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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5년 전,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할 때처럼 도법 스님의 자세는 낮았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5년과 서울순례 100일을 마무리하는 행사가 13일 저녁 서울 종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도법 스님은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소리꾼 정유숙은 판소리로 순례단의 노고를 위로했고, '하자센터'의 10대 청소년은 노래로 순례단의 마지막을 활기로 채웠다.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자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는 이렇게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길에서 꽃을 줍다."

 

순례단은 정말 길에서 꽃을 주웠던 것일까. 제주와 부산, 그리고 광주와 서울까지. 지난 2004년 3월 1일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3만리로 1만2000km에 이른다. 길 위에서 8만여 명의 사람을 만났고 500회의 강연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명과 평화의 기운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 대장정이었다.

 

5년, 1만 2000km, 8만 명, 500회 강연... 도법스님과 순례단의 여정

 

이쯤 되면, 이런저런 성과를 자랑스럽게 내놓아도 밉지 않게 보일 터. 하지만 도법 스님은 모든 공을 타인에게 돌렸다.

 

탁발순례는 말 그대로, 얻어 먹고 얻어 자고 얻어서 쓰면서 걷는 순례였다. 혹한기와 혹서기를 제외한 모든 기간 동안 아침 6시에 일어나 절 100배 하고 순례를 시작했다. 교회와 성당의 예배에 참석했고 시골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념 대립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환경 파괴로 사라진 생명을 위해 기도를 하고 천도재를 지내기도 했다. 세상 사람 모두는 홀로 살 수 없고, 서로가 돕고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스스로가 먼저 평화의 존재가 돼야 한다는 걸 각인하는 여정이었다.

 

순례단이 보낸 5년의 시간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침묵을" 하고 "빠른 성과 대신 천천히 나아가는" 일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5년 전에는 낯설었던 '생명평화'라는 용어는 이제 친숙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한다면 더딜지라도 우직하게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는 작은 인식의 씨앗이 사회 곳곳에 퍼졌다. 5년이라는 시간에 방점을 찍고 돌아보면 작은 성과일지 모르나, 그 씨앗이 자라고 꽃 피울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면 큰 수확이다.

 

"구호 대신 침묵, 빠른 성과 대신 천천히... 예수도 이렇게 살았을 것"

 

도법 스님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이제 '생명평화'라는 단어에 낯설어하지 않게 된 것이 성과"라며 "개인적으로도 작은 길을 찾았고, 대안적 삶과 사회의 방향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순례단과 인연을 맺었다는 한 수녀는 "길을 걸으며, 2000년 전 예수도 결국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내가 먼저 평화로워야 한다는 작은 진리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순례단의 마지막 여정은 서울역에서 보신각까지였다. 100여 명의 순례단은 보신각에서 마지막 기도를 한 뒤 서로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려 줬다. 시민들은 도법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날 천도교 중앙대교단의 '닫는 마당'이 순례단의 마지막 일정은 아니다. 순례단은 14일 오후 2시 첫 출발지였던 지리산 노고단으로 내려가 '생명평화기도회'를 연 뒤 최종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길에서 깨달은 것들을 실천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도법스님은 다시 실상사로 내려가 사찰 주변 남원시 산내면 일대에서 대안 공동체 마을을 일굴 계획이다. 도법스님은 지난 8월 자신이 주창한 생명평화사상을 정리한 책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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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순례단#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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