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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보게 한다 해도, 담임교사인 제 뜻과 다르다고 해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국 일제고사에 많은 시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을 알아주시기만 해도 됩니다. (담임교사 설○○ 드림)"

 

지난 10월 14일과 15일 이틀간 실시된 초·중학교 일제고사를 앞두고 서울지역 7명의 담임 교사가 자기 반 학부모에게 한두 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일제고사 당일 한 학부모단체가 주최하는 체험학습을 안내하거나 대체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 안내문을 보낸 지 두 달여가 흐른 뒤인 10일 서울시교육청은 '해당 교사 3명은 파면, 4명은 해임'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불참을 유도하는 등 일제고사를 방해했다는 게 그 이유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복종의 의무를 어겼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일제고사 '거부 행위' 안 했다

 

하지만 시험 당일 이 교사들은 대부분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시험지를 성실하게 나눠주고 채점을 담당했다. 일제고사 '거부 행동'은 없었다는 말이다. 다만, 대체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체험학습을 허락한 사실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10일 보도자료에서 다음처럼 중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 교사들은 학교장의 결재를 받지 않은 채 가정통신문을 발송하여 불참하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담임 학급의 학생들로부터 체험학습 신청서를 받아서 학교장의 결재를 받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보관함으로써 집단으로 무단결석하게 하는 등 학습권을 침해했다."

 

교사들이 보낸 편지를 '가정통신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담임 명의의 편지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교장의 결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학교장 결재를 받지 않은 사실'을 문제 삼은 것이다.

 

체험학습 신청서도 교장의 결재를 미리 받지 않는 것이 관례다. 월말이나 학기말에 묶어서 결재를 받거나 출석부 마감 처리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결재를 받지 않아 무단결석하게 하는 등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은 학교 현실과 다른 얘기다.

 

징계형평성 또한 논란거리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고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체 프로그램을 안내한 행위'를 놓고 중대한 일제고사 방해 행위로 규정했다. 징계 최고형인 '파면·해임'을 받을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교장들의 '정부 정책 반대' 가정통신문에는 징계 '전무'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낸 교장들이 많았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던 2004년 11월 한국사립중고법인협의회 등의 명의로 전국 사립학교에 공문이 도착했다. 전국 사립학교장들이 학생과 학부모를 동원해 사학법 개정 반대 서명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어 같은 해 11월 한국사학법인연합회·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등 사학 관련 10개 단체 공동 명의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 공문으로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가정통신문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 가정통신문에는 "(정부·여당의 사학법 개정은) 특정한 이념으로 무장한 교원집단이 학생들을 친북·반미의 의식화 교육으로 물들여 투쟁의 대오로만 몰아가려 하는 것이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당수의 사립학교는 이 같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가정통신문을 학부모들에게 보냈지만 이 교장들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0일 성명에서 "일제고사에 대하여 76.4%의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징계당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노력은 국민들 편에 선 정당한 행위"라면서 "이번 징계는 그 어떤 교육적 목적도 찾아보기 힘든 정치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도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중징계로 다스린 이번 시교육청의 처사는 공정택 교육감의 부도덕성을 덮어버리려는 정치적인 징계 행위"라면서 "사교육업자 이익에 혈안이 된 교육감이 이 땅의 양심세력, 민주적 교육개혁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횡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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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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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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