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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하동군 악양면 주민들로 구성된 동네밴드의 첫 공연이 지난 6일 열렸다. 한 주민이 무대 위에 올라가 막춤을 추고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주민들로 구성된 동네밴드의 첫 공연이 지난 6일 열렸다. 한 주민이 무대 위에 올라가 막춤을 추고 있다. ⓒ 이주빈

초등학생, 시인 등 악양 동네주민들로 구성된 '동네밴드'

공연시간은 다 돼 가는데 기타를 칠 손가락은 꽁꽁 얼어붙어 맘처럼 놀지 못한다. 축하노래를 부른 가수 인디언 수니의 얘기처럼 "사회자가 저렇게 리허설 많이 하는 경우는 처음" 봤지만 멘트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엇갈린다.

누군가 중얼거리듯 얘기한다, "술 한 잔만 마시면 긴장이 좀 풀릴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섯 명의 사내는 술병의 마개를 딴다.

"공연이 금방인데 와 술을 마시는데?"
"동네밴드니까 그렇지, 너무 떨려서 집에 보일러를 어떻게 하고 왔는지도 모르겠어."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야, 너도 한 잔 마셔."
"근데 아저씨는 연주도 안 할 거면서 와 술을 마시는데?"
"나? 난 무대감독이니까 그렇지, 하하하."

6일 오후 6시 30분, 그렇게 어설프게 긴장을 푼 밴드의 첫 공연이 시작됐다. 밴드의 이름은 '동네밴드'. 공연장소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폐교를 개조한 매계청소년수련관 대강당. 약 200명의 주민들과 외지손님들이 100석 좌석은 물론 복도와 좌석 옆 통로를 채우고 앉아 이들의 첫 공연을 축하했다.

동네밴드는 하동군 악양면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구성된 말 그대로 '동네'밴드다.

3년 전 귀농한 김선웅씨가 리드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악양에 둥지를 튼 지 12년째인 옻칠공예가 성광명씨는 베이스 기타를, 도자기 공예가 류대원씨는 리듬기타를 치고 있다.

동네밴드 구성을 위한 오디션에서 기타를 지망했다가 탈락한 시인 박남준은 하모니카를, 하동군청 공무원인 정대영씨는 드럼을 맡았다. 고등학교 3학년인 최나현 학생은 키보드를, 밴드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이강희(초등 6학년) 학생은 바이올린을 맡고 있다.

동네밴드는 주민들이 술을 마시고 놀다가 자연스럽게 결성이 논의됐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살림에 문화지수를 높이겠다고 초청가수를 부르자니 돈이 많이 들고, 그렇다고 시골이라고 공연 등 문화와 등을 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우리 동네 주민들로 밴드를 만들어보자며 출발한 자생밴드다. 문화에 대한 갈증이 일종의 문화자급·문화자족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동네밴드가 첫 공연을 소개하는 책자에 '놀아보자 즐겁게, 그냥 말고 이웃과 더불어'라고 붙인 부제에서 이 밴드가 어떻게 잉태했는지, 또 어떤 성격을 가진 밴드인지 잘 드러난다.

동네밴드 첫 공연 본 주민들 "우와, 장난 아닌데"

 초등학생, 고등학생, 시인, 공무원, 도예가, 옻칠공예가 등으로 구성된 하동 악양의 동네밴드. 문화를 자급하자는 소박한 바람이 이들의 첫 공연을 이끌었다. 동네밴드의 공연에 환호하고 있는 악양 주민들.
초등학생, 고등학생, 시인, 공무원, 도예가, 옻칠공예가 등으로 구성된 하동 악양의 동네밴드. 문화를 자급하자는 소박한 바람이 이들의 첫 공연을 이끌었다. 동네밴드의 공연에 환호하고 있는 악양 주민들. ⓒ 이주빈

공연 사회를 맡은 악양 매계마을 농부 도용주씨는 언제 긴장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동네밴드의 첫 공연을 알렸다. 동네밴드가 첫 번째로 선보인 곡은 게리모어의 <Ther loner>. 어설프게 서치 라이트 두 대가 좁은 공연장을 번갈아 돌며 나름대로 조명 노릇을 한다. 객석 여기저기서 "우와, 장난 아닌데", "동네밴드라고 얕보면 안 되겠어"하며 즐거운 탄성이 오간다.

