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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첫 월급으로 동생부부에게 아들이 선물했다는 커플링...
▲ 커플링^^ 아르바이트 첫 월급으로 동생부부에게 아들이 선물했다는 커플링...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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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부모님 집에 김장하러 갔던 올케한테 오면서 우리 김장김치도 함께 좀 갖다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던 터라, 김치를 가지러 갈 겸, 남동생이 새로 이사한 아파트도 가 볼 겸해서 주일 저녁 서창으로 향했다. 동생이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바로 뒤에 산이 있어 조용하고 공기도 맑았다. 귀염둥이 조카 셋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뛰어나와 까르르 넘어가는 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우릴 반겼다.

마치 함께 놀아 줄 새로운 친구들의 방문을 받은 듯 아이들은 신나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세 조카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편을 둘러싸고 앉아 어린 새들처럼 제각각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놓느라 시끌벅적했다. 누구라도 만나면 가장 먼저 수수께끼 알아맞히기 문제를 내는 둘째 도현이는 이번에도 역시 얇은 책을 들고 나와 숨 가쁘게 질문을 해댔고 막내둥이 조카는 아예 무릎 위에 올라앉아 책을 펼쳤다.

고무부가 좋아요^^
▲ 어린 조카들... 고무부가 좋아요^^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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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칠 놀이해요~
▲ 조카와 함께~ 색칠 놀이해요~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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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옆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얘기를 하던 큰 조카 둘은 다른 놀이를 찾아 방으로 들어가고, 네 살 난 막내둥이 조카 지혜는 고모부(남편)옆에 붙어 앉아 고모부한테 동화책을 읽어주고, 크레파스와 색칠공책을 가지고 와서는 같이 색칠하자며 졸랐다. 남편은 네 살 난 어린 조카가 한글을 또박또박, 그것도 유창하게 책을 읽는 것을 보며 신기해했다. 남동생은 한 술 더 떠서 하는 말이, "둘째 도현이는 세살 때 한글을 읽었습니다"라고 말해 남편을 놀라게 했다.

"더듬거렸지만 영어도 읽었어요!"라는 말에 놀란 남편을 더 놀라게 했다. 어린 조카는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기까지 그렇게 남편 옆에 붙어 앉아 신나게 놀았다. 가까이 있는 여동생 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갔다는 얘길 들으면 서운해 할까 봐 여동생 집에 전화를 했다. 여동생은 마침 서울 언니가 왔다고 했고, 남동생 집으로 언니랑 함께 오겠다고 해, 예정에 없었던 회합이 남동생 집에서 이루어졌다.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
▲ 예정에 없던 모임~~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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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집에서 어린조카들과 함께 놀고 있을 때 바로 밑에 여동생 부부와 언니부부가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서울 언니와 형부의 얼굴은 더 환하고 밝아 보였다. '형부는 점점 더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하고 인사를 대신하는 내 말을 들은 형부는 더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바로 밑에 동생 부부도 모처럼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듯한 한껏 고양되고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 셋을 예쁘게 잘 키우고 있는 올케가 저녁상을 차리고 우린 함께 저녁을 먹었다. 두런두런 모여앉아 다과상에 놓은 국화차를 마시기도 하고 귤을 까먹으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야기보따리는 마치 귤 같다. 귤껍질을 벗기면 그 속엔 진 노랑색 귤 알갱이들이 한군데 모여 있다.

귤 낱알들을 하나씩 입에 베어 물면,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시원한 과육이 입안가득 퍼진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로 유명한 서울 언니는 역시 동생네 집에서도 한바탕 웃음꽃이 피게 만들었다. 언니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밝았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확 끌어올리는, 뭔가 들뜬 분위기, 웃음보가 터지고, 웃음보가 없는 사람조차도 웃음보를 생성시키게 만드는 비밀(?)이 언니에겐 있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썰렁할 것 같은 한 마디의 말도 언니가 말하면 그 한 마디의 말은 한껏 팽창되고 생기를 얻었다. 언니의 말 한 마디에 웃음꽃이 펑~펑~ 팝콘처럼 거실 가득 터지고, 이어서 귤 속의 낱낱의 속살들을 하나씩 까먹듯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얘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지금 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여동생이 분위기를 제압하고 입을 열었다.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봐, 행여라도 누구 한 사람 듣지 못할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듯, 큰 비밀을 털어놓기라도 하는 듯이, 둥글게 모여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긴 팔을 내밀며 하는 말,

"우리 요셉이가 반지를 사 줬어요!"

