'에서는 재활용의류나 책, 면생리대, 생활용품 등을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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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이 그대로 지켜지기를 기원합니다!
 성미산이 그대로 지켜지기를 기원합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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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꿈터를 시작으로 반찬가게인 동네부엌과 바느질 작업장인 한땀두레, 그리고 마을까페의 작은나무, 소출력 동네방송 마포FM 등의 성미산공동체를 둘러보면서 마을사람들의 다져진 힘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성미산마을은 특정된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1995년 '날으는 어린이집'이 마포구에 생기면서 공동육아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아이들이 자라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방과후교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방과후어린이집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교육내용과 지역사회의 연계성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2003년에는 서울시와 성미산 소유주가 성미산을 개발하려는 정책에 반대하여 협동조합과 지역의제 단체, 주민들이 함께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해나갔다. 이 일은 결국 주민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지역주민들과 협동조합들이 힘을 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성미산마을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성미산이 홍익재단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재단에서 학교를 이전한다면 성미산이 온전할지 불분명하다.

마포FM을 알려주는 송덕호 방송본부장과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자원활동가들.
 마포FM을 알려주는 송덕호 방송본부장과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자원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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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마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네 라디오방송국인 '마포FM'이었다. 말 그대로 동네방송이다. 마포 FM은 국내 최초로 방송위원회가 주관하는 '소출력 라디오방송 시범사업자'로 선정되어 2005년 10월에 개국했다. 프로그램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직접 만들고 꾸려나간다. 방송은 주파수 100.7Mhz로 주부, 청소년,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 자신의 이야기들과 마포지역 내 여러 목소리를 담고 있다.

지역주민의 알 권리, 우리동네 방송 '마포FM'이 통로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주민의 알 권리, 우리동네 방송 '마포FM'이 통로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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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끼리 모여 한판 수다를 펼치고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랄랄라 아줌마>, 크고 작은 사건과 소식을 전하는 <송덕호의 쌈박시사>, 장애인들이 직접 진행을 맡아 방송하는 <함께 쓰는 희망노트>, 여성의 힘과 눈으로 얘기하는 비혼 페미니스트를 위한 <꽃다방> 등 제목만 들어도 우리동네 장면들이 한눈에 그려진다.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달고나>는 '달려라 고독한 나의 청춘'을 짧게 줄인 말로 마포 근처의 홍대와 연대, 이대, 서강대 학생들의 고민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청취율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방송 참여인원은 전체 80여명으로 상근자는 방송본부장 송덕호씨를 비롯해 3명이다. '마포FM'은 그동안 월 500만원의 정부지원을 받았지만 내년부터는 지원이 끊어진다고 한다. 정부의 공적지원이 끊어지는 대신 광고를 허용한다고 하는데, 광고로 수입을 충당하려면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송덕호씨의 말에 교육에 참여한 석연희(대전 유성구 어은동)씨가 물었다.

"지원도 끊어지고, 청취율도 낮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왜 이 일을 굳이 지속시켜야 하나요?"

"일본에는 동네방송국이 170여개가 있어요. 지역마다 동네 소식은 물론, 사회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1인 미디어시대라고 하잖아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인터넷에 올리고 물어볼 수 있어요.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도 방송에서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올해 서울시의회 의원의정비가 3,884만원이에요. 그동안은 평균 4,000만원이었어요. 시민들은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몰라요.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은데 그 통로 역할을 방송이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 '희망디딤돌'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 물었어요. 이것은 저소득층 서민을 위한 복지대책인데, 그 내용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모르면 활용할 수 없잖아요. 동네방송이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경계하고 감시하는 통로가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 맑고 깨끗해진다. 마포FM은 동네 주민을 위한 성장과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풀뿌리 방송이다. 혼자 꾸는 꿈이 아닌 여럿이 함께 건강한 생활공동체를 꿈꿨던 사람들이 오늘의 '성미산마을'을 있게 한 힘이었다.

송덕호씨는 "앞으로 동네방송국이 많이 생겨날 때 마포FM이 모델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방송국에는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을 담당한 주민이 'ON AIR'가 아직 켜지지 않은 방에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원이 끊길 '마포 FM'과 학교재단의 소유가 된 성미산의 소식이 안타깝지만, 마을공동체의 자발적인 힘으로 뭉쳐진 성미산이 주민들의 염원으로 잘 지켜낼 것으로 믿는다.

방송국을 나와 우리는 마을카페인 '작은나무'에서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들고 택시를 탔다. 열차시간이 가까워서였다. 급한 마음 한켠으로 우리는 동네로 돌아가서 어떤 꿈을 꿀까,가 계속 떠올랐다. 담백한 아이스크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뭔가 자꾸 따라 넘어간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시원한 맛, 바로 사람끼리 더불어 살아가는 착한 맛이었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

(*) 마포FM: mapofm.net (100.7MHz)



태그:#성미산, #마을공동체, #마포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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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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