사회자는 어렵게 발걸음을 한 군수를 소개하는가 싶더니 "군수님도 높은 분이지만 우리 동네에선 이장님과 반장님이 제일 대장이죠"하며 마을 이장과 동네 반장을 귀빈으로 소개했다.

도회지 공연장에서나 흔들거릴 것 같은 형광봉 몇 개가 동네밴드가 부르는 한대수의 <바람과 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따라 섬진강 여울처럼 흔들거렸다. 동네밴드가 라이너스의 <연>을 연주하자 급기야 한 주민은 무대 위에 올라가 막춤을 추었고, 관객이 된 주민들은 목청껏 노래했다.

초청가수인 인디언 수니가 <나무의 꿈> 등 축하곡을 두 곡 불렀다. 그는 생태와 환경, 여성주의를 노래하고 있는 포크가수다.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를 축하할 수 있어 기쁘다"며 동네밴드의 첫 공연을 축하했다.

동네밴드의 첫 공연 마지막 노래는 크라잉 넛의 <새>였지만 주민들의 거듭된 앵콜 송 요청에 <나 어떡해> 등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리드보컬 김선웅씨는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다"면서 "한 동네에 같이 사는 이들과 함께 편하게 연주하니 행복하다"고 즐거워했다. 그는 "다 처음 밴드를 해서 힘들긴 하지만 동네주민들이 다시 공연을 원하고 기회가 되면 또 즐겁게 공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소외 촌에서 문화자급하며 귀농자와 원주민 소통했으면"

 동네밴드 통기타반의 연주모습. 이들의 대부분은 기타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동네밴드의 정규공연에 앞서 통기타 합주를 하고 있는 통기타반.
동네밴드 통기타반의 연주모습. 이들의 대부분은 기타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동네밴드의 정규공연에 앞서 통기타 합주를 하고 있는 통기타반. ⓒ 이주빈

동네밴드 통기타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난영씨는 "통기타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 중 여자 네 명은 그 전에 기타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동네밴드의 공연과 준비과정은 문화 자급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매우 귀중한 경험을 이웃주민들과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동네밴드의 첫 동네공연을 마련한 하동지역 생명자치단체인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이상윤 사무국장은 "촌에서 문화작업을 하면서 마을공동체를 회복해보자는 취지로 동네밴드 결성과 공연을 돕게 됐다"면서 "악양 등 지역으로 들어오시는 분들(귀농자들)과 원주민들이 한 마음이 되고 소통하는데 동네밴드의 공연이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더불어 귀농자가 많은 곳에 속한다.

이 국장의 기대는 어느 정도 이뤄진 듯했다. 하동군 악양면 매계마을 주민들은 동네밴드의 첫 공연을 축하하며 저녁식사와 돼지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고, 매계마을 부녀회원들은 자원봉사를 하며 공연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식사와 안주거리를 내놓았다. 또 공연장 복도에선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과 공예품을 내와 팔기도 했다.

동네에서 동네주민으로 결성돼 처음으로 동네에서 공연을 한 밴드. 첫 공연 때 자원봉사를 한 매계마을 남산댁 할머니와 고흥댁 할머니, 여수댁 할머니도 언젠가는 1기 멤버들을 제치고 동네무대에 오를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악양 주민들은 동네밴드의 공연장 복도에 자신들이 생산한 퀼트작품, 옻칠대나무 공예품, 차, 유기농 농산물을 전시판매했다.
악양 주민들은 동네밴드의 공연장 복도에 자신들이 생산한 퀼트작품, 옻칠대나무 공예품, 차, 유기농 농산물을 전시판매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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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밴드#하동#악양#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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