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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보기로 살짝 찍어본 69살 닐 다이아몬드 공연. 그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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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다이아몬드 공연,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모두들 잘 지내지요? (중략) 이곳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버지니아 대학교에 닐 다이아몬드가 온다고 합니다. TV 광고에 나왔대요. 애들은 잘 모르는 가수인지라 제 엄마가 비싼 돈 들여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하니 '그럴 가치가 없다'고 일축합니다. 여러분도 같은 생각인가요?

닐 다이아몬드가 누구던가요? 나, 한때 그에 심취하여 그의 LP음반을 사서 '솔리터리 맨(Solitary Man)' '스위트 캐롤라인(Sweet Caroline)'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 음악다방에 앉아 그의 노래를 신청한 적도 있었는데요. 가슴 설레던 그때 그 시절을 아직도 추억하고 있는데… 가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 이메일을 보내면서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닐 다이아몬드 문제'를 냈다. 속속 도착한 가족들 정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렵지 않은 일! 가서 향수 풀고 오세요. 조용필 무대 다녀와서 기분 풀고 어깨 아프다는 사람이 있던데…. 두 팔을 번쩍 들고 어찌나 흔들어대서. 날더러도 다녀오라고 하지만 난 가기도 전에 어깨가 아파서 안 갔어. 잘 다녀오세요.(올케)

언니, 갔다 와. 그것도 미국에 있으니까 싸게 갈 수 있는 거야. 내가 영국에 있을 때 장 피에르 랑팔 공연이 있었는데 난 안 갔거든. 아마 그 사람 한국에 오면 몇 십 배는 더 내야 할 걸. 언니가 미국에 있어서 그나마 싸게 갈 수 있는 거니 그냥 눈 감고 가버려. 한국에 오면 아마 후회할 거야. 내가 돈 보내줄게. 됐지?(동생)

친구들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서 보게나. 우리가 젊은 시절에 즐겨 들었던 가수가 아니던가. 직접 가서 보고 들으면 참 좋더구먼. 멜라니 사프카, 스모키 등이 서울에서 공연했을 때도 거금을 투자해서 가 보면 결코 후회는 안되더군.

추억의 팝송을 무대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닐 다이아몬드 콘서트 만장일치로 통과!

 닐 다이아몬드 공연이 벌어진 버지니아 대학의 '존 폴 존스 아리나'.
 닐 다이아몬드 공연이 벌어진 버지니아 대학의 '존 폴 존스 아리나'.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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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닐 다이아몬드 콘서트 간다. 모두가 찬성하잖아. 이모는 돈도 보냈단다."

10대 딸들은 왜 엄마가 늙은 할아버지 공연을 굳이 가겠다고 열을 올리는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 아빠도 적극 찬성을 하고 이모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도 가라고 한다니 굳이 반대는 안 했다.

곧바로 티켓 구매에 들어갔다. 늦은 시간 공연이라 혼자 갔다 오는 게 좀 그랬는데 다행히 함께 갈 동료가 생겼다.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난 도예를 전공한 교수였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콘서트 티켓은 제일 싼 것이 70불 정도였다. 티켓 액면가는 53불이었지만 거기에 수수료 명분으로 16불이 더 붙었다.

공연은 8시 시작이었다. 하지만 일찍 떠나야 할 것 같아 5시 반 경에 집을 나섰다. 가수 공연은 난생 처음이어서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추억 속의 남자,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런지, 그냥 실망만 하고 돌아오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마치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아사코와의 만남처럼 말이다.

그래도 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사람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사람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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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다이아몬드 공연 보러 왔어요. 리치몬드에서 왔어요."

공연이 열리는 샬로츠빌의 버지니아 대학 건너편 중국식당에서 한 중년 모녀를 만났다. 우리처럼 닐 다이아몬드 공연을 보러 왔다고 했다. 오는 데 2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하는 모녀. 그들의 얼굴은 행복으로 광채가 나고 있었다. 

'그래, 추억은 사람을 빛나게 만들지.'

공연장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의 걸음거리에서도 생기가 넘쳐났다. 입구에서 표를 받는 사람들 역시 우리에게 환한 표정을 지으며 "공연을 즐기라"고 말했다.

'즐길 준비 완료!'

무대에서 좀 떨어진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 앉은 50대 중년 부부가 내게 물었다.

"닐 다이아몬드 공연, 이번이 몇 번째예요?"
"(에엥) 처음인데요."
"저는 세 번째인데요. 닐 다이아몬드 열렬한 팬이에요. 대학 시절에 많이 들었지요."

