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장기하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음악가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었지만 웬일인지 사람들은 본 공연보다 장기하의 게스트 공연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는 조그만 목소리로 "확실히 떴네!"라고 말하는 것도 들렸다. 장기하가 무대에 서자 사람들은 금방 웃음을 터뜨렸다. 장기하가 물었다. "제가 웃긴가요?" 사람들은 그 말에도 웃었다.
MBC <개그야>에는 '장기판과 몽타쥬'라는 코너가 있다. <개그야>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소재의 결핍인데 이 코너는 그걸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기하와 얼굴들'을 대놓고 패러디하는 이 코너는 '싸구려 커피'를 베이스로 적절한 풍자와 유머를 펼치는 코너다.
굳이 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장기하는 커뮤니티와 게시판에서 이미 '인기 스타'다. 만약 '올해의 짤방'이란 부문이 있다면 그건 분명 장기하의 '달이 뜬다, 가자'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까 장기하의 저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제가 웃긴가요?"라고 물은 장기하는 사실 웃기지 않다. 그의 노래는 굉장히 잘 다듬어진 노래다. 그게 웃긴 건 무대매너나 가사가 풍자적이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그건 키치와도 좀 다른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홍대 앞 인디씬'의 구성원들은 언론이 홍대 앞을 다룰 때 항상 '황신혜 밴드'나 '크라잉 넛'을 거론하면서 이 동네를 '이상한 애들이 넘쳐나는 동네'로 묘사한다고 불평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던 황신혜 밴드는 '키치'를 대중음악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지만 정작 음악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요즘 장기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보면,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물론 사람들이 장기하를 '개그 코드'로 소비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따라 부르기가 좀 어렵지만 따라 부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장기하의 음악적 뿌리는 1970년대의 한국 록과 포크다. '싸구려 커피'를 비롯해 '느리게 걷자', '정말 없었는지' 등을 들으면서 신중현과 엽전들을 비롯해 4월과 5월, 송골매와 산울림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그는 적어도 가장 진지한 가사를 쓰는 음악가 중 하나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사실 '싸구려 커피'가 겨냥하는 건 88만원 세대의 공포심이다. 88만원 세대의 공포는 88만원의 인생이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이십대가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싸구려 커피'는 '장판에 쩍 붙었다 떨어지는 발바닥'의 일상이 한때의 고생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공포심으로 부르는 노래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허술한 것 같지만 잘 다듬어진 가사는 위트 있는 코드 진행과 더불어 남다르게 만든다.
장기하가 발견한 미덕은 가요의 위트다. 그리고 그건 가사가 아니라 멜로디와 화음에 있다. 트롯 리듬을 바탕으로 구술처럼 쏟아지는 가사의 운율에서 위트가 느껴지는 '싸구려 커피’를 비롯해 후반부에 등장하는 화음과 코러스가 관습을 깨뜨리는 '정말 없었는지' 등은 그의 음악이 꽤 정교하게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이 노래들은 지금 여기의 일상과 사운드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눈뜨고 코베인'과 함께 한국어 노랫말과 1970년대 사운드에 대한 계승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밴드다. 그래서 장기하에 대한 이런저런 시선들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점에서는 그 예전 황신혜 밴드와 함께 겹치기도 한다. 지금 사람들이 장기하를 소비하는 건 어떤 맥락일까 살펴보게 된다. 물론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다. 그런 오만함을 성찰하지 못할 정도로 막돼먹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장기하를 '그냥 웃긴 가수'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노래로 우리 자신을 좀 더 음미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정도로 '위트 있는 가요'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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