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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관 등 고위 관료가 임명되면 신문에 학력이 실리잖아. 그거 뺐으면 좋겠어. 학벌우선 주위를 부추기는 것 같아서 보기 싫더라고."

 

"권력을 쥔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어. 자기들을 특권층으로 여기고 후배들 챙겨주고 나중에 그 후배들도 마찬가지가 되고...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잖아. 그러니까 부모들이 비싼 사교육 시켜가며 일류대학 보내려는 거야."

 

지난 13일, 부서 단합행사에서 산을 오르며 직원들이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다. 이날 행사는 9월부터 기획됐지만 바쁜 업무와 직원들의 일정 등이 맞지 않아 12월이 돼서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18명의 직원 중 5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고 13명이 오붓한 시간을 함께했다. 4명이 여성이었고 20~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참석했다. 30~40대가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날 참석한 직원들 중 미혼인 2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맞벌이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아내가 장사하는 직원도 있었고, 공무원이나 학교 시간강사 또는 회사원 등 직업이 다양했다.

 

학생을 자녀로 둔 월급쟁이들의 고민은 한결같았다. 산을 오르내리는 1시간여 동안 대부분의 대화가 사교육비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졌다.

 

사교육비 걱정에 편할 날 없는 학부모

 

 

교육과학기술부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사교육비 전체 지출은 20조40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10분의 1에 육박하는 액수다. 초ㆍ중ㆍ고교생의 77%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액은 22만2천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고민이 있는 직원들은 학부모로서의 걱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날 우리나라 평범한 직장인들이 펼쳐 놓은 고민과 생각들을 모아봤다.

 

"초등학생 가르칠 때하고 중학생은 또 다르더라고. 학원비가 장난이 아니야. 고등학생이 되면 더하겠지. 대학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학원에 안 보내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아이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니까 거기 가야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잖아. 친한 친구가 학원 옮기면 저도 옮겨 달라고 난리야."

 

사회양극화에 따른 교육격차를 좁히고자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방과 후 학교'의 내실화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우리 아이가 학교수업 끝나고 학교에서 외래 강사에게 영어를 배웠는데 재미있다고 좋아했었어. 나도 적은 비용으로 가르치니까 좋았고. 그런데 그 선생님이 그만두셨더라고. 이유가 낮은 보수와 근무환경이 열악해서라는데 정부에서 학부모들을 위해 이런 부분에 더 지원했으면 좋겠어."

 

한 직원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학교교육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고 언급하고 "하지만 출범 후 학교자율화란 이름으로 0교시 수업 부활, 사설모의고사 허용, 우열반 편성,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 전국일제고사 부활 등으로 사교육비를 부추겨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실업 부추겨

 

부모의 수입과 자녀 성적의 비례 현상, 서열화된 대학의 문제점과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고용불안으로 자연스럽게 화제 옮겨졌다. '나아지겠지'란 희망 섞인 말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주류였다.

 

대부분이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고학력 양산에 따른 인력수급의 불균형과 보이지 않는 차별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실업자를 양산했다고 꼬집었다.

 

"일류대학가는 3요소가 뭔지 알아. 아빠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이의 실력이야. 서울대학교 입학생의 1/3이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동네인 강남 출신이라는 게 그걸 증명하잖아."

 

"어느 정당에서 주장한 것처럼 싼 등록금으로 국립대학을 네트워크 시켜서 일정기간이 되면 학생들을 돌리는 거야.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을 줄여 형편이 어려운 사립대학은 정부가 인수해 국립대로 만들고 프랑스 파리에서 학교이름을 1대학, 2대학 등으로 변경 한처럼 학교이름도 없애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학 서열화가 무너지는 건데."

 

"좋은 생각이네. 기숙시설만 완비되면 가능하겠어."

 

"요즘 고용불안이 큰 사회문제인데 그것도 잘못된 교육 정책이 원인이라고 생각해. 현장에선 생산직이 필요하지만 고졸자 10명 중 8명(83.8%) 이상이 대학에 가잖아.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서 구직자와 구인자 간 눈높이 편차가 커진 것 같아."

 

"유럽은 30~40%만 대학을 가잖아. 그래도 다들 잘 사는데... 우리도 입학은 쉽게 하고 졸업은 어렵게 해서 꼭 대학을 갈 사람만 가도록 했으면 좋겠어."

 

"학벌이나 학교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사회의 시선도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 차별 때문에 실력발휘도 못 해보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

 

 

누군가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고 추억은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지는 것이라 했던가. 이번 부서 단합 행사는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을 추억으로 남기게 했다.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보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며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바쁜 업무 때문에 그저 습관적인 인사와 대화라야 업무와 관련된 것이 전부였다. 더러 몇몇 사람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털어놓긴 하지만...

 

많은 대화 속에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마음속에 벽을 허물고 온 기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이 있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하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가 사교육비 걱정 없는 행복한 미래가 활짝 열리길 소망한다.

 

"월급쟁이에게도 쨍하고 해뜰날 있겠지"란 직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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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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