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기도 한 인근의 보세 옷가게.
 경기도 한 인근의 보세 옷가게.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전화가 왔다. 경기도 변두리에서 옷 가게를 하고 있는 나에게 '경기불황에 이런 손님 꼭 있다'는 주제의 기사를 써줄 것을 부탁하는 편집부의 전화였다. 사례를 들어 재밌게(?) 풀어내라고 당부하는데, 사실 별로 탐탁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부터 나왔다. 재밌는 보고서를 쓰기에 요즘 경기가 너무나 안 좋기 때문이다.

내가 가게를 하는 곳은, 말이 수도권이지 그저 조그마한 지방 소도시인지라 상권이 수도권에 비해 매우 좁다. 경기 여파가 서울보다 한 발 늦게 다가오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정도다. 그러나 이번은 예외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그저 빈 말로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특별히 상가모임을 꾸린 적은 없지만, 가게 있는 상가는 오밀조밀 작게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주변 상인들과 대부분 안면을 트고 지낸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표정만 봐도 대충 경기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OECD 국가중 자영업자 비율이 제일 높다는 우리나라에 경기침체까지 더해진 탓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상인들은 일종의 자기최면 효과를 기대하는 것인지, 요즘은 "잘 되겠지요?"라고 인사한다. 잘 될 것이란 희망 섞인 바람이 간절히 묻어나는 인사다.

하루 기분을 망치는 '이런 손님'

"백화점에 가서 사시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백화점에 가서 사시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어쨌든, '이런 손님 꼭 있다'는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 유형을 굳이 나누자면, 세 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좋은 손님, 괜찮은 손님, '진상'. 좋은 손님은 전체의 약 10%를 차지한다. 괜찮은 손님이 80%정도? 나머지는 진상이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진상, '꼭 이런 손님 있다'에 해당하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저수지 물을 흐린다고 몇 안 되는 진상에 해당하는 부류가 주인의 하루 기분을 망쳐놓기도 하는 법이다.

그런 부류에는 첫째, '거드름형'이 있다. 본인이 뭔가 있는 사람임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이들이다. "당신 좀 있는 사람이야?"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이들은 말끝마다 '백화점' 물건과 비교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러면 백화점에 가서 사시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게 만드는 부류다. 백화점 물건을 평소에 얼마나 애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 것(?)이 아닌 물건은 모조리 싸구려로 지칭하는 그들에겐 사실 긴 말이 필요치 않다. 이건 모든 진상들의 공통점이긴 한데, 거드름형의 기본 특징은 '내 말이 옳으니 네 말은 필요 없다'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의 손님한테는 말을 많이 안 하는 게 수다.

다음으로 '저 홀로 디자이너 형'이다. 그들이 주문하는 옷은 굉장히 복잡다난하다. 예를 들어 '너무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니트 소재에 퍼프 소매에 손목은 시보리, 길이는 엉덩이를 덮는 길이인 원피스형 롱티'를 원하는 것이다.

내가 공장장 혹은 디자이너가 되어 얼른 만들어 갖다바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유형이다. "차라리 직접 만들어 입으시지요?"라는 말이 역시 목구멍을 간질이는 부류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예전처럼 '의상실'을 차려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꼴불견은 '자칭 공주과'다. '예쁘다'는 말에 참으로 목마른 이들이어서 숱하게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또 그만큼 "어때요?"라고 묻는다. 그들은 그냥 '잘 어울린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말로는 부족하다.

세세하게 이건 이래서 잘 어울리고 저건 저래서 예쁘게 보인다고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말해 주지 않은 이상 계속해서 말을 시키기 때문이다. 쉽지 않게 고른 옷을 마지막까지 또 거울에 비춰 보며 다시 한 번 다짐받듯 "나 정말 괜찮죠?"라고 물으니 원. 끝까지 예쁘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돌아서는 그들의 끈질긴 근성은 정말로 사람을 질리게 한다.

'진상+밉상' 고객은 설명 불가

공주과 손님들에게는 '잘 어울린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말로는 부족하다.
 공주과 손님들에게는 '잘 어울린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말로는 부족하다.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수시로 마음 바꾸기 형'에 와서는 정말이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심리 상태가 조금 의심스럽다. 진상에 밉상이 더해진 희귀한 케이스인데, 사간 물건을 꼭 바꾸러 오는 부류다.

그렇다고 충동구매를 하는 것도 아니다. 진득하다 할 만큼 고르고 고른 것인데도 다시 바꾸겠다고 와서 진을 뺄 때는 참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심리적 기저엔 뭔가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 짓는다.

그나마 교환 시기(일주일 이내)를 지키는 경우는 그래도 봐줄만 한데 지난 계절의 옷을 가져와 막무가내로 바꿔 달라는 손님 역시 설명 불능이다. '그래도 진열해 보면 나갈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여주시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유행에 매우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 다들 한 멋쟁이 하시는데 지나간 계절 옷을 다시 찾을리 만무하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니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또 이건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고 보는데 사간 옷을 빨아 입고 다니다가 맘에 안 든다고 바꾸러 오는 경우도 있다. 옷이든 다른 물건이든 일단 한 번 세탁을 하고 나면 중고가 되는 건 당연지사다. 거기다 거슬릴 정도로 심하게 섬유유연제 냄새 '폴폴' 풍기는 옷을 가져와 '냄새는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냐'며 우기는 손님도 역시 설명 불가다.

'이런' 손님 이야기로 위안 받는 상인들

재밌는 사실은, 진상 혹은 밉상 손님은 어느 한 가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손님은 어디 가서도 진상 혹은 밉상이어서 주변 상인들과의 대화에 안줏감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손님들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아는 상인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도 하곤 손님 흉 본다고 너무 야단하시지 마시라.

'맞아, 맞아! 그런 손님 꼭, 있어' 손뼉까지 쳐 가며 동조하고 이야기를 보태다 보면 정말로 쌓인 스트레스 팍팍 날아가는 경험, 아마도 이 어려운 때 장사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경기는 언제나 '쨍' 하고 해뜰날 올 것인가. 체감 경기도 체감 온도도 부쩍 하강하는 요즘이 불안하기만 하다.


태그:#진상 혹은 밉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