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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고약한 놈'의 흔적. 이임순 씨는 농작물과 제방을 송두리째 망치고 지나간 태풍을 '고약한 놈'으로 의인화해 표현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고약한 놈'의 흔적. 이임순 씨는 농작물과 제방을 송두리째 망치고 지나간 태풍을 '고약한 놈'으로 의인화해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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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지나간 들녘마다 원성이 대단하다. 논마다 벼들이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벌렁 나자빠져 있다. …(중략)… 놈이 지나간 곳은 웃음이 사라지고, 먼 하늘 바라보며 원망할 기력마저도 잃어버렸다. 한숨으로 땅이 갈라지고 눈물로 지붕이 젖을 지경이다. …(중략)… 이제는 고약하고 얄미운 놈이라고 성토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수확할 과일이 없어졌지만 더 어려운 이웃이 있는지 살펴보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이임순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의 '고약한 놈' 중에서 -

무자비하게 농작물과 제방을 망치고 지나간 태풍을 의인화하고 있는 글이다. 여기에는 태풍 피해, 그 피해로 실의에 빠져 한숨과 눈물짓는 사람들, 특히 애써 가꾼 농작물을 몽땅 유실당한 농부들의 한숨이 적나라하게 묻어난다.

글을 쓴 이는 농사꾼의 딸이자 과수원지기로 살고 있는 여성이다. 과수원 경영 뿐 아니라 잉꼬 사육, 화초 재배, 고추, 깨, 채소, 상추, 아욱 등 남새밭도 가꾸며 소득보다 가꾸는 재미, 나누어 주는 재미로 보람을 갖는 전형적인 농촌 주부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또순이'로 불리는 이임순씨. 트럭을 운전하면서 과원을 경영하고 있는 과수원지기이며 문인이다. 보육교육사, 특수아교육치료사, 미술치료사, 웃음치료교육사, 레크리에이션지도사, 동화구연지도사, 상담사,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놓고 사회복지시설 운영을 꿈으로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또순이'로 불리는 이임순씨. 트럭을 운전하면서 과원을 경영하고 있는 과수원지기이며 문인이다. 보육교육사, 특수아교육치료사, 미술치료사, 웃음치료교육사, 레크리에이션지도사, 동화구연지도사, 상담사,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놓고 사회복지시설 운영을 꿈으로 지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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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난 1997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지방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문인이이기도 하다. 광주전남주부백일장 대상, 농민신문사 생활수기 우수상 등을 받은 바 있다. 지금은 까치문학회장, 전라남도주부명예기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창회 등 지역사회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마흔여덟 나이에 대학생이 되어 자식 같은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도 했다. 혼자 사는 노인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노인주거복지시설을 운영하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상담, 수화, 웃음치료, 미술치료, 특수아 치료, 언어치료, 동화 구연, 독서지도 분야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임순(55)씨. 그녀는 반도 남단 지리산과 백운산이 길게 뻗어 있고 넓은 남해바다가 출렁이며 섬진강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을 이루고 있는 마을, 근대화의 횃불을 높이 들고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총아로 깃발을 날리는 광양제철이 자리하고 있는 전라남도 광양에 살고 있다.

농사꾼으로, 만학도로 당차게 살고 있는 그녀가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를 펴냈다. 274쪽 분량의 이 수필집은 ▲다시 거울을 보며 ▲힘내라, 힘 ▲친구들 ▲삼베적삼 ▲가슴에 새긴 길 ▲내 마음의 감꽃 등 6부로 나눠 10편씩 모두 60편의 글을 싣고 있다.

그녀의 글은 단순하고 상식적이다. 허구나 상상을 구사하지 않고 있다. 요란스런 묘사나 화사한 수식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적 수식과 비유로 담담하다. 문장도 간결해 지루하거나 너절하지 않다. 지식이나 논리를 피하고 잔잔한 서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관심과 궁금증을 일으켜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농사체험을 정감 있는 글로 승화시키는 솜씨가 빼어난 덕이다.

이임순 씨가 펴낸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의 뒷면과 앞면 표지. 이 책에는 과수원 가꾸기와 관련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대개 농사일의 즐거움이나 아름다움보다는 어렵고 힘든 체험의 고백이다.
 이임순 씨가 펴낸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의 뒷면과 앞면 표지. 이 책에는 과수원 가꾸기와 관련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대개 농사일의 즐거움이나 아름다움보다는 어렵고 힘든 체험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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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들어 바람이 발광을 하듯 더욱 세차게 불어댄다. 거기에 맞추어 낙엽들은 공중에서 난무를 한다. 관리기로 감나무 주위를 갈던 남편이 일을 중단하고, “우리도 저 바람처럼 ‘마음대로 하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날씨가 좋아도 관리기로 감나무 사이사이를 파헤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대책 없이 부는 바람을 안고 하자니 더더욱 힘이 드는 모양이다.”

‘마음대로 하기’는 과수원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내뱉는 언어구사이지만 평소 부부간의 해학 어린 언어생활과 사랑의 깊이를 은근히 보여주고 있다. 농사일의 즐거움이나 아름다움보다는 그 어려움과 고충이 적나라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 체험고백의 다름 아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땅에 지렁이가 득실대도록 만드는 데에 이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지렁이는 건조하고 메마른 땅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농사에는 꼭 있어야 하는 지렁이. 그렇게 긴 시간 공들여서 살게 만든 천금같은 지렁이를 전멸시키고 말았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지렁이는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땅속의 쟁기다. 땅속에 지렁이가 없다는 것은 그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소중한 물건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기분이 이런 것일까.”

‘사죄’는 과수원지기 20년 만에 무성한 과수원의 잡초를 죽이기 위해 농약을 쓰고 마음에 걸려 속죄하는 글이다. 날마다 불어나는 잡초에 고민을 하다 이웃의 소개로 제초제를 쓰고 보니 바닥은 깨끗해졌는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지렁이가 전멸했다는 것이다. 땅과 퇴비와 지렁이의 유익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글이다. 제초제를 뿌린 것을 중죄나 지은 것으로 여기고 백배사죄하는 농부의 마음이 순수하기만 하다.

"갈퀴 같은 손과 가냘픈 몸매로 트럭을 운전한다고 사람들이 저더러 '또순이'라고 합니다. 손톱 밑이 지저분하다고도 합니다. 저는 외출에 앞서 빨래를 즐겨 합니다. 무언가를 빨아 보면 손톱 밑에 낀 때를 지울 수가 있습니다. 글 또한 빨래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마음속에 낀 노폐물을 글로 쓰면서 닦아냈던 것입니다."

과수원지기의 고달픈 삶과 새로운 꿈을 향한 담금질을 하는데 문학은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는 게 저자의 얘기다. 이씨는 지난 6일 광양유림웨딩홀에서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 출판기념회를 갖고 이를 자축했다.

이임순 씨가 자신의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 출판기념회에서 아동들과 함께 수화를 하며 춤을 추고 있다.
 이임순 씨가 자신의 수필집 〈과수원지기의 향기〉 출판기념회에서 아동들과 함께 수화를 하며 춤을 추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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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임순, #과수원지기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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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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