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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자로 가는 길.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암자로 가는 길.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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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점점 상업화되어 가는 관광지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오가는 길이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순수한 모습을 잃어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사찰도 마찬가지다. 이름 난 사찰에는 날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북적거릴 정도다. 유명 사찰에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인 암자(庵子)는 ‘빛나는 여행지’이다. 수행자의 은둔처로, 때로는 학자들의 학문 연마의 장으로 역할을 해온 암자는 큰 절보다도 더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어 호젓한 분위기를 맘껏 누릴 수 있다.

특히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풍광 속에 자리하고 있는 남도의 암자는 말 그대로 ‘여행 청정지대’다. 하여 남도의 암자를 찾아가는 여행은 남도여행의 매력을 맘껏 누리면서 남도문화의 정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몸을 편안하게 뉘고, 마음 풀어놓기에 맞춤이다. 차분하게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활력으로 재충전하기에도 좋다. 암자는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안아준다. ‘여행 청정지대’로 손색이 없는 남도의 암자를 찾아본다.

구례 오산 사성암

 오산 사성암. 바위 사이에 박힌 건축물이 마치 산과 하나인 것처럼 서 있다.
 오산 사성암. 바위 사이에 박힌 건축물이 마치 산과 하나인 것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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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암에서 바라본 오산 풍경. 한 폭의 그림 같다.
 사성암에서 바라본 오산 풍경. 한 폭의 그림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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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특구’ 구례를 생각하면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이 먼저 떠오른다. 사찰을 얘기하면 지리산 화엄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크고 웅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박한 아름다움은 오산 사성암에 더 있다.

사성암은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오산(531m)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연기조사가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사성암(四聖庵)은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의상대사가 수도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성암 바위 사이에 박힌 건축물이 압권이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모습의 약사전과 바위에 살짝 얹어놓은 듯 단아한 대웅전이 산과 하나인 것처럼 배치돼 있다. 저만치 섬진강이 돌아 흐르는 모습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 너머로는 섬진강과 지리산이 품은 들녘과 구례읍 시가지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고흥 운람산 수도암

 운람산 수도암. 고향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운람산 수도암. 고향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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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향 그윽한 고흥군 두원면에는 운람산이 있다. 높이 484m로 아담하다. 구름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산을 감싸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산이다. 수도암(修道庵)은 이 운람산의 보호를 받으며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고려 중엽 도의선사가 창건했으며, 풍수지리로 볼 때 산의 기운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형상이란다.

옛 집의 작은 대문을 들어서듯 문턱을 넘으면 작은 마당과 함께 대웅전이 보인다. 왼쪽에 있는 요사체가 바람을 막아주어 마당이 포근하다. 요사체의 툇마루에 앉으면 고향집에 와있는 것처럼 편안해진다. 대웅전 옆 이끼 낀 바위와 작은 석탑, 부처상도 정겹다.

겨울비라도 내리면 산의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를 찾아가는 길에 만나는 수려한 산수경관이 마음의 짐까지 풀어놓도록 한다. 짙게 묻어나는 유자향기도 맡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곳이다.

해남 두륜산 일지암

 두륜산 일지암.  암자에 놓인 다기가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 준다.
 두륜산 일지암. 암자에 놓인 다기가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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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차 한 잔을 손 안에 감싸면 행복해지는 계절이다. 한 잔의 차에는 단맛과 쓴맛, 신맛, 짠맛, 떫은맛 등 다섯 가지 맛이 있다니 그 안에 인생살이가 다 녹아있는 셈이다. 한 잔의 좋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하며, 자신의 내면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차를 마시면서 삶을 음미하려면 일지암(一枝庵)이 제격이다. 일지암에 가려면 해남에 있는 두륜산 대흥사를 거쳐야 한다. 숲길에서 풍기는 흙냄새에 취하다보면 금세 대흥사다. 일지암은 여기서 30분 정도 더 오른다.

일지암은 소박하다.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 다도(茶道)가 그 매개체다. 일지암에는 초의선사가 무척 자랑하고 아꼈다는 유천(流泉)이 있다. 초의선사가 차를 우려내면서 다도를 정립시킨 샘물이다. 유천은 500년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흐르고 있다.

여수 금오산 향일암

 금오산 향일암.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해돋이와 향일암 풍경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
 금오산 향일암.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해돋이와 향일암 풍경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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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라고 하면 으레 속세와 떨어진 깊은 산속을 연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향일암(向日庵)이 그런 곳이다. 그리 높지 않지만 절벽 위에 암자가 앉은 것 같다.

일출을 볼 요량이면 아침 일찍 서둘러 암자에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두를 이유는 없다. 적어도 암자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는 맛이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앞서야 할 이유도 없고, 다른 이에게 뒤쳐졌다고 마음 상할 필요도 없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계단으로 말끔히 정비돼 있어 운치가 조금은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암자 근처에 이르러 큰 바위 사이로 난 좁은 석문을 통과하는 아기자기함은 매력적인 경험이다. 백미는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 마당에서 일출을 보고는 향일암을 다본 듯 되돌아가지만 관음전을 보지 않으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구례 지리산 연기암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한 연기암(緣起庵)은 화엄사 산내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해발 550m)에 위치하고 있다. 연기암에 가려면 화엄사 일주문 앞에서 오른쪽 화엄교를 지나 울창한 숲길을 따라 4㎞쯤 올라야 한다.

암자는 노고단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한 곳에 서 자리하고 있다. 하여 절 마당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양 옆으로 지리산 줄기가 길게 뻗어있어 연기암을 호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기암은 선방, 요사체가 있는 적멸당과 스님이 기거하는 원응당 그리고 대적광전, 문수전, 관음전 등을 갖추고 있다. 다른 암자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서면 섬진강 물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깊게 파인 골짜기를 달려 단숨에 섬진강까지 닿을 것만 같다. 길게 S자를 그리며 흐르는 섬진강 풍경이 감동이다. 구례 전경도 넉넉하게 다가선다. 계곡의 물소리도 귀를 맑게 씻어준다. 맑은 물소리와 고운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경내를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 속세의 때가 씻기는 것 같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는 호젓한 분위기를 누리기에 제격이다. '빛나는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는 호젓한 분위기를 누리기에 제격이다. '빛나는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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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사성암#수도암#일지암#암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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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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