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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토론 지도 방문 교사이다.

지난주까지 분당 대단위 아파트에서 독서토론 지도 방문교사 생활을 하다가 15일부터 지점을 옮겨 성남 구시가지 주택가로 수업장소가 바뀌었다.

여교사가 출산이 임박하면서 내가 그 자리를 대신 들어가게 된 것인데, 이번주는 그 여교사를 따라 다니면서 수업을 보고 다음주부터는 내가 독자수업을 하게 된다.

오늘 임신한 여교사를 따라 첫 동행수업을 나갔다.

깎아지를 듯한 급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 한 주택에 멈췄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아찔한 게 이 길 걸어 다니려면 다리가 후들거릴 게 뻔하다. 다행히 나는 차가 있지만 차 없는 방문교사들은 이런 길을 하루에도 수번씩 오르내려야 한다. 가방에 무거운 교재, 아이들 부교재까지 가득 넣고 말이다.

 성남 구시가지의 모습은 대부분 이렇다. 지금 보는 사진은 경사가 낮고 길이 넓은 편이다. 내가 수업 들어갈 지역은 매우 가파른 골목이고 다른 차와 마주치면 꼼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남 구시가지의 모습은 대부분 이렇다. 지금 보는 사진은 경사가 낮고 길이 넓은 편이다. 내가 수업 들어갈 지역은 매우 가파른 골목이고 다른 차와 마주치면 꼼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윤태

수업하러 단독주택 아이 집에 들어갔다. 모두 네 명 모둠이다. 방 두 개에 부엌과 같이 있는 거실구조의 집이다. 방 하나는 엄마 아빠 방이고 하나는 아이들 방이다(아이가 셋).

아이들 방에 냉장고와 책상 등을 비롯해 방과 거실은 세간으로 가득했다. 여교사 포함 5명이 빙둘러 앉을 만한 공간은 거실. 거실이라야 두어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나는 아이들 방에서 수업을 보면서 아이들 학습상태를 체크했다.

아이 어머니는 왔다갔다 하시는데 사람에 가로막혀 거실에서 부엌, 부엌에서 아이들 방에 있는 냉장고로 옮겨 다니시는데 자유롭지 않았다. 여교사가 몸을 숙여 통로를 내주고 냉장고 문을 열면 내가 뒤로 움찔하고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수업 중간에 어머님이 나를 부르신다.

"선생님, 이것좀 들어주세요. 무거워서…."

수업 경청하다 말고 아이들을 비집고, 여교사가 몸을 숙여 터준 길로 나가 무거운 짐을 하나 옮겨 드렸다.

'앗, 나 오늘 인사드리러 온 새로운 교사인데…'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당의 대단위 아파트 어머니들의 경우는 어떨까?

새로운 교사가 수업 동행 나오면 최대한 말끔하게 차려 입으시고 화장 곱게 하시고 새로운 교사를 꼼꼼히 살펴보시며 수업은 잘 하실까?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 이런 것들을 궁금해 하시는데 성남 구시가지 주택가 어머니들은 그렇지 않은 편이다.

오늘 처음 뵌 어머니도 그냥 운동복 차림의 편한 복장이었다. 화장도 안 하셨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새 교사를 맞이하셨고 간단하지만 일까지 시키셨다.

분당과 성남 구시가지의 차이다. 분당에는 꼼꼼한 어머니들이 많고 성남 구시가지에는 소탈하신 어머니들이 대부분이다. 교육열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분당처럼 학원이나 다른 학습 서비스나 기회가 많지 않아 이 수업을 중단하지 않고 오래하시는 어머니들이 많은 곳이 서남 구시가지이기도 하다.

"선생님 결혼 하셨어요? 저는 보시다시피 아이가 셋이에요."
"네, 저는 아들만 둘이에요."
"아이구, 요즘은 딸이 좋아요. 하하하."

앞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는데도 어머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내게 말씀을 건네신다. 분당에서는 어림도 없다. 수업 방해 안 되게 조용조용, 넓은 아이들 방의 길쭉한 모둠용 책상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나는 성남 구시가지의 소박한 어머니들이 더 정감이 간다. 분당보다는 마음이 훨씬 편하다. 수업후 꼭 학습에 대한 상담이 아니라도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교사에게 건네며 친근감 있게 다가오는 어머니들이 좋다.

수업이 끝날 즈음 여교사가 차를 빼주러 잠깐 나갔다. 좁은 주택가 골목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낮 동안은 그나마 괜찮은데 퇴근시간대인 밤에 차 대놓고 수업하다보면 수시로 빼줘야 할 거라도 여교사께서 말씀하신다.

그런데 어려운 시기는 시기이다. 분당에서 2년 동안 수업하면서 교육비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수업을 그만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는데 성남 구시가지는 그렇지 않다. 다른 교사들 이야기 들어보니 두어달째 교육비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달 교육비 54000원 부담하기가 힘들어 수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 들어 교육비 부담으로 수업을 중단한 경우가 부쩍 늘었다하니 어찌보면 이 '사소한 것'에서 경기침체를 분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다.

정감 있는 어머니들이 많은 곳인 반면 경제적인 여건때문에 수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티스토리 블로그에 동시 송고합니다.



#방문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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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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