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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쓴 소주 나발 불고 굵은 소금 한 입 물고" 이를 빠드득 갈며 끝까지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 이 추운 땡겨울,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쓴 소주 나발 불고 굵은 소금 한 입 물고" 이를 빠드득 갈며 끝까지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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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공사하는 회사들 자빠지고
돈맛에 벌려놓은 낙지발 회사도 넘어지고
일 끊겨 돈 못 받는 인부들 속 마냥
중단된 공사장 철근도 벌겋게 삭아내려
일구하기가 사십대 노총각 이십대 처녀 붙들기보다 힘들어
자존심이란 자존심 팽개치고
어쩌다 기별 온 공사장에 우르르 모여든 떼거지들
서로 놀라,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푹 퍼진 보리 누룽지 빼앗길까
으르렁대며 핥아먹는 똥개처럼
동지는 어디 가고 
콩 한 개라도 나눠 먹자는 심보는 어디 가고
앞 눈치에 옆 눈치 뒤꽁지 눈치보기
아따따 이러다가 모가지 캭! 될라
철근 많이 메고 뛰어다니기
어느 놈이 스라브에 방석 까냐
엉덩이 바짝 추켜들고 갈쿠리질
갈쿠리 반 바퀴만 돌리며 남의 속도 따라잡기
이러다가 이러다가 ------
남들 체조하는 일곱 시는 불안해
은근슬쩍 오야지 눈에 띄게
삼십 분 땡겨서 어두울 때 일 시작하기
캄캄해서 손놓기
그러다가 굶었으면 굶었지 더러워서 일 못 하겄네
떠난 사람 뒤에 안심하기
주는 노임 불만 없기
집에 가면 허리가 끊어질락 말락
어쩔껴 묵고 살아야 쓴디
동지가 밥 멕여주간디
양심이 돈 주간디
나중에 어쩔갑세
어서 나가 어서 나가
찢긴 몸 피 흘리며
병원에 가자해도 아, 괜찮아요
눈치 보기 뛰어다니기 양심 구기기 똥오줌 참기
점심 먹고 안 쉬기
그러다가 오늘도 떠나가는 사람
에라이 똥개 새끼들아 잘 처묵고 잘 살아라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모냥이여
쓴 소주 나발 불고 굵은 소금 한 입 물고
소득 없이 떠나가는
떠나가는 의리지기

- 김기홍, '살아남기' 모두

이명박 시대, 경제난 속에 땡겨울까지 맞은 가난한 서민들이 몸서리치는 겨울나기를 하고 있습니다
▲ 사람이 곧 희망이다 이명박 시대, 경제난 속에 땡겨울까지 맞은 가난한 서민들이 몸서리치는 겨울나기를 하고 있습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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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위기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 문제는 위기가 지나간 뒤 다가올 긴 세월의 질서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 어쨌거나 정부는 서민 대책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아무래도 서민들이 더 어렵지 않겠느냐. 예산만 통과되면 바로 집행해서 시도지사들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새벽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해 노점에서 우거지를 파는 할머니가 자신을 보며 울먹이자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새벽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해 노점에서 우거지를 파는 할머니가 자신을 보며 울먹이자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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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가 원로 20여 명과 함께한 청와대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우선 듣기에는 참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서민들을 위해 국가 예산을 시도지사들이 어떻게 쓰도록 하겠다는 말은 없습니다. 속이 텅 빈 깡통을 발로 차면 소리가 더 요란하게 나듯이 알맹이는 없고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지난 4일 가락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박부자 할머니를 은근슬쩍 내세웠습니다. "(시장 안을) 걸어가다가 (박 할머니를 보고)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앉아서 얘기하게 된 것"이라고. 이때 "박 할머니가 (이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다 힘들지만 대통령이 더 힘들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국가 원로들에게 왜 박 할머니 이야기를 했을까요. 국제금융위기를 맞아 대통령도 서민 못지않게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지구촌 모두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뾰쪽한 수가 없다는 말일까요. 그도 아니면 서민들 모두 대통령이 펴고 있는 '수박 겉핥기'식 서민정책을 지지하고 있기라도 하다는 그 말일까요.

