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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전라도관찰사 권율(權慄)과 함께 의병으로 활약한 금계공 노인(魯認)이 일본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기록한 한문본 일기가 한글로 번역돼 나왔다.

 

전남문화유산해설사회 회장이면서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화유산 강사로 있는 노기욱(51)씨가 국문으로 번역하고 전남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임진 의병장 노인의 금계집 국역본>이 그것.

 

금계일기(錦溪日記)는 노인이 일본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중 일본의 정세 등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남긴 것. 여기에는 일본의 산천과 호구, 풍속 등은 물론 일본에서 탈출한 경위와 중국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곳의 학자들과 나눈 이야기 등이 적혀 있다.

 

1823년 나주 금계원에서 활자로 문집을 간행했으며, 보물 제311호로 지정(1963. 1. 21)돼 있다. 이 문집을 1955년 그의 후손인 노민표(魯玟杓)가 6권 2책으로 재편찬해 나주 거평사에서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했으며, 이것을 400여 년 만에 노기욱이 한글로 국역한 것이다.

 

국16절 크기의 467쪽 분량의 <임진 의병장 노인의 금계집 국역본>은 시(詩), 문(文), 일기(日記), 부록, 연보(年譜) 등으로 이뤄져 있다.

 

권1 시(詩) 편에는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등 77편의 시가 형식에 따라 정리돼 있다. 기대승, 강항, 임억령 등과 나눈 시도 덧붙였다. 권2 황명유운(皇明遺韻) 편은 서원 생도들이 지어준 시 21편 등이 실려 있다.

 

권3 일기(日記) 편에는 금계일기의 원판인 상권과 하권을 모두 번역해 놓았다. 여기에는 1599년 2월22일부터 6월27일까지의 전후 상황이 기록돼 있다. 일본의 역사와 관제, 연혁은 물론 각 주의 이름과 지형 등이 소상히 적혀 있다.

 

권4 문(文) 편에는 신종황제에게 귀국을 청원하기 위해 올린 글과 대마사, 감찰어사 등에 올린 글,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운 글 등이 실려 있다. 권5 부록에는 금계집을 처음 편차했던 담양부사의 발문과 함께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21명의 이름과 출신이 적혀 있다.

 

 

권6 일본풍속기 편에는 저자가 탐지한 일본의 지형과 병세, 역사와 관제, 연혁 그리고 저자가 직접 그린 일본지도도 실려 있다. 이밖에도 책자에는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 실린 저자의 활동부분을 발췌해 놓았다. 금계집 원문도 사진으로 덧붙여 놓았다.

 

1566년(명종21) 지금의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에서 태어난 금계(錦溪) 노인(魯認·1566∼1622)은 1582년(선조15) 진사시험에 합격해 빙고별제(氷庫別提)에 제수됐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의 휘하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선조30년(1597) 8월 남원전투에서 일본군에 잡혀 3년 5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명나라 사신의 도움으로 탈출, 복건(福建)을 거쳐 한양으로 돌아왔다.

 

이후 통제사 이경준과 당포해전에 참전해 승리하고 선조임금에게 직접 '당포전양승첩지도(唐浦前洋勝捷之圖)'를 하사받았으며, 전과가 높아 수군절도사가 됐다. 1622년(광해군 14)에 57세로 생을 마쳤다.

 

그의 주검은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에 안장돼 있다. 1789년(정조13) 금계공 노인의 태생지인 문평면 동원리에 그의 사우인 ‘금계사’가 세워졌으며 뒤에 ‘거평사(居平祠)’로 이름을 바꾸었다.

 

국역본을 펴낸 노기욱 씨는 "금계일기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보물 가운데 하나”라면서 “당시 시대사와 지방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앞으로도 1년에 한권씩 옛날 순 한문본의 국문 번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노기욱 전남문화유산해설사회 회장은 오는 12일 오후 광주시 동구 동명동 오페라하우스에서 <진 의병장 노인의 금계집 국역본>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태그:#금계일기, #노인, #금계공, #노기욱, #거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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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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