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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는 내가 선수(!)를 쳤다. 상황을 주도하여 어머니의 기운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다. 어제처럼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어머니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종일 고생하기 때문이다.

"어무이 오늘 아침은요, 들깨 갈아 넣어서 호박잎 국밥 해 볼까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들깨죽을 생각하면서 제안했는데 적효했다. 어머니는 좋아라 했다. 첫 눈이 뜨일 때의 새벽시간에 갖는 마음가짐과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 나는 신나게 아침 밥상을 차리러 나갔다.

얼음이 어는 부엌
▲ 국밥 얼음이 어는 부엌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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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나갔지만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 실수라기보다 예측 오류. 수도가 얼지 않도록 톰방톰방 물이 떨어지게 해놨었는데 물이 흐르는 냉수쪽은 안 얼었지만 온수 쪽은 얼어버려서 26만원이나 들여 설치한 전기온수기의 온수를 쓸 수가 없었다. 들깨를 갈고 감자를 씻어 잘게 썰었는데 모든 쇠붙이가 손에 쩍쩍 달라 붙었다. 손끝은 바늘로 찌르는 듯 냉기가 스며들었다.

들깨를 갈아넣고 호박잎을 넣어 끓인 국밥
▲ 국밥 들깨를 갈아넣고 호박잎을 넣어 끓인 국밥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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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완성된 들깨 호박잎 국밥. 내 솜씨가 어제와 뭐 크게 달라졌으리오마는 어머니의 칭찬은 넘치고 넘쳤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지만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여서 여기에 다 옮기기가 쑥스러울 지경.

설거지 하면서 앞으로 호박잎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슬슬 걱정이 되었다. 작년 겨울 어머니가 하도 호박잎 국밥 노래를 부르셔서 호박잎을 찾아 전국을 헤맸었다.

한 그릇을 다 드시고 또 드셨다.
▲ 빈 그릇 한 그릇을 다 드시고 또 드셨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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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지역은 워낙 추워서 시설재배하는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김제지역 농민회와 농업기술센터에 연락을 했었다. 그분들이 그랬다. 호박농사 지어서 수지가 맞겠냐고 했다. 하긴 그렇다.

겨울에 시설농사 하면서 기껏 호박 키워서는 본전도 못 뽑겠다. 그래서 따뜻한 지역인 전남 강진군청에 연락을 했고 다시 강진 농업기술센터에 연락을 했다. 그곳에서 호박농사 짓는 농부 연락처를 알려줬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어머니 소원을 풀어 드린다 싶었다. 아, 그러나 그 농부는 그랬다. 작년까지는 농사를 지었는데 홀라당 망해서 올해는 안 짓는다고 했다. 기름값, 비닐값, 인건비 생각하면 호박 하나에 3-4천원은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낙담만 하고 앉았을 수가 없었다. 부푼 희망을 품고 제주도로 연락했다. 제주도청과 역시 농업기술센터로 연락했다. 그 사람들은 뭐 이런 사람 다 있나 하는 목소리였다.

귤 재배에 온 도민이 전력을 다 하는데 호박 농사 그거 해가지고 뭐가 남겠느냐는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유기농 귤농사를 짓고 있는 엠이셔리 공동체 후배에게 연락했다. 결론은? "없다" 였다.

그래서 올해는 줄기차게 호박잎을 모았다. 데쳐서 말려 보관을 하고 있는데 내로라 하는 음식의 달인, 우리 형수님이 삶아 냉동실에 보관해야 새파랗게 보관된다고 했다. 그렇게 했다.

우리집 냉장고 150리터에는 호박잎 몇 덩이가 안 들어갔다. 데쳐서 말리면 안 되겠냐고 여기저기 물었다. 답변이 다 달랐다. 호박잎 그 따위가 뭐가 좋다고 겨울에까지 먹으려고 하냐는 답변이 제일 많았다.

시레기나 고사리 말리듯 해 보라는 사람도 있었고 폭폭 삶아야 질긴 호박잎이 맛있게 보관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내 방식을 개척해야 했다. 폭폭 삶아봤다. 호박잎의 입성이 사라졌다. 뭉개져 보관되었다. 살짝 삶되 겉 껍질을 벗겨내고 손으로 삭삭 부벼서 삶으니 좋았다. 나중에 꺼내 먹을 때 폭 삶기로 하고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호박잎이 한 달에 열 번 잡고 석달 먹을 양을 했는데 요즘 어머니는 거의 매일 찾는다. 클 났다. 클 났어. 어머니 호박잎 국밥 그릇은 벌써 비었는데. 정말 클 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http://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호박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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