가난한 서민들은 언제까지 맨살을 흐드드 떨면서 이토록 아웅다웅 배고프게 살아야 할까요
▲ 노숙자 가난한 서민들은 언제까지 맨살을 흐드드 떨면서 이토록 아웅다웅 배고프게 살아야 할까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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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밥 멕여주간디 양심이 돈 주간디"

지금 우리 사회는 "빚으로 공사하는 회사들 자빠지고 / 돈맛에 벌려놓은 낙지발 회사도 넘어지고 / 일 끊겨 돈 못 받는 인부들 속 마냥 / 중단된 공사장 철근도 벌겋게 삭아내려 / 일구하기가 사십대 노총각 이십대 처녀 붙들기보다 힘"들기만 합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란 자존심" 다 버리고 이리저리 기웃거려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쓰리 고'(고유가, 고환율, 고물가)에 너무 놀라 "콩 한 개라도 나눠 먹자"고 다짐했던 벗들도 식의주 앞에서는 "으르렁대며 핥아먹는 똥개처럼"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앞 눈치에 옆 눈치 뒤꽁지 눈치보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행여 일자리가 생겨도 "주는 노임 불만" 없이 받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동지가 밥 멕여주간디 / 양심이 돈 주간디" 하며 웃사람 눈치를 살펴야만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는 일을 하다가 몸이 상해도 "아, 괜찮아요" 하며 병원에도 가지 말아야 하고, 양심도 구겨야 하고, 볼 일이 급해도 참아야만 합니다. 나중에 몸과 마음 여기저기 골병 드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와 가족이 세 끼 굶지 않고 오손도손 살려면 점심 휴식시간이 되어도 점심만 후다닥 챙겨먹고 웃사람 눈치를 은근슬쩍 살펴가며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웃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찾아 하는 부지런한 사람,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동료보다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직장으로부터 왕따가 되어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그런 직장이 더러워 "에라이 똥개 새끼들아 잘 처묵고 잘 살아라"며 직장을 내팽개치고 나서면 막상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쓴 소주 나발 불고 굵은 소금 한 입 물고" 이를 빠드득 갈며 끝까지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이 모진 세상을 짓밟아 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합니다
▲ 서민들이 뿔났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합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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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경제난으로 자살, 노숙자 동사 잇따라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 속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리고 노숙자가 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날이 물 먹은 솜처럼 짓누르는 빚과 사업실패 때문에 가정이 산산조각 나는가 하면 이를 끝내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7일에는 강릉시 성산면 한 야산 공터에서 C씨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C씨는 아버지가 마련해 준 사업자금 2천만 원을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가 식당을 꾸리다가 경기 악화로 어쩔 수 없이 식당 문을 닫고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지난 8일 춘천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창고에서 함께 목을 매 숨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가족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농사를 짓다가 생긴 2억여원 되는 빚을 갚지 못해 평소 몹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아들 또한 빌린 돈과 나날이 늘어나는 이자를 갚지 못해 우울증을 오래 앓아왔다고 합니다.

숨 막히는 불황 속에 강추위까지 이어지자 노숙자들도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고 있습니다. 9일 낮 12시에는 춘천시 근화동 공지천교 아래에서 K씨가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날 K씨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몸에 불이 옮겨 붙자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며칠 앞에는 춘천시 효자동 한 여인숙에서 노숙자 J씨가 난방이 되지 않는 지하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날 J씨는 휘몰아치는 강추위를 견디지 못해 주인 몰래 여인숙 지하방으로 들어와 잠을 자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우리도 살 길을 찾아 다시 한번 서민경제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을 들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촛불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우리도 살 길을 찾아 다시 한번 서민경제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을 들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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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이명박이 안 찍어줬제"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하면 우리 가난한 서민들 돈 걱정 없이 잘 살게 해준다고 해서 우리 시장 사람들이 몰표를 줬제. 근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겨. 내 평생 어렵게 어렵게 장사를 해서 자식들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까지 다 보냈지만 올해처럼 힘든 때는 처음이야."

이명박 시대, 경제난 속에 땡겨울까지 맞은 가난한 서민들이 몸서리치는 겨울나기를 하고 있습니다. 10일 낮 12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동원시장에서 과일과 푸성귀 따위를 팔고 있는 박아무개(71) 할머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이명박이를 안 찍어줬제. 나도 미쳤제. 정치하는 사람들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평생 막노동을 하며 살아오고 있는 전남 승주 출신 노동자 시인 김기홍(51)은 속내를 아프게 드러냅니다. "어쩌다 기별 온 공사장에 우르르 모여든 떼거지들"이 자신과 동료들이라고. 이들은 계속되는 경제난에 "서로 놀라,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 푹 퍼진 보리 누룽지"마저도 행여 빼앗길까봐 "으르렁대며 핥아먹는 똥개"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가슴이 컥컥 막힙니다. 어쩌다 이 세상이, 어쩌다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이에나처럼 변해야 했을까요. 가난한 서민들은 언제까지 맨살을 흐드드 떨면서 이토록 아웅다웅 배고프게 살아야 할까요. 옛말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데, 우리나라 서민들 삶에는 언제쯤 볕이 들 수 있을까요.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합니다. 이대로 그냥 주저앉아 신세타령, 정부타령, 국회의원타령, 세상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스라한 벼랑 끝에 선 우리 가난한 서민들은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때도 없습니다.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우리도 살 길을 찾아 다시 한 번 서민경제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을 들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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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인 김기홍 , #노숙자, #무너진 서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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