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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 정식수업 보단 노래와 놀이로 아쉬운 시간을 마감했다. 아래 맨 왼쪽이 지영범 선교사 내외.
▲ 15명의 학생과 함께 한 종강 수업 마지막이라 정식수업 보단 노래와 놀이로 아쉬운 시간을 마감했다. 아래 맨 왼쪽이 지영범 선교사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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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요!"
"아싸!"
"도~요!"
"에~이."

던지는 윷의 패가 나올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다. 이기고 있는 팀은 박수를 치며 한껏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지만 지고 있는 팀은 절치부심 역전 한 방을 기대하며 조바심 낸다.

윷과 모를 펼쳐 놓는 히어로로 인해 떠들썩해지고 도와 개로 본의 아니게 역적이 되며 입술이 바짝 타는 이 신명나는 윷놀이. 이제는 명절 때도 그 자취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가 이역만리 먼 땅 쿠바에서는 최고 인기놀이로 급부상 중이다.

아리랑을 부를 땐 한국모습이 확연히 남아있는 할머니보다 손녀의 감정이 더 울리는 듯 하다. 할머니 어깨를 감싸는 손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 할머니와 손녀 아리랑을 부를 땐 한국모습이 확연히 남아있는 할머니보다 손녀의 감정이 더 울리는 듯 하다. 할머니 어깨를 감싸는 손녀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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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지막 한글학교 수업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워본 것들을 복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학생들의 분위기는 잠시 어색해진다. 졸업도 아니고 단지 종강일 뿐인데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들이다. 하지만 이내 선생님의 지시로 그간 배웠던 노래를 시작하자 아이부터 노인까지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나에 사알던 고향은 꼬피눈 사안고올~ 동해물구아 배뚜사이 마르거 달또로옥~ 처난 삼고리 흥으으응 능수야 버드른 흥~ 감사해요 깨다지 모탰었는데 내가 올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스페인어로 번역시켜 놓았다.
▲ 고향의 봄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스페인어로 번역시켜 놓았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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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바로 익히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노래로 친근하게 만들어 준다.
▲ 애국가 한글을 바로 익히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노래로 친근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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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우리 전통 민요부터 애국가, 동요, 가곡, 가요, 그리고 복음성가 등등 다채로운 장르의 노래를 통해 흥미를 가지고 어려운 한국어를 익힌다. 뜻은 잘 몰라도 노래에 나오는 가사만큼은 어지간한 국내거주 외국인만큼보다 더 잘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몇 곡의 노래를 쉬지도 않고 불렀지만 뭔가 아쉬운 눈치다. 이를 교사가 놓치지 않는다.

"자, 더 부르고 싶은 노래 있어요?"
"네네! 힌 눈 싸이로 설매를 따고 달리는 기분 상캐도 하다아~."

절로 박자에 맞춰 박수가 나오고, 특히나 나이 어린 학생들의 절대적인 호응 속에 캐럴이 메들리로 이어진다.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이와 피부색은 아무도 상관 않는다. 아니 이전 한글학교 수업 때부터 배움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에게 차별은 없었다. 동기와 진도와 환경은 달라도 모두가 한국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모든 노래가 다 좋지만 역시 아리랑을 부를 때면 금방이라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힐 듯 너도나도 차분해지며 묘한 여운을 남기게 된다.

"아리라앙 아리라앙 아라아리이요오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구슬픈 가락에 음을 꺾고 나면 처음 들떴던 분위기는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말은 없지만 모두가 잠깐의 이별을 감지한다.

모두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 정겨운 윷놀이판 모두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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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그래서 책을 펴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윷놀이는 이미 이들에게 친숙한 한국의 게임이다. 윷판이 펼쳐지자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긴장한다. 한글학교 중간 중간 익혀 온 지라 부가 설명 필요 없이 바로 게임으로 이어진다. 두 팀으로 나뉘자 방금 전까지 하나 되어 노래를 불렀던 학생들에게서 이제 관용과 이해로 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모두가 윷에 시선을 고정하며 전의를 불태운다.

드디어 시작된 윷놀이. 엎치락뒤치락 서로 물고 물리는 접전이 이어질수록 흥미는 배가 된다. 윷이나 모가 나오면 같은 팀원들에게 칭송받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만 허무하게 도나 개로 끝나버릴 땐 민망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심은 심정이다. 깔깔대며 웃는 와중에 한 게임이 금방 끝나버리자 이겼다는 환희보다 다들 한 게임만 더 했으면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그래서 “한 번 더!”를 결정하자 웃음꽃이 만발한다.

나이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다같이 즐기는 윷놀이.
▲ "모 나와랏!" 나이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다같이 즐기는 윷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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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뿐만 아니라 예절 교육도 잘 받았다. 아무도 게임룰이나 말 옮기는 방법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다. 어쩌면 천성이 착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웃고, 박수치고, 즐기면서 마지막 수업을 함께 장식한다. 게임이 모두 끝나면 이제 어쩔 수 없이 다음 개강 때까지는 안녕이다.

사실 이 한글학교는 지영범 선교사 부부가 운영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학습 공간도 없이 자리를 빌려서 공부시키고, 본인들 역시 오래 전부터 월세 살이(외국인들은 집을 구입할 수 없음)를 하지만 이 일에 보람을 느껴 아예 쿠바에 정착했다. 한국인 후예들이나 한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사명을 갖는 것이다. 이 먼 쿠바 땅에 이렇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봉사로 한글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초보자는 물론이고, 상급자들도 말하기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결과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이렇게 한글의 정체성과 한국에 대한 문화를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이고 기쁨인지 모른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한국인의 후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개강 때까지 잠시 헤어져야 하겠지만 분명한 건 그 수업이 끝날 땐 모두 나와 엉덩이를 흔들기보다 또 신명나는 윷놀이 한 판 '땡길' 것이다.

"살사댄스보다 윷놀이가 좋아요." 

이 한 마디가 학생들의 진심을 말해 준다.

마침 선교사님의 생일도 겹쳐서 학생들과 이 날 푸짐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 종강파티 마침 선교사님의 생일도 겹쳐서 학생들과 이 날 푸짐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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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노래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 활짝 웃는 이유 한국어로 노래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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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아바나, #자전거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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