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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19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됩니다. '경제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는 역설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업, 부동산, 금융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펴온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말>

 

2008년은 한국의 향후 수십년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 한 해였다. 금융위기 발발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이 그것이다. 흔히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한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가 좀 더 건강한 체질로 개선된다면 전화위복이 되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또다시 주변국으로 떨어질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되어 한국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이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 악몽에서 깨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미국은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나라인지라 미국의 새로운 정부 탄생은 우리에게는 매우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하향식 경제'와 오바마의 '상향식 경제'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주요 성장기조로 삼고 있는데, 이를 '하향식 경제'라고 한다. 부자와 기업에 혜택을 주는 정책을 취하면,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해 경제성장을 일으키고 그 과실이 밑으로 내려가 결국 전 국민이 혜택을 보게 된다는 논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 하향식 경제다.

 

하향식 경제의 주요 정책은 부자와 기업을 위한 감세와 각종 규제 완화, 임금인상 억제 등이다. 그런데 세계화된 경제로 인해 적하효과는 점차 그 타당성을 잃게 된다. 기업에 감세혜택을 주었더니 국내에 투자하지 않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감세하여 주머니를 불렸더니 이를 국내에서 쓰지 않고 해외에서 소비하거나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하향식 경제는 일국 차원에서 적하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전 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화된 경제와 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돈이 부자에게 몰리게 만들었고 결국 부자들 간의 국제적인 돈놀이로 자산 거품을 일으킨 것이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것이다.

 

오바마는 하향식 경제와 반대되는 '상향식 경제'를 들고 나왔다. 상향식 경제는 '경제성장의 동력은 노동자의 생산성'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국민 각자가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건강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교육·의료 등 각종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국가적 차원에서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상향식 경제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공공투자가 주요한 정책이 된다.

 

그런데 오바마가 주장한 '상향식 경제'의 주요 내용은 이미 오래전에 '신성장론'이란 이름으로 정리된 바 있다. 고전경제학에서 경제성장의 내생변수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이다. 따라서 건물과 공장을 많이 짓고 많은 기계를 들여와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는 것이 과거 경제성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돈 가진 사람들이 많은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가 재정정책의 핵심이다.

 

그런데 신성장론에서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외에 질적인 차원의 인적자원과 지적자본(지식스톡)이 경제성장의 내생변수로 추가되었고, 지식경제하에서는 이것이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지적자본 역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 신성장론에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로 많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키포인트가 된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교육과 복지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생산성이 경제성장의 기반이 되므로 교육·건강·복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오바마의 상향식 경제와 신성장론은 일맥상통한다. 이는 오바마의 상향식 경제론이 단순한 정치적인 구호나 대선을 위한 공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논리적 기반을 갖춘 경제이론임을 의미한다.

 

복지 확충 이야기하는 재벌연구소, 적하효과만 주장하는 정부

 

지난 11월 12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상생의 시장경제-한국경제시스템 업그레이드'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같이 살자'는 뜻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심포지엄에서는 경제주체가 서로 성장을 북돋우는 상생 메커니즘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메커니즘은 복지제도를 확충하여 시장탈락자들이 다시 시장에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기조를 찬양하며 MB정부와 호흡을 척척 맞추어 온 재벌연구소에서 이러한 주장을 편 것이 신선한 충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상황이 심각하면 재벌연구소마저 복지 확충을 이야기할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지난 1년간 MB정부가 보여준 재정정책 기조는 세상이 뭐라고 하든 눈과 귀를 막고 자신이 아는 단어만 반복하는 거의 '자폐아 수준'이다. 9월에 발표된 당초 정부 감세안에 따르면, 2012년까지 총 82.5조원이 감세로 빠져나갈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5일 여야가 합의한 감세안에 의하면 당초 감세안보다 감세규모가 오히려 늘어났으니 2012년까지 총 감세규모는 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감세액 82.5조원의 2/3는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로 인한 것인데, 소득세 감세액의 41%는 상위 3%가 가져가고 법인세 감세액의 70%는 상위 0.3% 대기업이 가져간다. 그 다음으로 큰 감세규모는 종부세인데 이는 오로지 상위 2%에만 혜택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철저하게 상위 2~3% 부자와 대기업에만 혜택이 집중된 감세정책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이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자, 부자와 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면 결국 일반 국민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며 이미 용도 폐기된 적하효과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부자들일수록 소비성향이 낮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게다가, 부자들은 소비를 해도 고급 외제품을 소비하고 여행을 해도 해외여행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부자들의 주머니를 불려보았자 내수진작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국10대 그룹 64개 계열사의 올해 3분기말 유보율은 787%로 지난해 말보다 67%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기업이 현재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 이익을 더 만들어준다고 해도 투자를 확대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늘어난 이익으로 배당잔치를 벌이거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변칙적으로 사용할 위험이 있다. 설사, 투자를 한다고 해도 값싼 노동력을 겨냥해 해외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정부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적하효과는 사실상 부자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골프 한 번 더 치거나 술 한 번 더 먹음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지출하는 봉사료 또는 대리운전비 정도의 '떡고물'에 그칠 것이다. 떡고물 얻어먹고자 80조원이 넘는 세금을 부자에게 퍼주란 말인가? MB 정부의 조세정책은 부자에게는 떡을 주고 서민에게는 떡고물을 주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건설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발상

 

재정지출은 철저하게 건설족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지난 13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불참한 채 여당이 단독 처리한 예산안에 의하면, 2009년 SOC 예산은 24조7천억원으로 올해 SOC 예산 19.6조원에 비해 약 26%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의 (전년 대비)SOC 예산 증가율이 2.0%인 것과 비교하면 거의 건설에 올인한 예산안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복지 관련 예산은 이전 정부 때 계획되어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항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특히, 당초 편성된 고등교육 관련 예산은 오히려 2600억원가량 줄어들었다. 이로써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MB의 대선공약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건설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발상이다. 사회기반시설과 민간부문의 투자가 취약한 후진국에서는 SOC 및 건설 부문에 대한 재정지출이 고용창출과 민간투자 유도에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60~70년대 한국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일정 궤도에 오른 후에는 건설에 치우친 재정지출은 과잉투자와 예산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건설 부문 예산의 상당 부분은 토지보상비로 지출된다. 토지보상비는 땅 부자의 주머니로 들어가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쓰이게 되므로, 건설 위주 예산은 또다시 망국적인 부동산투기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 후진국형 재정지출 구조로 선진국이 되겠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국제 기조와 정반대인 MB 정부의 '청개구리 재정정책'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하는 것은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이번에도 오바마를 따라 하면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 기대는 산산이 깨어졌다.

 

오바마가 '상위 5%에 대한 증세'를 이야기할 때, MB 정부는 '상위 2%를 위한 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바마가 '복지 지출 확대와 녹색 일자리'를 이야기할 때, MB 정부는 '삽질만이 살 길이다'를 외치고 있다. 오바마가 '파업노동자 지지'를 선언할 때, MB 정부는 '최저임금 삭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올해의 재정정책은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로 증명된 부자와 기업을 위한 감세정책의 답습, 그리고 30~40년 전에나 유효했던 '삽질 예산'의 부활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한마디로 선진국의 국제적인 기조와 정반대인 '청개구리 재정정책'이다.

 

2008년도 재정정책은 MB 임기 동안의 재정정책 기조를 결정짓는 첫 단추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바로는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다. MB 정부가 끝나는 2012년에 한국은 과연 어느 위치에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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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감세, #재정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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