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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종점에 걸려있는 불우이웃돕기 현수막
 버스 종점에 걸려있는 불우이웃돕기 현수막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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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 혜화여고 앞을 급히 걷고 있을 때였다. 한 밴드 연주소리가 종종걸음을 멈춰 세웠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11월 14일 오후, 152번 종점에서 한 밴드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들이다. '아하, 기사아저씨들이네.' '가만 있어보자. 그런데 아저씨들이 이 추운 날 왜 저러고 있데.' 오지랖 넓은 나는 조금씩 밴드 앞으로 다가갔다. '만남', '사랑으로', '사랑을 위하여' 같은 주옥같은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어느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152번 종점에서 불우이웃돕기 자선음악회를 펼치고 있는 동아 옴니버스 밴드의 공연 장면
 152번 종점에서 불우이웃돕기 자선음악회를 펼치고 있는 동아 옴니버스 밴드의 공연 장면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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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아운수 기사아저씨들이 결성한 악단 '옴니버스'(단장 홍정환)가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옴니버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말하고,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짧은 이야기를 묶어서 만든 작품을 이르기도 한다. 악단 단원들이 운전기사들이고, 각자 마음을 모아 음악을 만들어내니 '옴니버스'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흠뻑 음악에 취했다가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금함이 보였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을 모아보자고, 저금통이 살포시 입을 벌리고 있다. 호주머니를 뒤져 정말 '작은 돈'을 넣었다.

152번 종점에서 열린 동아 옴니버스 자선음악회에 지나가던 시민들과 종업원들이 모금을 하고 있다.
 152번 종점에서 열린 동아 옴니버스 자선음악회에 지나가던 시민들과 종업원들이 모금을 하고 있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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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가 불우한 이웃을 위해 공연한 지 올해로 다섯 번째다. 2003년 운전기사 가운데 신앙인들이 모여 음악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연주하는 것이 좋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회사 내 동아리였다. 차츰 실력이 붙고, 뜻도 모으면서 2004년 겨울부터 이웃을 위한 연주회를 열었다. 매년 12월에 개최해 왔지만, 올해는 더 추워지기 전에 미리 나서자고 11월에 음악회를 열었다.

악기는 각자 가지고 있던 것을 쓰거나 알아서 마련했고, 음향장비는 돈을 모으는 대로 조금씩 마련했다. 회사가 이들 활동에 힘을 보탰다. 우이동 종점에 빈 사무실을 연습실로 내준 것이다.

옴니버스 밴드에 6명이 연주자로 참여하고 3명이 노래하고 있다. 아홉 명이 참여하지만 한자리에 모여 함께 연습하기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사실 불가능하다. 버스기사가 일하는 특성 때문이다. 버스기사들을 조를 짜서 순번대로 일한다. 동시에 비는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회사도 배려하고 동료 다른 기사들도 양보해서 연습하고 공연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밴드 구성원은 연주와 노래로, 동료 기사들은 양보로, 회사는 공연장을 내주는 것으로 모두 힘을 합쳐 이웃을 돕는 것이다.

옴니버스가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애면글면 연습하고 회사와 동료들이 이들을 후원하면서, 회사까지 분위기가 좋아졌다. 홍장환 밴드단장은 “‘회사를 가정처럼, 손님을 가족처럼, 내 버스를 내 차처럼’이란 사훈이 실제로 사원들 가슴속에 살아있다”고 자랑했다. 홍 단장은 15년 무사고 경력으로 사내에서 친절기사상을 받았다.

동아 옴니버스 밴드 단장인 홍정환 운전사는 사내 모범 운전기사로 선정된 바 있다. 안전과 친절의 버스문화를 바꾸어 가기 위해 15년간 우직하게 모범운전사로 살아왔다.
 동아 옴니버스 밴드 단장인 홍정환 운전사는 사내 모범 운전기사로 선정된 바 있다. 안전과 친절의 버스문화를 바꾸어 가기 위해 15년간 우직하게 모범운전사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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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운수에서 운용하고 있는 101, 151, 152, 153, 410, 1165번 버스는 인수동 사람들을 서울 시내와 연결하여 주는 교통수단이다. 이 버스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이 버스회사에는 서울시에서도 알아주는 모범기사들이 많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옴니버스 활동이 버스운수 업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자, 밴드 활동에 관심 있는 기사 몇은 동아운수로 회사를 옮기거나 스카우트되었다. 아무리 밴드 활동이 좋아도 회사가 건강하지 않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이동과 수유동 종점, 창동문화회관에서 펼치는 공연으로 모은 금액은 300만 원 안팎이다. 여기에 회사가 조금 더 보태 강북지역 복지단체에 전달한다. 작년에 모금한 후원금은 강북구와 도봉구에 사는 소년소녀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 쌀(10kg)로 나누어 주는 데 썼다.

152번 종점에서 불우이웃을 위해 자선음악회를 개최한 동아 옴니버스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152번 종점에서 불우이웃을 위해 자선음악회를 개최한 동아 옴니버스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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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환 단장은 “이 모금 행사에 종업원들 90%가 참여한다. 아직 우리 활동은 직원 외에는 아는 사람들이 적다. 관객이 별로 없어 조금 썰렁하게 연주하고 노래하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고 어려운 이웃 돕는 일에 힘도 합칠 것이다. 우리 단원들도 지역 주민들에게 잘 홍보하고 야외 공연도 추진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수동 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에도 실렸습니다. www.welife.org



태그:#동아 옴니버스 밴드, #불우이웃, #자선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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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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