닐 다이아몬드 등장에 환호하는 청중들

 공연장 밖에서는 닐 다이아몬드 상품을 팔고 있었다.
 공연장 밖에서는 닐 다이아몬드 상품을 팔고 있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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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다이아몬드가 등장하기 전, 드럼과 기타, 키보드,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등으로 구성된 닐 다이아몬드 10인조 밴드가 등장했다. 밴드 멤버들은 닐 다이아몬드와 긴 세월을 함께 해온 듯 연륜이 느껴지는 흰머리와 주름살을 훈장처럼 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보컬 담당인 여성 3인조 백 코러스도 무대에 나왔다.

잠시 그들의 화려한 연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닐 다이아몬드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흔들며 그를 환영했다.

"닐 다이아몬드!"
"닐 다이아몬드!"

공연장 안엔 젊은 가수가 등장할 때 10대들이 보이는 것과 같은 격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닐 다이아몬드는 인삿말을 시작으로 그의 히트곡을 열정적으로 불러댔다. 그의 기타 솜씨는 여전했다. 청중들은 닐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대표곡이라 할 '솔리터리 맨'과 '스위트 캐롤라인'을 부를 때 함께 따라 부르며 합창을 했다.

"Sweet Caroline. Good times never seemed so good!(청중들: so good so good so good! 연호)"

닐 다이아몬드는 오래된 히트곡뿐 아니라 최신곡도 불렀다. 내 귀에는 역시 그의 묵은 노래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아! 이 노래를 직접 부른 가수를 이렇게 미국에서 보게 되다니 행복하네요."

함께 간 도예가는 닐 다이아몬드가 여성 보컬리스트와 함께 부르는 달콤한 '유 돈 브링 미 플라워즈(You don't bring me flowers)'를 들으며 감동을 했다. 닐 다이아몬드 공연이 세 번째라는 내 옆에 앉은 부인 역시 그가 부르는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닐 다이아몬드에 대한 충성도(?)를 과시하기도 했다.  

닐 다이아몬드 69살 맞아?

 10인조 닐 다이아몬드 밴드와 3인조 여성 보컬 코러스.  맨 앞에 선 닐 다이아드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10인조 닐 다이아몬드 밴드와 3인조 여성 보컬 코러스. 맨 앞에 선 닐 다이아드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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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닐 다이아몬드 덕분에 행복했노라"고 고백하는 중년 부부.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닐 다이아몬드 덕분에 행복했노라"고 고백하는 중년 부부.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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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멀어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대 양쪽에 설치된 빔 프로젝터를 보니 닐 다이아몬드는 분명 나이가 든 할아버지임에 틀림없었다. 머리숱도 많이 줄었고, 이제는 청년의 얼굴이 아니었다. 목소리 역시 젊은 시절 우수에 젖은 로맨틱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고음으로 올라갈 때는 새삼 그의 나이를 돌아보게 할 불안감마저 다소 엿보였다.

하지만 기타를 둘러멘 그의 열정은 여전히 청년이었다. 그는 무대 위를 뛰어다니기도 했고 보컬을 맡은 여성과 농밀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럴 때는 여전히 '청춘스타 닐 다이아몬드'였다. 누가 그를 69살이라고 하겠는가. 칠순이 다 된 노인네의 주체할 수 없는 그 '끼'를 보고 말이다.

닐 다이아몬드는 쉬는 시간 없이, 찬조 출연 가수 없이 혼자서 2시간을 열창했다. 그는 나이를 뛰어 넘는 진정한 프로였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광고 카피처럼 닐 다이아몬드는 아름다운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그의 공연에서 보여주었다.  

공연을 보고 온 뒤, 언니가 비싼 돈 때문에 망설이는가 싶어 선뜻 티켓 값을 보내준 동생에게 짧은 현장 보고서(?)를 써보냈다.

다이아몬드씨, 참 장하더라. 골골하게 살아갈 그 나이에 그렇게 매력적인 몸과 목소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니. 입추의 여지없이, 라는 말대로 빽빽이 들어선 청중들은 무대 위에 우뚝 선 거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을 거야. 또한 엔도르핀이 그들 몸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흘렀을 거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음! 

내가 예순 아홉 그 나이가 되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칩거한 채 늙은이 냄새 풀풀 풍기면서 매력 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닐런지, 그저 세상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추한 노인네는 아닐런지….

오늘 본 다이아몬드씨가 내게 해답을 준 것 같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늙어가야 할 지를.


#닐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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