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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혁이(右)와 남혁이(左).
강혁이(右)와 남혁이(左). ⓒ 박미경

"나도 술먹고 형아 두들겨 패불거야~~, 그건 괞찮지?"

"???"

 

3살터울인 형 강혁이와 실랑이를 벌이던 7살 막둥이 남혁이가 불쑥 내뱉은 말이다. 7살짜리가 무슨 술타령이냐고? 형아와 싸우다가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않던 중 KBS 2TV의 '1박2일'을 시청한 후 찾아낸 남혁이 나름의 해결책이다.

 

즉슨 국민MC 강호동이와 매일(아이의 눈높이에서는) 함께 다니는 은지원이 술을 잔뜩 먹고 남들 다 보는데도 불구하고 TV에서 동생인 MC몽을 두둘겨 팼지만 혼은 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받았으니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7일) 저녁, 강혁이와 남혁이는 컴퓨터로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두 대의 컴퓨터에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면서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게임이란 것이 상대성이 있다보니 서로 밀어주면서 게임을 하던 두 아이들 사이에 아이템을 두고 다툼이 일었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라야 고스톱 외에는 문외한인지라 아이들이 설명을 해도 뭐가 뭔지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이유인즉 이랬다.

 

두 아이는 같이 게임을 하면서 힘을 합쳐 몬스터를 잡았고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메소(사이버머니)나 아이템을 주거니받거니 나눠먹었단다. 그러던 중 제법 좋은 아이템이 나왔는데 그것을 형인 강혁이가 가져갔단다. 남혁이는 자기도 갖고 싶었지만 형이 먼저 가졌기에 어쩔 수 없이 체념했단다.

 

그래도 형이라고 강혁이는 그 아이템을 가진 후 다음에 좋은 아이템이 나오면 그땐 남혁이가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그런데 남혁이가 가지고 싶어하던 아이템이 게임 도중 나왔고 남혁이는 당연히 형이 자기가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다시 강혁이가 낼름 가져갔다는 것.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남혁이는 강혁이를 향해 아이템을 달라고 항의했고 강혁이는 너도 열심히 해서 아이템을 가지라며 오리발을 내밀고 꼴밤까지 한 대 먹였단다. 강혁이는 마음만 먹으면 동생에게 아이템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메소와 아이템을 모으던 두 아이의 결속은 아이템으로 인해 깨지게 됐고 남혁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말빨로 보나 덩치로 보나 게임실력으로 보나 남혁이는 도저히 형을 이길 수 없었고 끝내 아이템도 얻을 수 없었다.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던 중 아이는 '1박2일'을 보게 됐다.

 

당시 '1박2일'에서는 충남 보령의 외연도에 도착한 '1박2일' MC들이 민박집에 모여앉아 회 한접시를 놓고 없는 술을 있는 척하며 술에 취한 듯한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처음 강호동과 김C가 둘이서만 진행하던 상황극에 이후 은지원과 MC몽이 참여했고 모두들 술에 만취된 연기를 했다.

 

이때 누군가 "강호동이 MC몽을 때릴 때(물론 연출이겠지만) 마음이 후련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MC몽은 멤버들에게 원망섞인 눈길을 보냈고 이에 은지원은 "형님이 말하는데 어딜 째려보느냐"며 MC몽을 한쪽으로 데려가 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모두들 마치 은지원이 술에 만취돼 MC몽을 두들겨 패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한 것인양 활짝 웃어댔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연기였지만 아이의 눈에는 연기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 우리들 자랄 때에 비해 영리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특히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1박2일'이라든가 '무한도전', '패밀리가 떳다' 등의 프로그램은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면서 연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멤버들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연기'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스타'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남혁이는 '1박2일'을 통해 술을 먹고 만취한 채 동생(MC몽)을 두들겨 패는 형(은지원)의 모습을 봤고,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강호동과 김C)의 모습을 본 것이다.

 

당시 남혁이는 "형아도 나 때렸으니까 나도 형아 때려주고 싶어, 형아는 나 때렸는데 나는 왜 형아 때리면 안되는데?"라며 궁시렁 거렸었다. 나는 옆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빠. 동생이 됐든 형이됐든 아무리 화가나고 속상해도 때리면 안돼. 엄마가 형아 야단쳐 줄께"라며 중재에 나서고 있었다. 형이됐든 누가 됐든 누군가를 때리면 엄마에게 혼날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도 가미해서.  

 

그런데 아이는 TV속에서 엄마의 말 속의 허점을 찾아낸 것이다. 폭력을 안되지만 술을 먹고 하는 폭력은 혼나기는 커녕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연예인들의 모습을 통해 발견한 것이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 '꿀밤이든 무엇이든 때리면 안되나보다' 생각하며 나름 화를 삭히고 있던 아이는 '1박2일'을 통해 형아를 때리고도 혼나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 듯 했다.

 

남혁이의 어이없는 말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에게 어떤 이유로든 어떤 것이든 폭력은 안되는 것이라며 나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술 먹고 공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TV화면에 비쳤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연예인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는 우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TV에서 비치는 연예인들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한다.

 

1박2일 프로그램은 짜여진 각본에 의해 진행되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르다. 제작진들도 그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즉각즉각의 상황에 대처하는 연예인들의 순간순간의 모습이 재미있어 어린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즐겨 본다. 그만큼 책임있는 방송이 필요하다.

 

어른들과는 달리 연기와 실제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TV에 몰입하는 아이들. 그런 방송에 아이들을 노출시킨 내 책임도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것이 연기이든 실제이든.

 

우리는 술로인해 가정이 파탄나고 술로인해 사람을 때려 상처를 입히고 술로인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들의 모습을 가끔 뉴스 등을 통해 접한다. 그럴때마다 '술이 원수'라며 '술'에 책임을 전가하며 혀를 찬다. 하지만 이는 '1박2일'에서와 같이 방송에서조차 술로 인한 폭력 등은 술때문이기에 괞찮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술에 대한 관대함이 빚어낸 결과는 아닐까.

 

술에 대한 관대한 우리사회의 그릇된 통념은 차치하고 아이들이 즐겨보는 방송에서만큼은 연기이든 실제든 술로 인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모습이 더이상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나저나 아무리 '연기'였다고 설명해도 "TV에서 진짜로 그랬다"며 은지원이는 술먹고 MC몽을 때렸는데도 아무도 혼내지 않았는데 왜 자기는 꼴밤한대라도 형아를 때리면 안돼냐며 아직껏 앙변하는 남혁이를 더 이상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하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혁이 #남혁이#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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