아들이 첫 월급으로 사 준 반지를 끼고~행복해 하는...
▲ 동생 부부^^ 아들이 첫 월급으로 사 준 반지를 끼고~행복해 하는...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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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처럼 터지던 웃음소리가 비누방울처럼 흩어지고, 갑자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동생의 손에 집중되었다. 새로 산 반지가 동생의 손 중지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어서 제부가 손을 내밀어 동생 손 옆에 어긋지게 폈다. 더 굵은  금반지가 역시 손가락 중지에서 반짝거렸다. 커플링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흐뭇하고 뿌듯하고 행복해보였다.

"첫 월급 탔다고 50만원 주고 선물로 샀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제부의 얼굴은 자랑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머, 커플링이네" 하고 내가 말했다. 이어서 제부는 "첫 월급타서 선물을 하리라고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크게 쓸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라고 말했고, 이어서 여동생이 덧붙였다.

"아르바이트 하러 다니면서 요셉이가 '엄마, 첫 월급타면  빨간 내의 사드릴거에요' 하길래 엄만 그런 거 안 입는다고 해도 자꾸 빨간 내의 사 줄 거라고 하더니, 가만 생각해보니까 장난으로 그랬던 것 같아."

"야~그러고 보니, 아들이 커플링을 해 준 뒤로 더 두 사람이 다정해보여"라고 내가 말했더니 인정이라도 하듯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연신 싱글벙글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들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젠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 생각이 깊은 청년으로 자랐음을 실감했다. 모두 '요셉이가 대견스럽다', '아들 하나는 정말 잘 두었다'고 옆에 없는 조카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몇 개월 전, 어느 날 여동생이 내게 전화를 해서는 이젠 아들도 함부로 야단을 못치겠다며 반항을 하려든다고 말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사춘기를 겪는 모양이라고 무조건 야단치지 말고 한 인격체로 대하라고 막연하게 조언해 주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기특하게도 시한폭탄과도 같은 청소년기를 슬기롭게 잘 넘기고 이젠 다 자랐나보다. 기특했다. 조카 요셉을 보고싶었지만, 밤10시에 일을 나가야하기 때문에 지금 집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조카가 대학교에 합격한 후 직접 학비를 번다며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걸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어느새 한 달이 넘은 것이다. 늘 부모님한테 용돈을 타 썼던 조카는 밤잠을 반납하고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를 며칠 전에 받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조카는 '엄마, 나 첫 월급 1백만 원 받았어요!' 하더란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며...놀고 있다
▲ 피아노를 치고 있는 조카들...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며...놀고 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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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엔 자신감과 자기 손으로 돈을 벌었다는 뿌듯한 자긍심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선물이라며 두 손으로 아들이 내놓은 것은 반지였다. 빨간 내의 사드린다던 아들이 내놓은 선물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큰 선물이었다며 아직도 그때의 감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여동생은 말했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도 많았는데 어린 아들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위로를 주니 그 힘든 시간들을 모두 보상받은 듯한 밝은 모습이었다.

반지는 동생 내외의 손가락에 딱 맞았다. 함께 금은방에 가서 손가락 굵기를 재 본 것도 아닌데, 그동안 반지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던지 관심 있게 보아 둔 듯했다. 우리는 함께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었다. 어리게만 보았던 조카가 이젠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고 의엿한 청년이 되었다는 생각에 모두들 흐뭇한 감동을 느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사 준 50만원짜리 커플링이 서로 더 굳은 사랑과 결속으로 묶어준 듯, 이전 보다 더 끈끈한 부부애로 거듭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붙어 앉아 반지 낀 두 손을 꼭 잡고 닭살 부부처럼 굴었다. 아들이 그들에게 준 선물의 의미는 50만원의 반지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 선물 속에는 엄마 아빠가 서로 더 사랑하고 아끼고 하나 되어 행복한 부부가 되었으면 하는 아들의 간절한 기도와 바람이 묻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이들 부부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더 큰 결속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 같았다.

올케는 사과를 깎으며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거제도에 김장하러 갔잖아요. 도현이가 문자를 보냈는데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엄마! 수고가 많으시죠? 엄마의 마음을 잘 아는 도현이로부터!'라고 쓴 거에요. 이게 제 아들이에요!" 하며 웃었다. 일곱 살짜리 조카가 그런 말도 할 줄 안다는 것이 신기해 우린 또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겨울밤은 깊어갔다.

웃음꽃이 활짝 피는 동생네에서의 모임은 모두들 행복바이러스로 전염되었다. 여동생은 아들이 아르바이트 하러 갈 시간이 돼 간다며 일어섰고, 행복 바이러스로 전염된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남편 옆에 몇 시간동안 지치지도 않고 붙어 앉아 놀던 막내조카 지혜는 따라 오려고 울어 진땀을 빼야 했다.


태그:#커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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